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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1449년의 기록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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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등이 1398년부터 1432년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를 종합해 계속 적용할 법규는 『신찬경제속육전』 6권에, 일시적으로 적용할 규정은 『육전등록』 6권에 나누어 편찬·간행함. 법전과 등록을 구분해 누적된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종 대 법제 정비 사업.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세종 (조선)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

세종이 6조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던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가 안건을 먼저 심의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는 의정부서사제로 국정 운영 방식을 전환함. 집현전과 관료층의 성장 위에서 의정부의 정책 조정·심의 기능을 확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운영 방식을 조정한 변화.

왕세자 이향이 1441년 그릇에 빗물을 받아 강우량을 재는 방법을 시험하고 조정이 이를 개량함. 1442년 측우기의 규격과 측정용 주척을 정해 중앙과 지방 관아에 보급하고 전국적인 우량 관측·보고 제도를 확립함.

이순지·김담 등이 중국 역법을 바탕으로 한 『칠정산내편』을 1442년에 완성하고, 이슬람 역법을 토대로 한 『칠정산외편』을 1444년에 완성함. 두 역서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월오행성의 운행과 일식·월식을 계산할 수 있는 독자적 역법 체계를 마련한 성과.

조선이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대마도에서 해마다 보낼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하고 세사미두 200석, 체류 기간과 어업 허가 등을 규정함. 1419년 대마도 정벌과 1426년 삼포 개항 이후 왜구 억제와 교역 허용을 결합해 형성한 대일 통교 질서의 제도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 등이 새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문제, 한문 학습 저하 우려, 이두와의 관계, 형정 처리에 새 문자를 사용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세종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운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를 들어 반박함. 상소 참여자들은 의금부에 하옥됐다가 대부분 이튿날 석방되고 정창손은 파직됨.

세종 (조선)

세종 대 조정이 태조·정종·태종실록을 네 질로 등사해 한양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함. 한 곳의 재난으로 기록 전체가 소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분산 보존 체계로, 조선 전기 4대 사고제의 기틀 확립. 임진왜란 때 세 곳의 사고가 소실된 가운데 전주사고본이 보존되어 조선 전기 실록 전승의 기반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