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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1499년의 기록 10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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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지·김담 등이 중국 역법을 바탕으로 한 『칠정산내편』을 1442년에 완성하고, 이슬람 역법을 토대로 한 『칠정산외편』을 1444년에 완성함. 두 역서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월오행성의 운행과 일식·월식을 계산할 수 있는 독자적 역법 체계를 마련한 성과.

세종이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에게 태조의 왜구 토벌을 목격한 노인들을 찾아 당시 상황을 조사하도록 명함. 《세종실록》은 이 지시가 《용비어천가》를 짓기 위한 준비였다고 기록함. 왕실 선대의 공적을 노래할 자료를 지방의 증언에서 모으려 한 편찬 과정.

조사 대상과 편찬 목적

조사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1380년 운봉에서 벌어진 전투의 병력과 말의 수, 적을 상대했던 전술, 교전 횟수와 전투의 진행 상황. 관찰사에게 여러 고을을 다니며 목격자의 말을 상세히 적어 보고하도록 요구함. 왕명은 태조의 공적을 후세에 전한다는 목적을 먼저 제시했으며, 수집된 자료는 선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왕실 편찬사업을 위한 것이었음.

조선이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대마도에서 해마다 보낼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하고 세사미두 200석, 체류 기간과 어업 허가 등을 규정함. 1419년 대마도 정벌과 1426년 삼포 개항 이후 왜구 억제와 교역 허용을 결합해 형성한 대일 통교 질서의 제도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 등이 새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문제, 한문 학습 저하 우려, 이두와의 관계, 형정 처리에 새 문자를 사용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세종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운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를 들어 반박함. 상소 참여자들은 의금부에 하옥됐다가 대부분 이튿날 석방되고 정창손은 파직됨.

세종 (조선)

세종 대 조정이 태조·정종·태종실록을 네 질로 등사해 한양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함. 한 곳의 재난으로 기록 전체가 소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분산 보존 체계로, 조선 전기 4대 사고제의 기틀 확립. 임진왜란 때 세 곳의 사고가 소실된 가운데 전주사고본이 보존되어 조선 전기 실록 전승의 기반이 됨.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와 전의감 의관들이 중국·고려의 의서 150여 종에서 이론과 처방을 뽑아 병증별로 분류한 『의방유취』 365권을 편찬함. 동아시아 의학 지식을 대규모로 집성한 국가 편찬 사업으로, 세종 대 의학 정책이 향토 약재 정리에서 종합 의학 지식 체계화로 확장된 결과.

권제·정인지·안지가 한글 노래와 한시로 구성된 《용비어천가》 10권을 세종에게 올림. 함께 바친 글에서 총 125장을 지었다고 보고하고 왕실 선대의 행적과 창업의 어려움을 후손에게 전하려는 뜻을 밝힘. 세종은 이를 판에 새겨 간행하도록 명함.

편찬자들이 제시한 취지

권제 등은 세종에게 올린 글에서 민간의 칭송을 모으고 왕실 선대의 행적을 찾아 국어로 노래한 뒤 한시로 그 뜻을 풀이했다고 설명함. 중국 상·주 왕조의 선조를 노래한 고사에 조선 왕실의 계보를 견주고, 태조의 건국과 태종의 정치적 공적을 찬양함.

편찬자들은 왕업을 이루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자손에게 전하고 노래를 관현악에 얹어 널리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함. 국왕에게 바친 이 글은 왕조의 기원을 정당화하는 편찬 목적과 후손에게 선대의 어려움을 기억시키려는 요청을 함께 담음.

한글 가사와 한시로 된 《용비어천가》에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한문 주해를 붙여 10권 5책으로 간행함. 최항·박팽년·강희안 등이 주해와 음훈 작업에 참여했으며, 왕실 선대의 행적에 관한 기록과 가사의 배경을 책에 함께 수록함.

《용비어천가》 제39장 주해에 집안 지역의 성과 큰 비석에 관한 기록을 수록함. 이 비석은 오늘날 광개토왕릉비를 가리킨 것으로 이해되지만, 당시 기록은 주변 유적을 금나라의 것으로 설명함.

세종이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용비어천가》를 가사로 삼은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공적·사적 연향에 통용하도록 함. 왕실 선대의 공덕을 노래하는 음악을 종묘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의례와 잔치에서 사용하도록 정한 조치.

음악을 통한 보급

의정부는 예조의 공문을 바탕으로 왕실의 공적을 위아래에서 함께 노래하게 하자는 뜻을 밝힘. 조참과 외교문서를 보내거나 황제의 조칙을 맞는 행차 등에 사용할 곡과 궁조도 구체적으로 제안했으며, 세종이 이를 따름. 책의 간행·하사와 별도로 노래의 연주 장소와 사용 절차를 제도로 정한 일.

실록은 세종이 《용비어천가》에 관현악을 붙이고 빠르기를 조절해 세 곡을 만들었으며 악보도 갖추었다고 기록함. 한글 가사를 노래하는 치화평·취풍형과 한문 가사를 사용하는 여민락이 궁중 악무의 구성곡으로 이어짐.

세종 대 조정이 개량한 화포의 주조법과 규격, 화약 제조·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간행해 군사 기밀로 보관함. 세종이 군기감의 화포 개량과 발사 시험을 직접 지휘한 뒤 1445년 각 도에 새 규격의 화포를 주조하게 한 사업을 집대성한 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