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사건의 재판 증빙 자료로 경성고등법원에 보내졌던 사전 원고가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화물 창고에서 발견됨. 10여 년에 걸친 어휘 수집과 집필의 결실이 사라질 뻔하다 극적으로 돌아온 것. 이 원고를 바탕으로 『큰사전』 간행이 재개되었으며, 원고는 뒷날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로 지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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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가 8월 13일 기각되었으나 이틀 뒤 광복을 맞아 8월 17일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 4명이 풀려남. 석방된 회원들은 곧바로 학회를 재건하고 한글날 행사를 되살림. 중단되었던 우리말 사전 편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계기.
1944년 12월부터 9차례 이어진 공판 끝에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정인승·정태진 징역 2년 등을 선고함. 사전 편찬을 민족운동의 형태로 규정한 예심 결정에 따라 치안유지법 내란죄가 적용됨. 학문 활동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처벌한 판결.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 한징이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함. 언론인 출신으로 1930년 조선어학회에 가입해 사전 편찬과 표준어 사정에 헌신한 인물. 이윤재에 이은 두 번째 옥중 순국으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빚은 희생.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국어학자 이윤재가 함흥형무소 미결감에서 고문과 추위·굶주림 끝에 순국함. 한글 보급 운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친 학자로, 사전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옥중에서 생을 마침. 조선어학회 사건의 비극을 상징하는 죽음.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을 시작으로 회원과 후원자들을 잇달아 검거함. 1943년 4월까지 33명이 붙잡혀 치안유지법 내란죄로 몰렸고, 사전 편찬 원고와 서적은 모두 압수됨. 학회 활동과 『큰사전』 편찬이 전면 중단된 일제 말기의 대표적 민족 탄압 사건.
약 3년의 제정 작업과 1년의 수정을 거친 통일안을 10월 19일 임시총회에서 확정하고,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발표함. 한국어 정서법의 근간을 처음으로 통일한 규정. 오늘날 한글 맞춤법의 직접적 토대.
1927년 동인지로 펴내던 《한글》을 학회 기관지로 다시 창간함. 국어학 연구 논문과 한글 보급 자료를 싣는 학술지로 자리 잡았으며, 2020년 기준 통권 327호까지 이어짐. 우리말 연구 성과를 쌓아 온 대표적 어학 학술지.
총회 결의에 따라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고침. '조선어문의 연구와 통일'을 내걸고 사전 편찬과 어문 규범 제정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체제로 개편됨. 일제강점기 국어 운동의 중심 기관이 된 이름.
한글날 기념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함. 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중화·최현배가 집행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한징 등이 편찬원으로 선정됨. 28년 뒤 『큰사전』 완간으로 결실을 맺는 대장정의 출발점.
휴면 상태에 빠졌던 학회(한글모)를 임경재·최두선·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으킴. 주시경 사후 끊어질 뻔한 국어 연구의 맥을 제자들이 이은 것으로, 한글 철자법 연구와 동인지 발간을 중심으로 활동함. 오늘날 조선어학회·한글학회로 이어지는 조직의 직접적 재출발점.
조선의 화가 이경윤. (~?)
독일의 조류학자, 파충류학자 헤르만 슐레겔. (~1884년)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1877년)
프랑스의 예술가, 화가 앙드레 드랭. (~1954년)
덴마크의 왕자 로젠보리 백작 오게 왕자. (~1940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순애. (~19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