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 (18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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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우 이도엽.
일본의 성우 타케우치 준코.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 이건명.
앙리 타지펠·마이클 빌리그·로버트 번디·클로드 플라망이 참가자들을 점의 수 추정이나 그림 선호처럼 사소한 기준에 따라 최소집단으로 분류하고 익명의 보상 배분 행동을 관찰함. 집단 사이에 기존의 적대감이나 경쟁,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고 참가자가 자신에게 보상을 줄 수도 없는 조건에서도 자기 집단 구성원에게 더 유리하게 보상을 배분하는 내집단 편애 확인. 사회적 범주화만으로도 집단 간 차별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사회 정체성 이론 형성의 핵심 실증적 토대 마련.
앨런 케이가 객체를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독립적 계산 단위로 보는 관점을 바탕으로, 초기 언어 설계안인 스몰토크-71을 구상함. 스몰토크-71은 정식 구현·공개된 시스템이 아니라, 이후 스몰토크-72로 발전하기 전 단계의 설계 구상으로 알려짐.
이 구상은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 장치가 아니라 학습·표현·시뮬레이션을 위한 동적 매체로 만들려는 케이의 다이나북 비전과 연결됨. 이후 최초의 구현 버전인 스몰토크-72, 개발 환경을 확장한 스몰토크-76,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몰토크-80으로 이어지는 스몰토크 계열의 출발점으로 평가됨.
앨런 케이가 1971년 제록스 팰로앨토 연구소(PARC)에 합류해 학습연구그룹(Learning Research Group, LRG)을 이끌기 시작함. 그룹의 목표는 작은 개인용 컴퓨터가 어린이와 성인의 학습·표현·탐구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데 있었음. 케이는 컴퓨터를 사무 자동화 장치가 아니라 개인이 사고하고 소통하는 ‘동적 매체’로 보았고, 이 관점은 다이나북 구상, 알토 컴퓨터, 스몰토크 개발로 이어짐. 이후 LRG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객체지향 환경을 교육과 창작의 맥락에서 함께 설계한 핵심 연구 집단으로 자리 잡음.
1971년 앨러나 하이스가 비평가 브렌던 길과 함께 '도시자원예술재단(Institute for Art and Urban Resources)'을 세움. 뉴욕의 버려진 건물을 작가 작업실·전시장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 대안적 예술 조직. 훗날 MoMA PS1로 이어지는 출발점.
1971년 인텔 엔지니어 테드 호프·페데리코 파긴·스탠 메이저가 일본 계산기 회사(비지컴)의 의뢰로 4비트 단일 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개발해 출시. 연산 기능을 하나의 칩에 담은 세계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모든 사물에 지능을 심는 디지털 시대의 출발점. 같은 해 인텔은 기업공개(IPO)로 상장.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이자 박정희 대통령이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을 탄압하여 민주화운동을 약화시키고, 10월 유신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려 조작한 사건.
구속자는 이신범(서울법대 ‘자유의 종’ 발행인), 심재권(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 위원장), 장기표(서울법대), 조영래(사법연수원생), 수배자는 김근태(서울 법대).
1971년 9월 9일 수감자 약 2,200명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애티카 교도소를 장악하고 교도관들을 인질로 잡음. 나흘간의 협상이 결렬되자 록펠러 주지사가 주(州) 경찰의 무력 탈환을 명령, 9월 13일 진압 과정에서 수감자와 인질 등 모두 43명이 사망. 미국 교정사(史)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며 그의 강경 통치를 상징하는 사건.
폴 볼커가 재무부 국제통화담당 차관으로서 닉슨 대통령, 존 코널리 재무장관, 아서 번스 연준 의장 등과 함께 캠프데이비드 비밀회의에 참여함. 회의에서는 달러의 금 태환 정지, 90일간의 임금·물가 동결, 10% 수입부과금 등 국제수지와 국내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응할 정책 조합을 마련함.
닉슨은 1971년 8월 15일 텔레비전 연설에서 달러의 금 태환 정지와 임금·물가 동결을 발표함. 볼커는 국제통화 체제의 작동 원리를 설계에 반영한 핵심 실무자였으나, 금 태환 정지 직후 환율을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지는 당시 회의에서 명확히 결론 나지 않았음. 이 조치는 브레턴우즈 고정환율 체제의 사실상 종식으로 이어짐.
대한민국의 농구코치 위성우.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마크 헨리.
프랑스의 육상 선수 장 갈피온.
영국의 드럼 연주자 토니 맥캐롤.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루이지 디 비아조.
조용필(기타 및 보컬)은 전설적인 드러머 김대환을 주축으로 기타리스트 최이철과 함께 3인조 록 밴드 김트리오를 결성. 당시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가수왕을 차지하며 조용필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됨.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기동.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신민당) 소속이었던 김대중 의원은 전남 목포에서 지원 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던 중 전남 무안군 국도에서 마주 오던 대형 트럭이 돌진하는 의문의 교통사고 당함. 왼쪽 고관절에 큰 부상을 입어 평생 다리에 장애가 남았고, 동승했던 보좌관 등 일행 3명이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