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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64 20건
62년 전

중화인민공화국이 1964년 10월 16일 신장 지역 뤄부포(롭누르) 핵실험장에서 최초의 핵폭발 실험에 성공함. 미국·소련·영국·프랑스에 이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 다섯 번째 국가가 된 사건.

중국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는 국가로 등장하면서 냉전기 핵전략과 동아시아 안보환경에 변화가 생김. 이후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와 중국의 핵정책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주요 과학·군사사적 이정표.

서베를린의 탈출 지원자와 대학생들이 판 길이 약 145m의 지하 통로를 이용해 10월 3~4일 동독 주민 57명이 서쪽으로 이동. 베르나우어 거리와 동베를린의 슈트렐리처 거리를 연결한 탈출 작전.

약 반년 동안 지하 12m 깊이에서 굴착한 통로였으나 발각되면서 작전이 중단됨. 충돌 과정에서 국경수비대원 에곤 슐츠가 사망했고 동독 당국은 서방 탈출 지원자의 책임이라고 선전함. 후일 조사에서는 치명적 총탄이 동료 국경수비대원에게서 발사된 사실이 확인됨.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10명으로 구성된 한국군 군사원조단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에 도착함. 9월 11일 부산항에서 출항한 비전투 인력의 파견으로,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전쟁 파병이 시작된 사건.

이후 1965년 건설·후방지원 부대와 전투부대, 1966년 추가 전투병력 파병으로 확대된 출발점.

박정희

필립 K. 딕의 단편 〈The Little Black Box〉가 잡지 《Worlds of Tomorrow》 1964년 8월호에 발표됨. 윌버 머서와 공감 상자, 집단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체험하는 머서교가 처음 등장함. 이 설정은 1968년 장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 확대·통합되어 공감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핵심 장치가 됨.

홍국영의 출세와 궁중 세력 사이의 모함·권력투쟁을 다룬 임권택의 사극. 부친의 죽음 뒤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 조정에 들어가 다시 정치적 갈등에 휘말리는 구조를 통해 충성과 세도의 문제를 전개한 작품. 이진섭 원작을 이진섭·임권택이 각색하고 극동흥업이 제작. 신영균이 홍국영으로, 황정순이 그의 어머니로 출연하고 전계현·허장강·이민자 등이 참여. 개봉일은 한국영상자료원 KMDb에서 8월 6일, 영화진흥위원회 KOBIS에서 8월 5일로 달리 기재되어 월 단위로 표시.

임권택 황정순 출연

고구려 왕실을 무대로 복수와 권력욕의 비극을 그린 임권택의 궁중사극.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국화가 후궁으로 들어가 영화마마가 되고, 원수에 대한 복수 뒤에도 왕위와 후계 문제에 개입하며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 장덕조 원작을 유일수가 각색한 동원영화사 제작 작품. 도금봉·김진규·김운하가 주요 출연진으로 참여하고 장석준이 촬영을 담당.

임권택

미국 의회가 통킹만에서 미 해군 함정이 공격받았다는 정부 발표를 배경으로 1964년 8월 7일 통킹만 결의를 승인함. 이 결의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행동을 확대하는 데 광범위한 정치적 근거를 제공함. 이후 두 번째 공격 보고의 신뢰성이 논란이 되면서 전쟁 권한의 범위와 정보의 투명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라는 한국사의 맥락과도 연결됨.

1964년 8월 2일 베트남 통킹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와 북베트남 어뢰정 세 척이 교전함. 당시 미 해군은 북베트남 연안에서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 사건과 8월 4일에 보고된 두 번째 공격은 미국의 군사개입 확대 명분으로 활용됨. 이후 공개된 자료에서 8월 2일의 교전은 실제 확인되지만 8월 4일의 두 번째 공격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정리되었음. 미국 의회의 통킹만 결의는 8월 7일 채택되었음.

박정희 정부가 6·3항쟁 당시 서울특별시 전역에 선포한 비상계엄을 해제함. 전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자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고, 박정희의 재가를 거쳐 7월 29일부터 해제됨.

계엄 기간에는 집회·시위 금지, 언론 사전검열과 휴교 등의 통제가 시행되고 학생·시민·언론인들이 검거·구속됨. 계엄 해제 뒤에도 한일회담과 협정 체결을 둘러싼 갈등은 이어짐.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