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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이 되는 이방과가 태어남.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경(曔)이며 방과(芳果)는 초명이고 자는 광원.

이방과는 고려 말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군사 활동과 정치 변동에 참여했으며, 조선 건국 뒤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왕위에 오름. 재위 중 왕세자로 이방원을 책립한 뒤 1400년 왕위를 넘겼고, 훗날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음.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가 상왕으로 지내던 중 한성 인덕궁에서 승하함. 향년 63세.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는 상왕으로 예우받으며 지냈고, 사후 정종의 묘호가 올려짐.

정종은 제1차 왕자의 난 뒤 왕위에 올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사병 혁파와 군정 정비 등을 추진한 군주. 재위는 길지 않았지만,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넘기면서 조선 초기 권력 질서가 태종 체제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된 인물.

훗날 조선 제1대 국왕 태조가 되는 이성계가 고려 동북면 화령군 영흥 흑석리에서 태어남. 본관은 전주이며, 아버지는 이자춘, 어머니는 영흥 최씨로 알려짐.

이성계는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며 무장으로 성장했고, 1388년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함. 이후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와 국가 제도 정비를 추진하며 새 왕조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

태조가 한양부를 한성부로 고치고, 기존 한양부의 아전과 백성을 견주로 옮긴 뒤 그 지역을 양주군으로 개편함. 새 수도 한양을 단순한 지방 행정구역이 아니라 조선의 중심 행정도시로 재정립하기 위한 조치.

한성부라는 명칭은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 행정 체계와 결합해 장기간 사용됨. 한양 천도 이후 수도의 지위와 주변 지역의 행정 관할을 구분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초기 지방제도 개편.

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 이성계가 태상왕으로 물러난 뒤 창덕궁 광연루 아래 별전에서 승하함. 향년 74세. 태종 8년 음력 5월 24일의 일로, 양력 환산일은 1408년 6월 18일임.

태조는 위화도 회군을 거쳐 조선을 건국하고, 국호 제정과 한양 천도 등을 추진해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1398년 왕자의 난 뒤 왕위를 정종에게 넘긴 뒤에도 태상왕으로 지냈으며, 사후 건원릉에 안장됨.

태조가 개성부를 개성유후사로 고치고, 양광도를 충청도로, 서해도를 풍해도로 개칭함. 또한 강릉도와 교주도를 통합해 강원도라 정하면서 지방 행정구역 체계를 정비함.

이 조치는 고려의 옛 수도 개성을 별도의 유후사 체제로 관리하고, 새 왕조의 지방 통치 단위를 재편한 행정 개혁. 한양 천도와 중앙집권 체제 구축이 진행되던 시기, 전국의 지역 명칭과 관할 체계를 조선의 통치 질서에 맞춰 정비한 사건.

태조가 한양 도성 축조를 총괄할 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을 설치하고 조직과 직제를 정함. 새 수도 한양의 성곽 건설을 국가 사업으로 본격화하기 위한 전담 기구 설치.

정도전에게는 성곽을 쌓을 위치를 정하게 하고, 관련 관원들에게 축성 계획과 인력 동원 체계를 마련하도록 함. 경복궁과 종묘 조성이 마무리된 뒤 수도 방어와 도시 경계를 갖추기 위한 한양도성 축조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선 전환점.

훗날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고려 함흥부 귀주에서 태어남.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로, 본명은 이방원이며 자는 유덕.

이방원은 조선 건국 과정에 참여한 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권력을 장악하고, 1400년 정종의 양위를 받아 태종으로 즉위함. 재위 기간 왕권 강화와 군사·행정 제도 정비를 추진하며 조선 초기 중앙집권 체제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

북경 주재 각국 외교대표단이 의화단의 반외세·반기독교 폭력이 확산되자 청나라 총리각국사무아문에 공동 요구를 전달함. 외교단은 의화단을 실질적으로 해산시키고, 수도와 인근 지역의 치안 회복을 위한 효과적인 진압 조치를 즉시 시행할 것을 촉구함.

청 조정은 이미 5월 17일 의화단 억제를 지시하는 칙령을 내린 상태였으나, 외교단은 기존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함. 이 요구는 청 정부가 의화단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외교적 압박을 보여 주며, 이후 북경 공사관 지구 포위와 열강의 무력 개입으로 이어지는 긴장 고조의 한 장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학순이 73세로 별세함. 1991년 국내 거주 피해생존자 가운데 처음으로 실명 공개 증언에 나서며, 오랫동안 침묵 속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사회와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함.

김학순의 증언은 피해자 개인의 경험을 넘어 전시 성폭력, 식민지 지배 책임, 여성 인권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출발점이 됨. 이후 피해생존자들의 추가 증언과 법적·시민사회 운동으로 이어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상징적 기반으로 남음.

bunny.net이 Bunny DNS의 DNS 질의 과금을 전면 폐지하고, 계정당 최대 500개 도메인에 대한 DNS 호스팅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발표함. DNS 질의 수 제한과 요청당 과금이 없어졌으며, 스마트 레코드와 헬스 모니터링 기능도 별도 유료 플랜 없이 포함됨.

Bunny DNS는 정적 레코드 조회를 넘어 지연시간 데이터, 상태 점검, JavaScript 기반 로직을 활용해 트래픽을 동적으로 라우팅할 수 있는 DNS 서비스임. bunny.net은 기존에 약 30만 개 도메인과 월 약 2,000억 건의 DNS 질의를 처리해 왔다고 밝힘.

다만 Bunny DNS 자체의 사용량 과금만 폐지된 것이며, bunny.net 플랫폼 계정에는 기존의 월 최소 1달러 사용 조건이 유지됨. 이번 무료화와 함께 자동 존 스캔, IPv6 네임서버 지원, DNSSEC, HTTPS·SVCB·TLSA 등 현대 DNS 레코드 지원 확대도 함께 강조됨.

bunny.net이 컨테이너화된 애플리케이션을 전 세계 엣지 환경에 배포할 수 있는 엣지 컴퓨팅 제품 ‘매직 컨테이너스(Magic Containers)’를 공개함. Docker 이미지 기반 배포를 지원해 개발자가 기존 컨테이너·프레임워크·배포 흐름을 크게 바꾸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됨.

서비스는 전 세계 41개 이상 리전에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할 수 있으며, 트래픽을 실시간 분석하는 AI 프로비저닝 엔진이 배포 위치와 규모를 자동 조정하도록 구성됨. 이용자는 특정 리전을 고정하거나 비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위치와 운영 범위도 제어할 수 있음.

CDN·스토리지·스트리밍 중심의 기존 제품군에서 나아가, 애플리케이션 실행 환경까지 제공하는 엣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확장한 제품 발표. bunny.net이 콘텐츠 전달 인프라 사업자에서 글로벌 컴퓨팅 인프라 사업자로 범위를 넓히는 전환점.

그동안 외부 투자 없이 성장해 온 bunny.net이 6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함. 루나 캐피털이 라운드를 주도하고, 슬로베니아 투자사 캐피털 제네틱스가 참여한 첫 외부 자금 조달.

확보한 자금은 제어판 전면 개편, 신규 제품과 기능 개발, 네트워크 성능·플랫폼 안정성 개선, 고객 지원 및 문서화 강화에 투입할 계획으로 제시됨. CDN을 기반으로 보안과 컴퓨팅까지 아우르는 개발자 중심 엣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확장하기 위한 성장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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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net을 통해 콘텐츠를 전송하는 웹사이트가 100만 곳을 넘어서며 주요 성장 이정표에 도달함. 2021년 브랜드 전환 이후 CDN을 중심으로 한 엣지 인프라 플랫폼 전략이 확장되는 가운데, 전 세계 웹서비스 운영자와 개발자 기반이 빠르게 늘어난 결과.

저비용 CDN 대안으로 출발한 서비스가 백만 개 이상의 웹사이트를 지원하는 글로벌 전송 인프라로 성장했음을 보여 준 시점. bunny.net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더 빠른 네트워크 확장과 제품군 고도화를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섬.

창업자 데얀 그로펠니크 펠젤이 BunnyCDN에서 bunny.net으로의 브랜드 전환을 공식 발표함. 단순 저비용 CDN을 넘어 콘텐츠 전송·보안·성능을 아우르는 차세대 엣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비전을 확장하면서, 더 이상 ‘CDN’이라는 이름에만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

CDN은 여전히 서비스의 핵심 엔진으로 유지하되, 기존 글로벌 인프라 위에 신규 제품과 서비스를 구축하는 플랫폼 전략을 제시함. 웹 성능·보안·콘텐츠 전송을 하나의 단순한 서비스 경험으로 제공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웹사이트 운영자와 개발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한 전환점.

bunny.net

BunnyCDN이 2020년 말 활성 풀 존 10만 개를 넘기며 첫 주요 성장 이정표에 도달함. 서비스 출범 뒤 수년간 꾸준히 고객과 전송 구성을 늘려 온 결과로, CDN 시장에서 단순한 소규모 대안 서비스를 넘어선 규모를 입증한 시점.

같은 시기 BunnyCDN은 Perma-Cache와 Edge Storage 등 신규 기능 개발을 추진하며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함. 콘텐츠 전송 비용 절감에 집중하던 초기 CDN에서 벗어나, 더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장기 비전으로 전환하는 계기.

데얀 그로펠니크 펠젤이 고비용 CDN 시장을 바꾸겠다는 목표 아래 BunnyCDN을 출범시킴. 전 세계 8개 PoP를 기반으로 콘텐츠 전송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CDN 서비스로 시작.

외부 투자나 대규모 조직 없이 한 사람이 진행한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출발했으며, 대형 기업 중심의 비싼 CDN 서비스 대신 개발자와 소규모 서비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을 지향함. 이후 bunny.net으로 확장되는 사업의 첫 정식 서비스 기반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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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얀 그로펠니크 펠젤이 며칠 밤을 새워 3대의 서버로 구성한 첫 사내 CDN 개념을 구축함. 자신의 웹사이트 트래픽 비용과 성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규모 구현이었으나, CDN을 필요로 하는 다른 개발자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

기존 CDN 시장이 대형 기업 중심의 높은 가격과 제한적인 가치 제공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하면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더 나은 CDN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방향이 구체화됨. 이 초기 구현은 2015년 BunnyCDN 출범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출발점.

웹사이트 트래픽 증가로 CDN 비용이 월급에 가까워지는 문제를 겪은 데얀 그로펠니크 펠젤이 빠르고 강력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CDN이라는 초기 구상을 세움. 당시 CDN 시장은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서비스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구상.

이 아이디어는 개발자와 소규모 서비스도 비용 부담 없이 콘텐츠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CDN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발전했으며, 이후 BunnyCDN의 출발점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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