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망명 뒤 박정희 정권을 비판해 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 행적을 남긴 뒤 실종됨.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 조사에서는 당시 중앙정보부 측 인사들의 현지 공작 정황이 제시됐으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사건의 전모는 확정되지 않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실종됨.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는 당시 주프랑스 공사이자 중앙정보부 프랑스 거점장이던 이상열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현지 공작을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함. 이상열은 진실위 면담에서 사건 개입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함.
게리 버그호프가 연기한 행정병 레이더의 이별을 다룬 두 회짜리 이야기가 시작됨. 후반부는 10월 15일 방송되었으며, 영화에서부터 같은 배역을 맡아 온 배우의 퇴장이 부대의 또 다른 세대교체를 알림. 초기의 친숙한 인물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남은 동료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이어짐.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풍자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영국에서 출간됨. 1978년 BBC 라디오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소설 시리즈와 텔레비전·영화 등으로 확장되어 SF 코미디와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침.
부산대 학생 시위로 부마민주항쟁 발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교내 집회를 벌인 뒤 부산 도심으로 진출하면서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됨. 박정희 정부의 장기집권과 유신체제의 억압, 야당 김영삼 총재 제명 등으로 누적된 반발이 학생들의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사건.
17일에는 시민들의 참여로 부산 시위가 확대되었고, 항쟁이 마산·창원 지역으로 확산됨. 정부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을,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을 선포해 진압에 나섰으며, 항쟁은 10·26 사건을 앞둔 유신체제의 위기를 드러낸 역사적 전환점.
1979년 10월 17일 부산에서 부마민주항쟁 시위에 대학생뿐 아니라 노동자·상인·회사원·고교생 등 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며 항쟁이 확대된 사건. 부산 도심의 시위대는 야간에 수만 명 규모로 늘어났으며 경찰과 충돌하고 주요 공공기관 주변으로 확산됨.
전날 시작된 학생 중심 시위가 광범위한 시민 항쟁으로 발전한 전환점. 정부는 다음 날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항쟁은 마산·창원으로 확산됨.
박정희 정부가 부산 지역의 부마민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10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함. 대학 휴교와 통행금지 강화가 시행되고 군 병력이 시위 진압과 연행에 투입되면서 학생·시민에 대한 강경 탄압이 이루어짐.
《저스티스》 뉴욕·로스앤젤레스 개봉
노먼 주이슨 감독, 알 파치노 주연의 법정 드라마가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 배리 레빈슨과 발레리 커틴이 볼티모어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법제도의 모순을 공동 집필한 작품. 두 작가에게 1980년 아카데미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 지명을 안긴 각본.
정부, 마산·창원에 위수령 발동
박정희 정부가 부마민주항쟁이 확산된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 병력을 투입함. 부산의 비상계엄에 이어 시위를 군사력으로 진압한 조치로, 대규모 연행과 기본권 침해를 동반함.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등을 총격해 살해함.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과 유신체제의 위기를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
1961년 5·16 군사쿠데타부터 약 18년간 이어진 박정희의 집권이 끝났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비상계엄으로 이어짐.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으나 같은 해 12월 12일 군사반란을 계기로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함. 사건의 동기와 김재규의 법적·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됨.
1979년 10월 27일 오전 6시 40분경 경상북도 문경의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지하 갱도에서 화재가 발생함. 갱구에서 약 2,250m 떨어진 컨베이어 구간에서 시작된 불이 운반용 벨트를 따라 번져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작업 중이던 광부 126명 가운데 44명이 숨짐.
전동기의 열이 고무 컨베이어에 옮겨붙은 것이 사고 원인으로 전해짐. 대한석탄공사 역사상 최악의 광산 참사로 기록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피살 바로 다음 날 발생해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사건. 한국 석탄산업을 뒷받침한 노동자의 위험과 산업안전·재난구조의 과제를 보여줌.
거사 직후 김재규가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향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동석하며 사태를 장악하려 했으나, 곧 범행이 드러나 10월 27일 새벽 보안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체포됨. 중앙정보부 병력을 동원하지 못한 이 판단 착오가 거사 실패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지목됨. 사건 수사를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권력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
박정희 사망으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10월 27일 오전 4시를 기해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됨. 계엄사령관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취임. 유신 권력의 공백을 군부가 메우며 이후 신군부 집권의 통로가 된 조치.
부마민주항쟁 대응을 두고 강경 진압을 주장한 차지철 경호실장과 신중론을 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앞에서 충돌하며 권력 핵심부의 균열이 깊어진 국면. 차지철의 월권과 박정희의 신임 편중에 대한 김재규의 불만이 누적된 상황. 10·26 거사의 직접적 배경이자 동기로 거론되는 갈등 구도.
박정희 대통령 국장
10·26 사건으로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됨.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장의위원장을 맡았으며, 영결식 뒤 유해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대통령 재임 중 피살 뒤 치러진 국가 장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이 육군회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함. 김재규와 관련 피의자들의 행적 및 범행 경위를 설명한 당시 수사기관의 공식 발표였음.
박정희 사망 뒤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이 약화된 가운데, 사건 수사를 맡은 전두환과 보안사령부의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가 됨. 발표 내용은 합동수사본부의 당시 판단으로 구분해야 하며, 수사기관이 제시한 범행 동기를 곧바로 확정된 역사적 사실과 동일시할 수 없음.
존 치버의 단편을 테런스 맥널리가 각색한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자신이 이용하고 해고한 여성에게 추적당하는 남성을 통해 교외 중산층의 정서적 단절과 도덕적 공허를 다룬, 아이보리의 Merchant Ivory 외부 연출 작업.
보니 타일러가 일본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야마하 세계가요제에서 'Sitting on the Edge of the Ocean'을 불러 그랑프리를 수상. 이 무렵 타일러는 자신에게 붙은 컨트리 가수 이미지를 벗어나 팝·록 중심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함. 이후 음악적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1980년대의 대대적인 스타일 변화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