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2PA가 디지털 콘텐츠 출처 인증을 위한 기술 규격 1.0을 정식 공개함.
규격은 이미지·영상·음성·문서에 콘텐츠를 누가 만들거나 변경했는지, 어떤 편집 과정이 있었는지 등의 정보를 암호학적으로 서명된 매니페스트 형태로 연결할 수 있도록 정의함.
콘텐츠의 진위를 중앙 기관이 판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가 생성되고 수정된 이력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의 범산업 개방형 출처 인증 표준으로 발표됨.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C2PA가 디지털 콘텐츠 출처 인증을 위한 기술 규격 1.0을 정식 공개함.
규격은 이미지·영상·음성·문서에 콘텐츠를 누가 만들거나 변경했는지, 어떤 편집 과정이 있었는지 등의 정보를 암호학적으로 서명된 매니페스트 형태로 연결할 수 있도록 정의함.
콘텐츠의 진위를 중앙 기관이 판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가 생성되고 수정된 이력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의 범산업 개방형 출처 인증 표준으로 발표됨.
Twitter가 C2PA 운영위원회에 합류함.
2019년 Content Authenticity Initiative 창립 파트너로 참여했던 Twitter가 C2PA의 기술 표준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콘텐츠 출처 인증 표준화 과정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사례가 됨.
C2PA는 당시 Adobe·Arm·BBC·Intel·Microsoft·Truepic을 중심으로 규격 개발 작업그룹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Twitter의 합류로 온라인 콘텐츠 배포 플랫폼 관점이 강화됨.
Adobe가 Adobe MAX 2019에서 뉴욕타임스·Twitter와 함께 Content Authenticity Initiative(CAI)를 발표함.
CAI는 디지털 콘텐츠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떤 변경을 거쳤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출처와 편집 이력을 기록하는 개방형 콘텐츠 귀속 체계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함.
이후 CAI에서 진행된 기술 규격 작업이 Project Origin의 연구와 결합돼 C2PA 설립으로 이어지면서 C2PA의 직접적인 전신 가운데 하나가 됨.
2026년 6월 8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담은 고노 담화의 주역이자 자민당 내 대표적 비둘기파로 기억된 인물. 일본 보수 정치의 양심으로 평가받으며 한일 관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의 마지막.
일본 정부 검증팀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교섭의 경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공표함. 보고서는 군 당국과 모집 업자의 관계, 모집의 강제성, 사죄와 반성 표현 등을 둘러싸고 양국 정부가 문안을 조율한 경위를 기술함. 한국 정부와 당시 한국 측 실무자들은 담화가 외교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검증이라며 반박한 상황.
2009년 중의원 의장에서 퇴임하고 그해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며 정계를 은퇴함. 1967년 첫 당선 이래 14선 42년여에 걸친 의정 활동을 마무리한 결정. 이후에는 공직 일선에서 물러나 원로로 활동함.
2003년 제71대 중의원 의장에 당선됨. 재선을 거쳐 제72대 의장까지 맡으며 2,029일간 재임해 당시 일본 헌정 사상 최장 재임 의장 기록을 세움. 취임 회견에서 전쟁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잇는 의회의 역할을 강조한 직책.
C형 간염에서 비롯된 간경화가 악화되자 2002년 아들 고노 다로로부터 간 일부를 제공받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정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됨. 부자 사이의 장기 이식으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은 일.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오부치 게이조·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다시 외무대신을 맡음. 2000년 G8 규슈·오키나와 정상회의 시기를 포함해 일본 외교를 총괄한 시기. 통산 여러 차례 외무대신을 지내며 외교 분야의 중진으로 자리매김한 활동.
1994년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연립으로 출범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에서 외무대신 겸 부총리에 취임함. 자민당이 연립 여당으로 정권에 복귀하며 맡게 된 외교 사령탑. 이후 오부치·모리 내각에서도 외무대신을 거듭 지내며 일본 외교를 이끈 출발점.
야당 총재로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와 당수회담을 갖고 정치 개혁 법안의 수정에 합의함. 참의원에서 부결되었던 정치개혁법안을 되살려 성립시키는 데 기여한 타협. 이로써 중의원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 도입의 길이 열린 사건.
1993년 7월 3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와타나베 미치오를 꺾고 총재에 당선됨. 자민당이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정권을 잃고 야당으로 전락한 직후 당을 이끌게 된 자리. 그러나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성립으로 그는 총리대신을 거치지 못한 최초의 자민당 총재로 남음.
일본 정부 관계자 5명이 서울 용산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닷새간 비공개로 피해 생존자 16명의 증언을 직접 들음. 일본 정부가 피해자 증언을 공식 청취한 절차로, 대표단은 일정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진상규명 노력을 약속함. 다만 2014년 일본 정부 검증 보고서에 따르면 고노 담화 초안은 청취 종료 전 이미 작성되었고, 청취 내용에 대한 사후 대조 조사는 실시되지 않은 경과.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내각관방장관에 취임함. 정부 대변인이자 내각의 핵심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된 직책. 이듬해 발표할 위안부 관련 담화의 발표 주체가 되는 자리에 오른 사건.
1983년 신자유클럽이 자민당과 연립을 이룬 뒤, 1986년 신자유클럽을 해산하고 자민당에 복당함. 창당 10년 만에 신당 실험을 접고 보수 본류로 돌아온 결정. 이후 자민당 내에서 본격적인 각료·당직 경력을 쌓는 전환점.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드러난 자민당의 금권부패를 비판하며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자유클럽을 결성해 대표에 취임함. 정치 개혁과 청신함을 내세운 보수 신당으로 주목받음. 기성 보수 정치에 대한 반발을 상징한 사건.
1965년 별세한 부친 고노 이치로의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당선됨. 와세다대학교 졸업 후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전신 회사에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경로. 이후 42년여에 걸쳐 14차례 연속 당선되며 장수 의원의 길을 시작한 사건.
정치인 고노 이치로의 아들로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에서 태어남. 부친 고노 이치로는 건설대신·부총리 등을 지낸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훗날 그 정치적 기반을 물려받게 됨. 일본 정계의 대표적 정치 가문에서 성장한 출발점.
OpenAI가 제한적으로 테스트하던 음성 복제 모델 Voice Engine의 안전장치를 공개하며 생성 음성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워터마킹을 적용했다고 밝힘.
Voice Engine으로 생성된 음성을 추적할 수 있도록 워터마크를 삽입하고 사용 상황에 대한 능동적 모니터링을 함께 운영함.
OpenAI가 이미지뿐 아니라 생성 음성에도 콘텐츠 자체의 출처 신호를 적용한 초기 사례임.
EU AI Act 제50조의 AI 생성 콘텐츠 투명성 의무가 적용되기 시작함.
생성형 AI 시스템 제공자는 AI가 생성하거나 조작한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에 기계가 판독할 수 있고 인공적으로 생성·조작됐음을 탐지할 수 있는 표시를 적용해야 함.
딥페이크와 공익 사안에 관한 일부 AI 생성·조작 텍스트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용자가 인공적으로 생성됐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명확히 공개해야 함.
AI 생성 콘텐츠 출처 인증이 유럽 시장에서 실제 규제 준수 의무로 전환된 사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