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의회가 형법 개혁 과정에서 사형의 정당성과 범죄 억제 효과를 논의함. 르펠티에·로베스피에르·뒤포르 등이 폐지를 주장했지만 사형은 유지되었으며, 적용 범위를 줄이는 개혁과 제도 자체의 폐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았음.
프랑스가 사형을 국가의 형벌에서 없앤 과정과, 그 결정을 헌법·국제조약으로 보강해 온 역사를 다루는 주제. 1977년 9월 10일 마지막 사형이 집행되었고, 1981년 10월 9일 폐지 법률이 공포됨. ‘마지막 집행’, ‘의회 가결’, ‘법률 공포’는 서로 다른 단계이므로 날짜를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음.
폐지는 어느 한 정치인의 결단만으로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 프랑스혁명기부터 의회에서 사형의 정당성이 논의되었고, 1848년에는 정치범에 한해 폐지되었으나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은 남았음. 1908년의 전면 폐지 시도도 실패했으며, 지식인들의 글과 변호사들의 법정 활동이 오랫동안 논쟁을 이어감.
로베르 바댕테르는 이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은 변호사이자 법무장관이었음. 1972년 로제 봉탕의 사형 집행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폐지 운동을 강화했고, 1977년 파트리크 앙리 재판에서는 무기징역 판결을 이끌어 냄. 다만 개별 피고인이 사형을 피하는 것과 사형제 자체를 없애는 일은 달랐으므로, 전면 폐지에는 의회의 입법이 필요했음.
1981년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미테랑은 선거 때 밝힌 폐지 입장을 정부 정책으로 추진함. 바댕테르가 법무장관으로 법안을 설명하고 의원들을 설득했으며, 국민의회는 9월 18일 363대 117, 상원은 9월 30일 160대 126으로 가결함. 사형 존치를 지지하는 여론도 강했으므로, 이를 사회 전체가 이미 합의한 결정을 뒤늦게 법에 옮긴 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됨.
1981년 법률은 사형을 폐지하고 관련 형벌 규정을 정비함. 이는 중대한 범죄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형벌에서 사형을 제외한 변화였음. 범죄 피해와 사회 안전에 대한 우려, 사형을 대체할 형벌, 오판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문제 등은 당시 논의의 중요한 쟁점이었음.
이후 프랑스는 폐지를 국내 법률에만 맡기지 않고 여러 단계의 보장으로 강화함. 1986년에는 평시 사형 폐지를 정한 유럽인권협약 제6의정서를 비준했고, 2007년에는 헌법 제66-1조에 사형 선고 금지를 명시함. 같은 해 유엔의 사형폐지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하고 유럽인권협약 제13의정서를 비준하여 전시를 포함한 금지 원칙을 국제적 의무로도 뒷받침함.
이 역사를 살펴볼 때에는 공개 처형의 중단과 사형제 폐지, 장기간의 집행 중단과 법률상 폐지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함. 프랑스의 사례는 형벌에 관한 사회적 논쟁이 법정의 변론, 선거 공약, 의회 표결, 헌법과 조약의 보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줌.
정치범에 대한 사형 폐지, 전면 폐지는 무산
제2공화국에서 정치범에 대한 사형이 폐지되고 헌법에도 그 원칙이 반영됨. 그러나 빅토르 위고 등이 주장한 전면 폐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은 유지되었음.
프랑스 하원, 사형 존치 결정
장기간의 폐지 논쟁 끝에 하원이 형벌 목록에 사형을 남기는 문안을 찬성 330표, 반대 201표로 채택함. 정부와 폐지론자들의 시도가 의회의 반대에 막힌 사례로, 1981년의 폐지가 이전부터 예정된 결과는 아니었음을 보여줌.
법령에 따라 사형 집행이 군중과 언론의 시선에서 벗어난 교도소 내부에서 이루어지게 됨. 공개 처형의 폐지는 사형제 자체의 폐지가 아니었으며, 국가가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제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음.
알베르 카뮈와 아서 쾨슬러의 글을 담은 『사형에 관한 성찰』이 출간됨. 사형의 정당성과 국가의 형벌권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논의가 확산되었으며, 법정과 의회 밖에서도 폐지 운동의 기반이 넓어짐.
프랑스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
마르세유 보메트 교도소에서 하미다 장두비에 대한 사형이 단두대로 집행됨. 이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마지막 사형 집행이었음. 이후 집행이 재개되지 않았지만 사형제는 법률에 남아 있었으며, 1981년 폐지 법률이 공포되면서 법적으로도 없어짐.
헌법에 사형 선고 금지 명문화
사형 금지에 관한 헌법적 법률 제2007-239호가 공포되어 헌법 제66-1조가 신설됨. 누구도 사형을 선고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최고 규범에 명시함으로써, 1981년 일반 법률로 이루어진 폐지를 헌법 차원에서 보강함.
프랑스가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의 사형 폐지를 위한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함. 허용 가능한 전시 유보도 두지 않았으며, 헌법 개정에 이어 유엔 조약 체계 안에서도 사형 폐지 의무를 받아들임.
클로드 뷔페와 로제 봉탕이 파리 라상테 교도소에서 처형됨. 봉탕의 변호인이었던 로베르 바댕테르는 사형 집행에 입회했으며, 이 경험은 이후 폐지 운동에 깊은 영향을 줌. 이 사건은 프랑스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 아니며, 마지막 집행은 1977년 하미다 장두비 사건이었음.
어린이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파트리크 앙리에게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 선고됨. 변호인 로베르 바댕테르는 범죄의 잔혹성을 부정하는 대신 사형이라는 형벌 자체에 반대하는 변론을 펼쳤으며, 이 재판은 폐지 운동의 중요한 장면이 되었음.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 취임
미테랑 대통령 아래에서 로베르 바댕테르가 법무장관에 임명됨. 사형 사건의 변호인으로 폐지를 주장해 온 인물이 정부의 법안 작성과 의회 설득을 맡게 되면서, 법정에서의 운동이 국가의 입법 과제로 이어짐.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국민의회에 사형제 폐지를 요청하는 연설을 함. 국가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형벌을 부과해도 되는지를 묻는 논의를 이끌었으며, 다음 날 법안 표결을 앞둔 입법 과정의 핵심 장면이 되었음.
프랑스 상원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찬성 160표, 반대 126표로 가결함. 국민의회가 채택한 문안이 수정 없이 통과하면서 의회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이후 대통령의 법률 공포로 이어짐.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방송 인터뷰에서 사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힘. 사형 존치를 지지하는 여론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폐지를 정치적 선택으로 제시했으며, 당선 뒤 추진한 입법의 공약상 기반이 되었음.
각료회의, 사형제 폐지 법안 심의
프랑스 정부가 각료회의에서 사형제 폐지 법안을 다룸. 대통령의 선거 공약과 법무장관의 폐지 운동이 정부 법안으로 구체화되었으며, 9월의 의회 심의와 표결로 이어짐.
사형제 폐지 법률 공포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법률 제81-908호를 공포함. 제1조가 사형 폐지를 선언하고 관련 형벌 규정을 정비했으며, 법률은 10월 10일 관보에 게재됨. 마지막 집행이 이루어진 1977년과 달리, 이때에는 사형을 선고·집행할 법적 근거 자체가 폐지됨.
프랑스가 평시 사형 폐지를 규정한 유럽인권협약 제6의정서를 비준함. 프랑스에 대해서는 3월 1일 발효되었으며, 국내법의 폐지를 유럽 차원의 국제법상 의무와 연결함. 전시까지 포함하는 전면 금지는 후속 제13의정서와 구분할 필요가 있음.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에는 헌법 개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함. 철회할 수 없는 국제적 약속과 주권 행사의 관계가 이유였으며, 유럽인권협약 제13의정서에는 같은 장애가 없다고 구분함. 사형 폐지 자체를 위헌으로 선언한 결정은 아니었음.
프랑스가 유럽인권협약 제13의정서를 비준함. 평시뿐 아니라 전시와 전쟁의 급박한 위협 상황까지 사형 금지 범위에 포함한 조약이며, 프랑스에 대해서는 2008년 2월 1일 발효됨. 국내 폐지·헌법상 금지·국제조약의 의무가 겹쳐지는 보장 체계가 강화됨.
프랑스 국민의회가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제출한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찬성 363표, 반대 117표로 가결함. 이틀간의 논의 끝에 이루어진 하원 표결이었으며, 상원의 최종 가결과 대통령의 법률 공포는 이후에 진행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