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1944년 4월 임시헌장을 개정해 부주석제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을 증원한 뒤 조선민족혁명당 주석 김규식을 부주석으로 선출. 김규식은 4월 26일 김구 주석과 함께 취임 선서를 함. 한국독립당을 대표한 김구와 조선민족혁명당을 대표한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독립운동 세력이 참여하는 통일전선 내각을 구성함.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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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박수일. (~2008년)
1944년 4월 조선총독부의 유교 교화기관인 경학원의 사성(司成)으로 임명됨. 사성은 경학원에서 강학·교화를 맡은 직책으로, 유교적 언어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함. 일제 말기까지 그의 친일 행적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리.
미국의 백만장자 모험가 스티브 포셋. (~2007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장로회 목사 주기철. (1897년~)
대한민국의 방송 작가 정하연.
대한민국의 방송인 이상용. (~2025년)
대한민국의 방송인 이상열.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 한징이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함. 언론인 출신으로 1930년 조선어학회에 가입해 사전 편찬과 표준어 사정에 헌신한 인물. 이윤재에 이은 두 번째 옥중 순국으로,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빚은 희생.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국어학자 이윤재가 함흥형무소 미결감에서 고문과 추위·굶주림 끝에 순국함. 한글 보급 운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친 학자로, 사전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옥중에서 생을 마침. 조선어학회 사건의 비극을 상징하는 죽음.
매일신보가 1943년 12월 7일 「지원 안한 학도 징용, 5일 훈련소에 일제히 입소」 기사를 게재함. 학도지원병제에 응하지 않은 조선인 학생들이 징용 대상으로 처리되는 상황을 보도. ‘지원’이라는 형식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관헌의 압력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선인 학생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한 국면에서 학병 지원자를 진정한 국민으로, 미지원자를 비국민, 낙오자로 대비시키며 학병 동원 담론을 만들어낸 것으로 분석됨.
이광수가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지원을 권유하는 활동을 전개함. 도쿄 메이지대학 강당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 등에 참석하고 일본 각지의 유학생을 상대로 전쟁 참여를 독려함. 조선 청년을 일본군에 동원하려 한 이광수의 전시 친일 협력을 대표하는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서 중국어 기관지 『독립신문』 충칭판을 창간. 1926년 상하이판 폐간 뒤 다시 발간된 판본으로, 중국 사회와 연합국 측에 임시정부의 활동·한중 연대·항일전선에서의 역할을 알리는 대외 선전 매체로 활용. 전시기의 물자 부족과 인쇄 여건 제약으로 비정기 발행.
대한민국의 성우 조명남. (~2026년)
대한민국의 종교인 이재록. (~2023년)
서독의 육상 선수 쿠르트 벤틀린.(~2024년)
대한민국의 배우 이신재. (~2020년)
프랑스의 희극인, 배우 스테판 콜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