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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박지성

Park Ji-sungen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 행정가·해설가임. 교토·PSV·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활약하며 유럽 최상위 무대에서 한국 선수의 역할을 넓혔고, 은퇴 후 유소년 지원과 구단·국제 축구 행정으로 활동을 이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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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추가 정보

일본에서 출발해 유럽의 큰 경기에 이르기까지

박지성은 명지대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미드필더임. 교토의 강등과 승격, 천황배 우승을 경험한 뒤 PSV로 옮겼고, 초기 부상과 적응의 어려움을 지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득점하는 선수로 성장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네 차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2009년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함.

활동량을 넘어선 전술적 가치

넓은 활동 범위와 압박이 대표적인 강점이었지만, 공이 없을 때의 위치 선정과 공간 침투, 동료를 지원하는 움직임도 중요한 무기였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AC밀란을 상대할 때 안드레아 피를로를 압박한 역할은 그의 전술 수행을 보여 주는 사례임. 국가대표팀에서는 2002년 포르투갈전 결승골과 2010년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주장 역할처럼 공격과 리더십에서도 큰 책임을 맡음.

성공과 좌절이 함께 있던 선수 생활

대표팀에서는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A매치 100경기 13골을 남김. 클럽에서는 유럽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했지만 부상과 선발 제외도 경험함. 200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시즌에는 결승 명단에서 빠졌으며, QPR 이적 후에는 팀의 강등과 어려운 출전 여건을 겪음. 마지막 PSV 임대 시즌을 마친 뒤 2014년 무릎 문제로 은퇴를 발표함.

사회공헌과 행정이라는 두 번째 경력

현역 시절인 2011년 JS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유소년과 재능학생 지원에 나섰고, 은퇴 뒤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홍보대사와 FIFA 마스터 교육 과정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힘.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과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테크니컬 디렉터를 경험했으나 모든 역할이 성공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님. 전북의 성적 부진 속에서 운영 책임에 대한 비판을 받았고 2024년에는 테크니컬 디렉터에서 자문 역할로 전환함.

2021년에는 자신을 응원하던 노래의 인종차별적 표현을 그만 사용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함. 2025년 AFC 프로축구위원회 회의를 이끌었고, 2026년에는 월드컵 해설과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 활동으로 축구의 제도와 대중 소통에도 참여함. 혁신위원회는 개혁 방향을 제안하는 자문기구로 출범했으며 협회 결정을 강제하는 집행기구는 아님.

생일 표기에 관하여

기본 정보의 1981년 2월 25일은 FIFA·UEFA 등 공식 선수 자료에 기재된 등록 생년월일임. 개인적으로 기념하는 생일은 음력 2월 25일로 알려져 있어, 매년 양력 기념일은 공식 선수 자료의 표기와 다를 수 있음.

타임라인 29건 · 2000–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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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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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에서 뛰던 박지성이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진출함. 이후 팀의 2부리그 강등과 2001년 승격을 모두 경험하며 경기 출전과 역할 변화 속에서 성장함. 한국 프로리그를 거치지 않고 일본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그의 해외 진출 경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대목임.

대한민국이 부산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폴란드에 2 대 0으로 승리함. 주장 홍명보가 수비를 이끈 대표팀은 1954년 첫 출전 이후 기다려 온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두며 대회 출발을 승리로 장식함.

홍명보

대한민국이 인천에서 열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기고 사상 처음 월드컵 16강에 진출함.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이 후반 결승골을 넣었음. 상대의 두 차례 퇴장이라는 경기 상황과 별개로, 두 선수가 연결한 득점은 한국의 조 1위 통과를 확정한 결정적 장면이었음.

이영표 홍명보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16강전에서 연장 끝에 2-1 역전승을 거둠. 설기현의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이영표의 왼쪽 크로스를 안정환이 헤더로 마무리함. 박지성과 홍명보도 출전한 이 경기는 한국이 월드컵 8강에 처음 오른 순간이었음.

이영표 홍명보

대한민국이 스페인과 연장까지 0-0으로 맞선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함. 홍명보가 마지막 킥을 성공시키며 아시아 국가 최초의 월드컵 4강 진출을 확정함. 박지성과 이영표도 출전했으며, 개인의 활약과 함께 수비 조직력과 팀 전체의 성취로 기억할 사건임.

홍명보 이영표

박지성이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천황배 결승에서 헤더 동점골을 넣었고, 교토는 2-1 역전승으로 우승함.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 치른 일본에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음. 유럽으로 떠나기 전 소속팀에 첫 주요 컵대회 우승을 남겼다는 의미가 있음.

교토에서 PSV로 옮긴 박지성이 RKC 발베이크를 상대로 네덜란드 리그에 데뷔함. 유럽 진출 직후에는 부상과 적응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경기 속도와 전술에 적응하며 팀의 중요한 공격 자원으로 성장함. 곧바로 성공한 이적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친 전환점이었음.

PSV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AC밀란을 3-1로 이김. 박지성이 선제골을 넣고 이영표가 필립 코쿠의 득점을 도왔으나, 합계 3-3에서 당시의 원정 다득점 규칙에 따라 탈락함. 두 한국 선수가 유럽 최상위 무대에서 보여 준 공격·수비 기여와 팀의 아쉬운 탈락을 함께 보여 주는 경기임.

이영표

박지성이 PSV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함.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첫 한국 선수가 됐으며, 이후 7시즌 동안 네 차례 리그 우승을 경험함. 활동량뿐 아니라 공간을 읽는 움직임과 상대에 맞춘 전술 수행으로 경쟁했지만, 항상 선발이 보장되는 선수였던 것은 아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첼시와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함. 박지성은 대회 과정에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지만 결승전 출전 명단에는 들지 못했음. 유럽 정상에 오른 팀의 일원이면서도 마지막 경기에서는 뛰지 못한 아쉬움이 남은 시즌이었음.

박지성이 로마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함.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이 대회 결승 무대에서 뛰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0-2로 패함. 전년도 결승 명단 제외의 아쉬움을 넘어 직접 결승 무대를 밟았지만 두 번째 우승은 이루지 못했음.

대한민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16강에 진출함. 주장 박지성과 측면 수비수 이영표가 함께 출전했으며, 개최국이었던 2002년과 달리 해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처음 조별리그를 통과한 성과였음. 날짜는 경기 개최지 기준임.

이영표

박지성이 아시아 축구 환경 개선과 어린 선수 지원을 목적으로 JS파운데이션을 설립함. 현역 선수일 때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자선경기와 장학 지원으로 이어짐. 은퇴 이후의 공적 활동을 이해할 때도 경기장 밖 역할이 이미 이 시기부터 확장되고 있었음을 보여 줌.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계약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성공적인 시기와 달리 새 팀에서는 부상과 출전 경쟁 속에 어려운 시즌을 보냈고, QPR도 2012-13시즌 강등됨. 선수 개인의 명성과 팀의 성적이 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경력상의 전환점임.

박지성이 QPR에서 PSV로 한 시즌 임대 복귀함. 유럽 진출 초기에 성장했던 구단으로 돌아와 경험 많은 선수의 역할을 맡음. 이 시즌은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이 됐으며, 첫 PSV 시기의 도약과는 다른 경력 후반의 귀환이었음.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홍보대사로 홈구장에서 소개됨. 은퇴한 뒤에도 구단과의 관계를 이어 가며 국제 행사와 사회공헌 활동 등에 참여하는 역할을 맡음. 경기 출전이나 지도자 취임이 아니라 구단을 대표하는 대외 활동이라는 점에서 선수 경력과 구분됨.

대한축구협회가 임원 개편을 통해 홍명보에게 전무이사, 박지성에게 유스전략본부장 역할을 맡김. 2002년 월드컵의 동료였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행정 책임을 맡은 사건임. 박지성의 역할은 유소년 육성 전략에 초점이 있었으며 대표팀 감독직과는 구분됨.

홍명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팟캐스트에서 자신과 관련된 응원가에 포함된 한국인 비하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함. 과거에는 응원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경험과 인식의 변화를 설명함. 팬 문화의 애정 표현도 당사자와 다른 아시아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공론화한 발언이었음.

전북 현대가 박지성과의 계약을 연장하면서 테크니컬 디렉터 직책을 맡김. 어드바이저보다 구단의 기술적 방향과 선수단 운영에 가까운 역할로 활동 범위가 확대됨. 선수 시절의 성취와 별개로 행정가로서의 판단과 구단 성과가 평가받는 위치에 들어선 사건임.

전북 현대가 박지성의 역할을 테크니컬 디렉터에서 어드바이저로 바꾼다고 밝힘. 팀의 성적 부진 속에서 선수 출신 행정가의 책임과 운영 판단을 둘러싼 비판도 제기됐음. 기술 부문 책임자로서의 역할은 내려놓았으나 자문 관계는 유지됨.

박지성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혁신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으며 이영표도 위원으로 참여함. 축구 행정의 신뢰 회복과 유소년 육성 등을 논의하는 한시적 자문기구로, 협회의 결정을 직접 강제하는 조직은 아니라고 설명됨. 사전 예고와 달리 최휘영 장관은 공동위원장이 아닌 위원으로 참여함.

이영표
갱신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