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시 노동력 확보 정책 아래 조선인들의 사할린 동원이 본격화됨. 탄광과 토목·벌목 등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을 ‘모집’하는 과정에도 식민지 행정기관의 개입과 통제가 작동함. 이전부터 이어진 농업·생계 이주와 구별되는 전시 강제동원이 확대되었으며, 이후 사할린 한인 사회의 형성과 가족 이산에 깊은 영향을 남김.
사할린 동포
이주와 일제의 전시 강제동원을 거쳐 사할린에 정착한 한인과 그 후손을 가리킴. 해방 뒤의 미귀환, 냉전기 가족 이산, 귀환운동과 영주귀국·정착 지원의 역사를 지닌 공동체임.
추가 정보
이주와 강제동원이 겹친 공동체
사할린 동포는 사할린섬으로 이주한 한인과 그 후손을 가리키는 명칭임. 오늘날 러시아 사할린의 한인 사회뿐 아니라 한국으로 영주귀국한 동포의 삶과도 이어지는 공동체임. 19세기 농업 이주에서 시작된 정착의 흐름에 일제강점기의 생계·가족 이주와 전시 강제동원이 겹치면서 형성됨.
1930년대 말부터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노동력 동원이 확대되면서 남사할린의 탄광과 벌목장 등에 배치된 조선인들이 증가함. 당시 ‘모집’이라는 형식을 취한 동원에도 식민지 관청의 통제와 강압이 작동했으므로, 이를 자유로운 취업 이주와 동일하게 볼 수 없음. 다만 강제동원 전체를 좁은 법률상 징용 방식 하나로 설명하거나 모든 사할린 한인의 이주 경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음. 1944년 이후에는 사할린의 노동자 일부가 일본 본토로 다시 옮겨지면서 현지에 남은 가족과 헤어지는 이중의 이산을 겪음.
해방 뒤에도 열리지 않은 귀환길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해방 이후에도 많은 한인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함. 일본인의 송환이 진행되는 동안 귀환 대상에서 배제된 한인들은 소련 통치와 한반도의 분단·냉전 속에서 장기간 이동의 제약을 받음. 전후 미귀환은 단순히 해외 정착을 선택한 결과로 볼 수 없는 역사적 문제였음.
한인들은 한글 신문, 학교, 우리말 방송 등을 통해 언어와 생활문화를 이어 감. 사할린과 일본에서는 귀환 희망자 명부를 만들고 가족의 소식을 전달하며 귀환운동을 전개함. 고국의 가족과 다시 만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사할린에서도 새로운 가족과 생활 기반을 형성함.
일시방문에서 영주귀국으로
1989년 한·일 적십자사의 협력 체계가 마련되면서 일시 모국방문이 확대됨. 1992년에는 국내 연고자가 없는 고령 동포들의 집단 영주귀국과 춘천 ‘사랑의 집’ 정착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과 안산 고향마을 등으로 정착 기반이 넓어짐.
2008년에는 사할린 한인 1세와 혼인한 2세의 동반귀국이 처음 허용됨. 다만 고령 1세 중심의 귀국은 사할린에 남은 자녀·손자녀와 다시 떨어져 사는 문제를 동반함. 이러한 가족 이산을 줄이기 위해 영주귀국 뒤에도 러시아의 가족을 방문하거나 초청하는 지원이 이어짐.
특별법과 가족 지원의 확대
2020년 제정되어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영주귀국·정착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함. 당시 지원 범위가 사할린동포 1세와 배우자, 직계비속 1명 및 그 배우자로 확대됨.
2024년 7월 17일 시행된 개정법은 동반가족을 자녀 전체와 그 배우자로 넓히고, 생활여건 실태조사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조례 근거를 마련함. 확대된 가족 범위가 실제 영주귀국 지원사업에 적용된 시점은 2025년임.
2026년 9월 11일부터는 사망한 사할린동포의 사망 당시 배우자·자녀와 자녀의 배우자도 동반가족으로 인정하는 개정법이 시행됨. 이에 따른 유족의 영주귀국 지원 신청은 2027년 사업부터 가능하도록 절차가 마련됨. 법 개정의 시행과 실제 지원 신청·선정·입국은 서로 다른 단계이므로 구분할 필요가 있음.
공동체의 범위와 남은 과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할린 동포라는 말은 여러 세대의 한인을 포괄하지만, 특별법의 ‘사할린동포’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을 뜻함. 후손에 대한 지원은 동반가족 요건과 심사를 통해 이루어짐.
귀국 자체와 함께 주거·생계·국적 관련 절차, 언어와 지역사회 적응, 가족 관계의 지속이 중요한 정착 과제로 남아 있음. 강제동원 피해 구제와 명예회복, 사할린에 남은 동포의 삶, 영주귀국자의 생활안정을 함께 살펴야 하는 역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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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말기 사할린에서 생산한 자원을 일본 본토로 운송하기 어려워지자, 일본이 사할린의 조선인 노동자 일부를 본토의 광산과 공장으로 다시 이동시킴. 먼저 동원되어 온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업장에 배치되는 동안 사할린에 남겨진 가족들과 분리됨. 해방 뒤에도 가족의 소재와 귀환 경로가 갈라지는 이중 이산의 배경이 됨.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사할린에 남은 많은 한인이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함. 일본인 송환과는 달리 한인 귀환은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았으며, 소련의 통치와 남북 분단·냉전, 한국과 소련 사이의 외교관계 부재 등이 겹치면서 미귀환 문제가 장기화함. 고국 가족과의 이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지 공동체의 생활과 귀환운동이 병행됨.
대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가 사할린 거주 한국인 지원을 위한 공동사업체 협정을 맺음. 오랫동안 귀환과 가족 상봉을 요구해 온 동포들을 위해 일시 모국방문을 추진할 협력 기반이 마련됨. 고국 가족을 만날 통로가 넓어졌지만, 일시방문 허용과 국내에 계속 거주하는 영주귀국은 별개의 절차로 남아 있었음.
대한적십자사의 주선으로 국내 연고자가 없는 고령 사할린 동포들이 집단으로 영주귀국함. 이전에는 국내 직계가족의 초청을 받은 동포들이 주로 귀국했으나, 현지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고령자들의 사정을 고려해 귀국과 수용이 추진됨. 춘천의 ‘사랑의 집’이 거주와 돌봄을 맡으면서, 일시 모국방문을 넘어 무연고 동포의 국내 정착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됨.
경기도 안산에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를 위한 고향마을이 마련됨. 489세대 규모의 주거단지를 기반으로 고령 동포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정착 공간이 확보됨. 1999년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 개관에 이어 주거와 돌봄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확대됨. 귀국 후에도 사할린에 남은 가족과의 관계를 이어 가야 하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됨.
외교부가 2008년도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계획을 발표함. 기존 1세 중심의 지원 대상에서 1세와 혼인한 2세의 동반귀국을 처음 허용함. 650명의 귀국은 발표 당일 완료된 것이 아니라 2008년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사이 진행할 계획으로 발표됨.
2020년 5월 26일 제정·공포된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이 효력을 갖기 시작함. 기존 영주귀국·정착 지원사업을 법률에 근거한 제도로 정비하고, 지원 범위를 사할린동포 1세와 배우자뿐 아니라 직계비속 1명 및 그 배우자까지 넓힘. 국가의 지원정책과 피해구제 책임, 명예회복 기념사업, 신청과 지원 결정 절차를 규정하여 가족 결합과 국내 정착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함.
사할린동포의 동반가족을 직계비속 1명 중심에서 자녀 전체와 그 배우자로 확대하는 개정 특별법이 시행됨. 자녀와 그 배우자가 없는 경우 직계비속 1명과 그 배우자를 인정하는 예외도 마련됨. 영주귀국자의 생활여건을 살피는 2년 주기 실태조사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조례의 근거를 함께 신설함. 확대된 가족 범위에 따른 영주귀국 지원은 2025년 사업부터 적용됨.
사망한 사할린동포의 사망 당시 배우자·자녀와 자녀의 배우자에게도 동반가족 지위를 인정하는 개정 특별법이 시행됨. 생존한 1세의 귀국을 전제로 하던 제도 때문에 부모가 먼저 사망한 가족이 지원에서 제외되던 문제를 보완함. 제출 서류를 정비한 시행령과 함께 2027년부터 유족의 영주귀국 지원 신청이 가능하도록 절차가 마련됨. 법 시행만으로 모든 가족의 귀국이 완료된 것은 아니며 신청과 대상자 선정, 입국 절차가 뒤따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