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사원자치위원회가 매일신보 발행을 이어가던 가운데,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청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이후 오세창 등 새 간부진을 중심으로 신문사가 재편되고, 매일신보는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발행되는 방향으로 정리됨.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해방 직후 새 언론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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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의 재판 증빙 자료로 경성고등법원에 보내졌던 사전 원고가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화물 창고에서 발견됨. 10여 년에 걸친 어휘 수집과 집필의 결실이 사라질 뻔하다 극적으로 돌아온 것. 이 원고를 바탕으로 『큰사전』 간행이 재개되었으며, 원고는 뒷날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로 지정됨.
상고가 8월 13일 기각되었으나 이틀 뒤 광복을 맞아 8월 17일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 4명이 풀려남. 석방된 회원들은 곧바로 학회를 재건하고 한글날 행사를 되살림. 중단되었던 우리말 사전 편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계기.
리틀 보이가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건배럴 방식인 것에 비해 팻 맨은 플루토늄을 이용한 인플로전 방식. 오전 11시 2분에 투하되어 약 7만 4천 명 이상이 사망. 화상과 방사능 피폭으로 1945년 말까지 사망자 수가 계속 증가했는데 조선인 피해자만 약 7 ~ 10만 명, 사망자는 4만 명 이상으로 추산.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길이 3m, 무게 4.4t, 위력은 15kt의 리틀 보이 투하. 강제 노역 중이던 한국인 3만여 명을 포함해서 14만 명 이상의 사망자 발생. 전쟁 이전 폭격 피해가 적어 핵폭탄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적합한 군사 도시라고 판단해서 선택.
『독립신문』 충칭판이 1945년 7월 20일 제7호 발행.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비정기적으로 간행된 중국어 판본의 마지막 확인 호수로, 임시정부의 대외 활동과 한국광복군 관련 소식, 국제 정세 및 항일전선 관련 기사를 수록.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에서 내폭형 플루토늄 폭탄의 실제 폭발 가능성을 검증했고 20kt의 폭약과 맞먹는 폭발력을 기록.
대한민국의 천주교 수녀, 시인 이해인.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류영수.
나치 독일의 SS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1900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남상국. (~2004년)
소련의 과학자, 광물학자 알렉산드르 페르스만. (1883년~)
대한민국의 배우 맹호림.
이탈리아의 기업인 마시모 모라티.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이장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한성수. (1920년~)
대한민국의 가수 조영남.
영국의 음악가 이언 맥라건. (~2014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노식.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