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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s

이벤트

총 5958건

1946 17건
80년 전

재 동경 순국열사 해방의사 유골 봉환회가 일본 각지의 형무소 묘지를 찾아 수습해서 한국(부산)으로 봉환. 이후 부산, 대구, 대전, 천안, 서울 순으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각 지역에서 추모가 이루어짐.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이 만세와 추모를 했다고 함. 서울역에 도착한 날짜는 6월 16일.

좌익 노동단체인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약칭 전평)’에서 주관하는 노동절 기념행사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 약 20만 여명의 노동자 참석. 전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즉시 실천하라. 생활이 보장되는 최저 임금제를 실시하라. 실업자에게 직업을 달라. 공장 폐쇄 및 해고 절대 반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 미군정은 좌익 단체의 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함.

1945 3건
81년 전

일제강점기에 이 일대는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렸고 성당도 종현성당·종현본당으로 불림. 1945년 광복 후 동 이름이 명동(明洞)으로 바뀌면서 성당 이름도 오늘날의 명동성당(명동본당)으로 자리잡음. 지명 변화가 성당의 통칭으로 굳어진 계기.

광복 후 매일신보사에 사원자치위원회가 조직되어 신문 발행을 이어가다가,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미군정은 주주 대표와 사원자치위원회와의 조정을 거쳐 오세창을 사장으로 하는 새 간부진을 구성. 새 간부진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고 지령을 이어 속간함.

매일신보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 1945년 11월 23일 김구·이시영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 제1진으로 김포비행장에 도착. 미군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입국함. 김규식은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지 약 32년 만에 귀국해 국내 정치 활동과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나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