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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기록 1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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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수술이 진행되는 시간을 시청자가 함께 체감하도록 구성한 〈Life Time〉를 방송함. 실제로 흐르는 시간과 극 속 시간을 맞추는 방식으로 의료진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강조함. 환자의 생사를 둘러싼 긴박함을 대사뿐 아니라 회차 전체의 형식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였음.

개발도상국에 더 유리한 무역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 이른바 허용조항을 채택한 사건. 한 나라에 준 혜택을 다른 체약국에도 적용한다는 최혜국대우 원칙에 일정한 예외를 인정한 장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상품의 관세를 특별히 낮추는 일반특혜관세제도, 개발도상국 상호 간의 관세 인하 등이 그 대상. 경제발전의 격차를 고려한 우대를 허용하되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 부당한 장애를 만들지 않도록 조건을 둔 결정.

도쿄 라운드가 마무리되며 관세 인하와 함께 보조금·정부조달·제품규격·수입허가 등 여러 분야의 협정이 마련된 시점. 국경에서 걷는 세금만 낮춰서는 해결되지 않는 무역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진전.

예를 들어 정부가 물품을 구매할 때 외국 기업을 어떻게 대우할지, 상품가격을 세관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등을 공통 규칙으로 정리하려는 시도. 다만 여러 협정은 참여를 선택한 나라에만 적용되어, GATT 참가국 모두가 같은 의무를 지는 단일한 체제는 아니었던 한계.

마틴 셔먼의 연극 《Bent》가 뉴욕 뉴아폴로 극장에서 개막. 나치 독일의 동성애자 박해와 수용소에서의 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로버트 앨런 애커먼이 연출.

리처드 기어가 맥스, 데이비드 듀크스가 호르스트, 데이비드 마셜 그랜트가 루디 역으로 출연. 기어의 출연은 1980년 6월 1일까지 이어졌으며, 작품은 6월 28일 종연.

유엔 총회가 결의 34/68로 달과 기타 천체에서의 국가 활동을 다루는 달협정을 채택한 사건. 달과 천연자원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자원 개발이 실현 가능한 단계에 이르면 국제제도를 마련한다는 방향의 제시. 우주조약의 비전유 원칙을 자원 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지만, 우주조약 자체를 일괄 개정한 것은 아닌 별도 협정.

우주조약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한 첫 극장용 《스타 트렉》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함.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요 배우들이 복귀했고, 커크와 엔터프라이즈호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을 넘어 대형 스크린으로 옮겨 감.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조우를 긴 호흡으로 다루며 우주선과 우주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함.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갈렸지만, 이후 여러 편의 극장판이 제작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산업적 의미가 있음.

임권택 감독의 무속 소재 문예영화 《신궁》 개봉. 어촌의 무당 왕년과 남편 옥수가 선주이자 고리대금업자인 판수에게 시달리고, 남편을 잃은 왕년이 굿판에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 무속 의례와 어촌 공동체의 착취·원한을 결합한 작품. 윤정희의 왕년 역, 김희라의 옥수 역, 방희의 쪼깐년 역 출연.

임권택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제9사단장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함. 서울과 수도권 병력을 동원한 반란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육군본부·국방부 점령과 반대 지휘관 체포를 거쳐 군 지휘권 장악으로 귀결됨.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는 이미 진행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지 못했으며, 대법원은 이 사건을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육군참모총장의 지휘권에 반항한 군사반란으로 판단함. 최규하 정부가 곧바로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신군부가 이듬해 국가권력 전반을 장악하는 기반이 된 사건이었음.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가 전두환 등과 함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준비하고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함. 반란 지휘부가 모인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에서 휘하 병력의 서울 진입을 지시했으며, 제9사단 병력이 이튿날 새벽 중앙청에 진주함.

반란 뒤 노태우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어 수도 방위의 핵심 지휘권을 맡음. 이 사건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기존 군 수뇌부를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하는 과정의 주요 단계였음.

배경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의 권력 공백기에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교들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를 모의함.

전개

9사단장이던 노태우가 병력을 동원해 반란에 가담했고, 최규하 대통령의 원대복귀 명령에도 불응. 사태 직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라 신군부 집권의 토대 마련.

전두환 반란 주도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에 속한 전두환·노태우와 이들을 지지한 장교들이 수도권 병력과 주요 부대를 동원해 12·12 군사반란의 중심을 이룸.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공수부대 등에서 형성된 인맥은 정규 지휘체계의 명령을 거스른 병력 운용을 가능하게 한 조직적 기반이었음.

반란 뒤 신군부 인사들이 군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면서 기존 지휘부가 교체됨. 하나회는 신군부의 중요한 인적 토대였지만 두 집단의 범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며, 반란에는 하나회 회원 외의 지지 세력도 참여함.

전두환 주도자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강제 연행에 맞서 정규 지휘계통의 병력을 모아 반란 진압을 시도했으나 지휘부의 분열과 병력 이탈로 실패함. 12월 13일 새벽 신윤희가 지휘하는 헌병들이 수도경비사령부를 장악하고 장태완과 그곳에 모여 있던 육군 지휘부를 체포·무장해제함.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체포 시각은 새벽 3시 40분 무렵이었으며, 체포 과정에서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음. 장태완의 제압과 노태우의 후임 사령관 임명은 반란 세력이 수도 방위 지휘체계를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음.

전두환 반란 주도

진주만 공격 직후 로스앤젤레스의 전쟁 공포를 소재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규모 코미디.

《죠스》와 《미지와의 조우》에 이어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로 방향을 넓힌 작품. 로버트 저메키스와 밥 게일의 각본을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존 벨루시, 댄 애크로이드, 미후네 도시로, 크리스토퍼 리 등이 출연한 전쟁 풍자극.

1979년 12월 20일 계엄보통군법회의가 김재규에게 내란목적살인·내란수괴미수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 박선호 등 범행에 가담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도 함께 중형을 선고받음. 거사의 성격을 '내란'으로 규정한 군사재판의 판단이 이후 평가 논쟁의 출발점.

10·26 사건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PARC를 방문해, 제록스가 애플 주식 매입권을 얻는 대가로 알토의 기술 시연을 관람. 스몰토크-76 환경과 네트워킹, 그리고 마우스 중심의 WYSIWYG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봄. 이 방문은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 개발에 영향을 끼친 일화로 자주 인용됨.

제록스 PARC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제9사단장이 12월 7일 무렵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문제를 논의하고 실행일을 12월 12일로 정함. 전두환은 이어 이학봉·허삼수·우경윤 등에게 체포 장소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도록 지시함.

군 수뇌부를 제거하고 지휘권을 확보하려는 준비는 병력 동원 지휘부의 구성으로 이어짐. 정승화의 10·26 사건 관련 혐의 수사는 표면적 명분이었으며, 법원은 이 계획과 실행을 군 지휘권 장악을 위한 반란의 일부로 인정함.

전두환 주도

경쟁사의 16비트 프로세서가 시장에 잇따라 등장하며 8086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자, 인텔이 1979년 12월 대규모 판매·마케팅 캠페인 ‘오퍼레이션 크러시(Operation Crush)’를 기획함. 단순한 성능 수치보다 개발 도구·기술 지원·공급 능력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 솔루션’을 앞세워 1년 안에 2,000건의 디자인 윈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움.

캠페인은 1980년 전사적으로 전개되어 약 2,500건의 디자인 윈을 확보했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8086의 8비트 버스 변종인 8088이 IBM PC에 채택된 것이었음. 8086 계열이 경쟁 프로세서를 제치고 개인용 컴퓨터의 사실상 표준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 된 캠페인.

인텔 8086 캠페인의 주력 프로세서 인텔 캠페인 시행 기업

영국영화등급분류위원회(BBFC)가 무술영화의 인기와 청소년 사이에서 쌍절곤 등 무술 무기 사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자 《용쟁호투》를 다시 검토함. BBFC 사무총장 제임스 퍼먼이 이소룡이 쌍절곤을 사용하는 장면과 예고편·홍보물의 관련 이미지를 제거하도록 배급사에 요구함.

이후 쌍절곤·표창·도리깨 등 특정 무술 무기의 화면 묘사를 제한하는 것이 BBFC의 일반적인 검열 관행으로 확대됨. 《용쟁호투》와 1970년대 쿵후 열풍이 영화 등급·검열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

용쟁호투

피터 위어가 각본·연출을 맡고 매트 캐럴이 제작한 텔레비전용 심리 스릴러의 공개. 대학 연구자의 집에 배관공이 찾아오면서 일상과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는 이야기. 주디 모리스와 이바 캔츠가 출연하며 계급과 권력관계를 블랙코미디로 드러낸 작품. 1978년에 완성되고 1979년 작품으로 공개된 텔레비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