장발·복장에 대한 처벌과 일상생활 통제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장발과 이른바 비천한 복장 등이 처벌 대상에 포함되고 경찰의 외모 단속이 이루어짐. 앞서 1971년에는 박정희가 히피족의 텔레비전 출연을 금지하도록 지시. 정부가 정한 생활규범을 형벌과 행정조치로 강요해 시민의 자기표현과 생활양식을 제한한 사례.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장발과 이른바 비천한 복장 등이 처벌 대상에 포함되고 경찰의 외모 단속이 이루어짐. 앞서 1971년에는 박정희가 히피족의 텔레비전 출연을 금지하도록 지시. 정부가 정한 생활규범을 형벌과 행정조치로 강요해 시민의 자기표현과 생활양식을 제한한 사례.
박정희 정부가 부마민주항쟁이 확산된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 병력을 투입함. 부산의 비상계엄에 이어 시위를 군사력으로 진압한 조치로, 대규모 연행과 기본권 침해를 동반함.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도예종·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우홍선·송상진·여정남 8명에 대한 사형이 서울구치소에서 집행됨.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지 약 18시간 만의 처형으로, 고문과 강요된 자백에 의존한 수사·재판은 이후 진실규명과 재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2007년 사형 피해자 8명에게 재심 무죄가 선고됨.
비상계엄과 정치활동 제한 아래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유신헌법 개정안이 가결됨. 대통령 직선제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바꾸고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의 확정으로, 12월 27일 공포·시행을 통해 유신체제의 법적 틀이 마련됨.
대한변호사협회장 이병린이 6·3항쟁에 따른 비상계엄의 해제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인권 건의서를 작성·배포한 뒤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구속됨. 건의서는 학생 시위를 이유로 한 계엄 선포의 적법성과 영장 없는 구금 문제를 지적한 내용.
이병린은 영장 없이 연행되어 수감되었다가 계엄 해제를 앞두고 석방됨. 박정희 정부의 계엄통치에 대한 법조계의 문제 제기와 이에 따른 구속을 보여주는 사례.
서울의 판자촌 철거와 집단이주 정책으로 조성된 광주대단지에서 주민들이 토지대금 부담과 생계 대책 부재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임. 서울시는 자족도시를 계획했으나 기반시설과 일자리 공급이 이주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철거이주민은 기존 생업에서 떨어져 빈곤과 열악한 주거환경을 겪음. 급속한 도시개발의 부담이 도시빈민에게 전가된 사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법률 제2312호로 제정·공포되어 시행됨. 대통령에게 비상사태의 물가·임금 통제와 자원 동원, 집회·언론·출판 및 노동자의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규제 등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 법률임.
박정희 대통령이 국제정세 변화와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대통령공고 제28호를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함. 국가안보 우선의 통치 방침을 제시한 조치로, 같은 달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과 이듬해 유신체제 수립으로 이어지는 비상통치 강화의 계기가 됨.
해방 후 귀국한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학교 제2기로 교육을 마치고 조선국방경비대 장교로 복무하기 시작함. 만주국군에서 해방 이후 남한의 군사조직으로 옮겨간 경력상의 전환.
장도영의 사퇴 이후 박정희 부의장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선출됨. 쿠데타의 핵심 지도자가 군정 최고 통치기구의 공식 수장까지 맡으면서 권력을 집중한 계기.
만주국 신경군관학교 과정을 마친 박정희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 제57기로 진학함. 만주국군 장교가 되기 위한 군사교육을 일본에서 이어간 과정.
박정희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함. 해방 전까지 만주국군 장교로 복무한 경력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대륙 침략 체제에 속한 군사조직에서 활동한 시기.
윤보선 대통령의 하야 성명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박정희 의장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결정함. 군정 최고기구 의장과 국가원수 권한이 박정희에게 함께 집중된 계기.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함. 반유신 학생운동을 공산주의 세력의 배후조종에 의한 국가변란 시도로 왜곡한 과정과 고문수사·공판·사형 집행의 문제를 확인한 국가기관의 진실규명임.
군사혁명위원회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군정의 통치기구를 정비함. 장도영이 의장, 박정희가 부의장을 맡아 쿠데타 이후의 권력구조를 구성함.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섬. 1964년 1억 달러를 돌파한 뒤 13년 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과 기업의 시장개척, 노동자들의 생산활동이 결합한 수출 확대의 지표.
섬유·의류·신발 등 경공업 제품과 전기기기·수송기기·철강 등 중화학 제품이 함께 수출을 구성한 시기. 산업구조 변화와 대외시장 의존의 확대를 보여주는 이정표.
5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 의무적용이 시작됨. 산업화 과정에서 의료비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공적 의료보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
박정희 정부 시기에 시행된 사회보장 제도의 전환점이지만, 이때부터 모든 국민이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음. 적용 대상은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이어짐.
포항종합제철의 1기 설비가 종합준공되어 연간 조강 103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 생산체제가 갖추어짐. 1970년 4월 착공한 사업으로, 박정희가 준공식에 참석하여 중화학공업 육성의 기반이라는 의미를 강조함.
정부의 지원과 박태준을 비롯한 경영진, 기술자·건설노동자들의 작업, 해외 자본·기술 도입이 결합한 산업화 사업. 철강의 국내 공급 기반을 확대한 전환점.
박정희 정부가 전날 밤 공표한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시행하여 기업의 사채를 신고하도록 하고 상환조건과 이자율을 강제로 조정함. 신고된 사채를 원칙적으로 3년 거치·5년 분할상환, 월 1.35% 이율의 채무로 바꾸고 금융·세제 지원을 병행함.
기업의 고금리 채무 부담을 줄이고 투자를 회복하려는 조치였으나, 채권자의 권익 침해와 부실기업 구제, 기업의 차입 의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남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전 구간 개통됨. 1968년 2월 착공한 뒤 약 2년 5개월 만에 완공되어 주요 도시와 공업지역을 연결하는 물류·교통 기반을 확충함.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 사회간접자본 사업으로, 기술자와 건설노동자들의 대규모 노동 투입으로 이루어진 성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건설 과정에서 77명이 사망했으며, 짧은 공사기간과 함께 노동현장의 희생도 남긴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