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명을 받은 정초·변효문 등이 각 지역 노농의 경험을 조사해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함. 중국 농서의 내용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농업 경험을 수집해 반영한 관찬 농서임.
세종이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개선할 새 전세제도 공법 도입을 두고 문무백관부터 지방의 농민에 이르기까지 약 17만 명의 의견을 수렴함. 찬반과 지역별 사정을 확인한 뒤 시험 시행과 제도 보완을 이어간 장기 조세 개혁의 출발점.
황희 등이 1398년부터 1432년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를 종합해 계속 적용할 법규는 『신찬경제속육전』 6권에, 일시적으로 적용할 규정은 『육전등록』 6권에 나누어 편찬·간행함. 법전과 등록을 구분해 누적된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종 대 법제 정비 사업.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세종, 압록강·두만강 방면 4군 6진 개척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장영실 등, 자동 물시계 자격루 완성
장영실 등이 물의 흐름을 이용해 정해진 시각마다 종·북·징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함.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돼 조선의 표준 시보 장치로 사용됨.
조선 조정, 이천의 감독 아래 갑인자 주조
조선 조정이 이천의 감독 아래 약 20만 자의 금속활자 갑인자를 주조함. 이전 활자보다 자체와 조판 방식이 정교해져 인쇄 능률과 서적 편찬 역량을 높인 성과임.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
세종이 6조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던 육조직계제에서 의정부가 안건을 먼저 심의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는 의정부서사제로 국정 운영 방식을 전환함. 집현전과 관료층의 성장 위에서 의정부의 정책 조정·심의 기능을 확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운영 방식을 조정한 변화.
단종 (조선) 출생
세종 23년 음력 7월 23일 (율리우스력 8월 9일).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적장자로 출생.
왕세자 이향이 1441년 그릇에 빗물을 받아 강우량을 재는 방법을 시험하고 조정이 이를 개량함. 1442년 측우기의 규격과 측정용 주척을 정해 중앙과 지방 관아에 보급하고 전국적인 우량 관측·보고 제도를 확립함.
이순지·김담 등, 『칠정산』 내·외편 편찬
이순지·김담 등이 중국 역법을 바탕으로 한 『칠정산내편』을 1442년에 완성하고, 이슬람 역법을 토대로 한 『칠정산외편』을 1444년에 완성함. 두 역서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월오행성의 운행과 일식·월식을 계산할 수 있는 독자적 역법 체계를 마련한 성과.
세종, 훈민정음 창제
세종이 백성이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는 새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함. 초성·중성·종성을 결합하는 문자 체계를 마련한 뒤 운서 번역과 행정 문서 적용 등 시험과 연구를 진행함.
조선이 대마도주와 계해약조를 맺어 대마도에서 해마다 보낼 수 있는 세견선을 50척으로 제한하고 세사미두 200석, 체류 기간과 어업 허가 등을 규정함. 1419년 대마도 정벌과 1426년 삼포 개항 이후 왜구 억제와 교역 허용을 결합해 형성한 대일 통교 질서의 제도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 등이 새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문제, 한문 학습 저하 우려, 이두와의 관계, 형정 처리에 새 문자를 사용하는 문제 등을 제기했으나 세종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운서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를 들어 반박함. 상소 참여자들은 의금부에 하옥됐다가 대부분 이튿날 석방되고 정창손은 파직됨.
오랜 논의와 시험을 거쳐 토지의 비옥도를 전분6등, 해마다의 작황을 연분9등으로 나눠 전세를 부과하는 공법 최종안을 마련함. 1444년 하삼도 6현에서 먼저 시행됐으며 전국 확대는 후대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됨.
예종 (조선) 출생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1499년)
세종 대 조정이 태조·정종·태종실록을 네 질로 등사해 한양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함. 한 곳의 재난으로 기록 전체가 소실되는 일을 막기 위한 분산 보존 체계로, 조선 전기 4대 사고제의 기틀 확립. 임진왜란 때 세 곳의 사고가 소실된 가운데 전주사고본이 보존되어 조선 전기 실록 전승의 기반이 됨.
건강이 악화된 세종이 세자 이향에게 일상적인 정무인 서무를 대리하도록 함. 세종은 군사·인사 등 핵심 사안을 계속 관장하면서 문화·편찬 사업에 집중했으며, 세자의 국정 경험 축적과 왕위 계승 준비로 이어짐.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와 전의감 의관들이 중국·고려의 의서 150여 종에서 이론과 처방을 뽑아 병증별로 분류한 『의방유취』 365권을 편찬함. 동아시아 의학 지식을 대규모로 집성한 국가 편찬 사업으로, 세종 대 의학 정책이 향토 약재 정리에서 종합 의학 지식 체계화로 확장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