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이 에리트레아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에서 에티오피아를 침공. 이탈리아군은 항공기와 기갑전력을 동원해 진격했고 1936년 5월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국제연맹은 이탈리아를 침략국으로 판단하고 무기·금융·일부 원자재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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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이 에리트레아와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에서 에티오피아를 침공. 이탈리아군은 항공기와 기갑전력을 동원해 진격했고 1936년 5월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
에티오피아 정부는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국제연맹은 이탈리아를 침략국으로 판단하고 무기·금융·일부 원자재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
국제연맹 총회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부과했던 경제제재의 종료를 결정. 제재는 무기와 일부 원자재·금융거래를 제한했으나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포함하지 않은 조치.
결정 당시 이탈리아군은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고 에티오피아 병합을 선포한 상태였으며, 제재는 7월 15일 종료. 에티오피아 정부는 병합의 승인을 거부하고 국제연맹 회원국 지위를 유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기구 국제연맹의 규약이 채택되어 창설이 결정. 윌슨이 가장 역점을 둔 구상으로, 강화조약 안에 국제연맹 규약이 포함됨.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표방한 최초의 보편적 국제기구의 출발.
일본 관동군이 선양 인근 류탸오후에서 남만주철도 선로 일부를 폭파한 뒤 중국군의 행위라고 주장하며 군사행동 개시. 관동군은 이 사건을 구실로 이튿날 선양을 점령하고 수개월에 걸쳐 만주 주요 지역으로 점령지를 확대.
중국의 제소를 받은 국제연맹은 리튼 조사단을 파견. 조사단은 만주국을 자발적인 독립운동의 결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국제연맹 총회는 1933년 2월 조사보고서를 채택.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네바 군축회의 철수와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와 동등한 군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결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11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추인.
탈퇴는 국제연맹 규약에 따른 통고 기간을 거쳐 발효됐으며, 독일 정부는 이후 공군 창설과 징병제 부활 등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위반하는 재무장 정책을 추진.
일본 정부가 국제연맹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고. 국제연맹 총회가 리튼 조사단 보고서를 토대로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는 결의를 채택하자 일본 대표단이 총회장에서 퇴장한 데 이은 조치.
국제연맹 규약에 따라 탈퇴는 통고 2년 뒤 발효. 일본은 탈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만주국 지배를 유지하고 중국 대륙에서 군사 활동을 확대.
1920년 3월 19일 미국 상원이 베르사유 조약 비준안을 7표 차로 부결해 미국의 조약 가입과 국제연맹 참여가 무산됨. 앞서 1919년 11월 19일 표결에서도 윌슨 대통령이 로지 상원의원의 유보 조항을 거부하면서 비준이 좌절. 조약의 집단 안보를 규정한 제10조에 대한 반대가 핵심 쟁점이었으며, 결국 미국은 1921년 독일과 별도 강화 조약을 맺어 베르사유 체제 밖에 머무름.
1986년 제25회부터 한국영화인협회가 영화진흥공사와 공동 주최자로 참여함. 1991년 한국영화인협회 단독 주최 체제로 바뀌고 1992년 제30회부터 민간기업이 참여하면서 정부 주도 영화상에서 민간 영화계 중심 시상식으로 전환함.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제49회 대종상 23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 등 15개 부문을 수상함. 단일 작품에 수상이 집중되면서 심사 방식과 몰아주기 시상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됨.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가 제60회 대종상영화제를 2027년 3월 12일 개최하겠다고 발표함. 2023년 제59회 이후 중단된 시상식의 재개 계획으로, 개최될 경우 4년 만의 시상식.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 통합됐던 대종상이 제10회를 맞아 독립 시상식으로 복귀함. 이후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 공동 주최, 영화진흥공사 단독 주최 등으로 운영 구조가 변화함.
제59회 대종상이 극장 개봉 영화뿐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리즈까지 심사 범위를 확대하고 시리즈 작품상·감독상·남우상·여우상을 신설함. 영화 부문 최우수작품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차지했으며, 시리즈 작품상은 《무빙》, 감독상과 남우상은 《카지노》의 강윤성과 최민식, 여우상은 《무빙》의 한효주가 수상함. 영화 시상식의 경계를 스트리밍 시리즈로 확장한 변화.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가 법원의 대종상영화제 업무표장 3차 매각 절차에서 낙찰자로 선정돼 대금을 납입하고 개최권 확보를 발표함.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후신인 한국영화인협회는 매각에 반발하며 향후 영화제 보이콧 가능성을 예고함.
서울회생법원이 대종상 개최권을 보유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에 지급불능과 부채초과를 이유로 파산을 선고함. 총연합회가 파산 선고 취소를 구하며 회생 절차를 밟았으나 2024년 10월 24일 항고가 기각돼 파산이 확정됨.
제5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녀주연상 후보 9명이 모두 불참함. 불참자 시상 제외 방침, 유료 인기투표, 후보 정보 오기와 수상자 선정 번복 등 운영 문제가 겹치면서 영화계의 집단적 불신과 시상식 권위 하락이 드러난 사건.
제34회 대종상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이 최우수작품상·감독상·여우조연상을 수상함. 본선 진출작 가운데 유일한 미개봉작이 주요 상을 받은 결과를 두고 심사 자격과 공정성 논란이 확산됨.
대종상 독립 시상식을 중단하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영화 부문에 통합함. 1969년에는 수상자가 없었고 1970년에는 최금동이 시나리오상을 받은 뒤 통합 운영을 종료함.
국립극장에서 제1회 대종상 시상식을 개최함. 1961년에 제작된 극영화 20편과 문화영화 9편이 출품됐으며, 17개 부문을 시상함. 최우수작품상은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 감독상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신상옥이 수상함.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일반 시민 1만 명 규모의 국민심사단을 처음 모집한다고 발표함. NFT 방식의 투표권을 부여하고 여섯 개 연기상에서 전문 심사위원단과 국민심사단의 평가를 같은 비중으로 반영하도록 설계함.
문교부가 국산영화의 예술적 수준 향상과 영화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우수국산영화상을 시행함. 정부가 주관한 이 영화상이 이후 대종상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