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조광》에 단편소설 《날개》 발표
이상이 《조광》 1936년 9월호에 《날개》를 발표함. 아내에게 의존하며 방 안에 머무는 일인칭 화자가 돈과 거리의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룸. 화자의 설명과 실제 정황 사이의 간극을 통해 자기 인식의 불안정함을 드러냈으며, 한국 근대 심리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음.
이상이 《조광》 1936년 9월호에 《날개》를 발표함. 아내에게 의존하며 방 안에 머무는 일인칭 화자가 돈과 거리의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룸. 화자의 설명과 실제 정황 사이의 간극을 통해 자기 인식의 불안정함을 드러냈으며, 한국 근대 심리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음.
조선성악연구회가 자체 제작한 《춘향전》을 동양극장에서 공연. 그해 앞서 청춘좌의 공연에 찬조 출연한 경험과 별개로, 명창들이 여러 배역을 맡아 구성한 창극 무대.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어 1935년 1월부터 1936년 8월까지 표준말 사정을 끝내고 한글날에 공표함. 전국에서 두루 통할 표준어의 기준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작업. 사전 편찬과 국어 교육의 바탕이 됨.
수정 타자 원고의 출판사 제출과 열 살 독자 레이너 언윈의 호의적인 독후 보고. 어린이 독자의 반응이 출간 결정에 영향을 준 출판 준비 과정.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명치좌가 영화관으로 문을 엶. 일제강점기 일본영화 상영관에서 출발한 건물이 해방 이후 공공 공연장과 국립극장으로 전환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기능을 축적하게 됨.
동아일보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 보도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처분이 이어진 뒤 동아일보 취체역에서 물러남.
《병아리》를 시작으로 《빗자루》 등 동시를 《가톨릭소년》에 발표한 시기. 다음 해에도 《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거짓부리》 등을 발표하며 이어간 어린이 대상 글쓰기. 후대의 엄숙한 시인상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상에 대한 관찰과 친근한 말맛을 보여주는 작품군.
잡지 《여성》에 《봉별기》를 발표한 시기. 만남과 이별의 기억을 압축한 소설로, 작가 자신의 경험과 연결되는 요소가 있으나 사건을 선택하고 재구성한 문학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 전기의 사실 확인 자료와 소설의 화자·구성을 구별해 읽어야 하는 사례.
조선성악연구회가 동양극장에서 4막 8장으로 구성한 《심청전》을 공연. 정정렬과 송만갑 등 명창들이 참여한 무대.
허버트 브라이너가 카메하메하 가먼트를 설립하고, 조지 브랜지어와 냇 노플리트가 브랜플리트 스포츠웨어를 창업함. 두 회사는 맞춤 제작 중심이던 초기 알로하 셔츠를 공장 생산·도매 유통 체계로 옮긴 대표적 제조사로 자리잡음.
브랜플리트는 훗날 카할라(Kahala)로 사명을 바꾼 기업이며, 알로하 셔츠를 수출·도매할 목적으로 공장 제조에 나선 초기 사례로 알려짐. 1930년대 말 무렵 알로하 셔츠 산업은 약 450명을 고용하고 연간 약 6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짐.
셀머가 밸런스드 액션 색소폰을 공개. 낮은 음을 내는 키의 위치와 작동 구조를 바꾸어 손가락으로 누르기 편하게 만든 모델. 음색뿐 아니라 빠르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조작 방식의 개선으로도 이어진 색소폰 발전의 사례.
일레인 그리피스의 추천으로 조지 앨런 앤드 언윈의 수전 대그널에게 원고가 전달되는 계기. 가족과 지인 사이에서 읽히던 이야기가 상업 출판 검토로 넘어가는 전환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시기.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과 창작의 출구를 찾으려 했던 생애 말기의 이동으로, 이듬해 검거와 병원 입원에 앞선 국면. 자료에 따라 출국 월의 표기가 달라 여기서는 확실한 연도만 제시하며, 이동의 동기와 기대를 단일한 심리로 단정하지 않는 서술.
변동림과 결혼한 해. 건축 직장과 카페 운영을 거쳐 일본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생활 변화를 보여 주는 사건. 전기적 사실을 살피는 데 중요한 관계이지만, 작품 속 모든 여성 인물을 실제 배우자나 특정 연인으로 곧바로 치환하지 않는 구별이 필요한 대목.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학교가 압박받던 상황에서 숭실중학교를 그만두고 용정으로 돌아간 윤동주. 이후 광명중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간 과정. 개인의 학적 변화에 식민지 교육정책과 종교적 양심의 갈등이 겹쳐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
앙리 랑글루아, 조르주 프랑쥐, 장 미트리, 폴오귀스트 아를레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함. 상업적 수명이 끝난 영화도 보존하고 다시 보여줄 가치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관임. 필름뿐 아니라 포스터·의상·촬영 장비와 문서까지 수집하여 영화의 제작과 관람 문화를 함께 남기는 방향으로 발전함.
스페인 내전 중 성당의 도면과 사진이 불타고 석고 모형이 파손됨. 후대 건설은 남아 있는 자료와 복원된 모형을 토대로 진행되어 원설계의 계승과 해석이라는 과제를 안게 됨.
지상에 남아 있던 풍납토성 성벽이 고적 제27호로 지정됨. 보호가 성벽 중심으로 이루어져 내부 생활유적 전체가 함께 보존된 것은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