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영이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 도쿄에 건너가 우두종계소에서 종두 기술을 익힘. 두묘의 제조·저장법과 송아지 사양법, 채장법을 배우고 두묘 50병을 확보해 귀국함. 수입한 두묘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종두 재료를 마련·보급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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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가, 화가 앙드레 드랭. (~1954년)
아일랜드의 정치인 윌리엄 코즈그레이브. (~1965년)
프랑스의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1821년~)
오스트리아의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 (~1903년)
부산 제생의원에서 우두법을 배운 지석영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처가가 있는 충주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이 공개적으로 시행한 종두법의 초기 사례이자, 국내 우두 보급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출발점. 이후 서울에서도 종두를 시행하며 우두법 보급 활동을 이어감.
지석영이 일본 해군이 부산에 설치한 제생의원에서 원장 마쓰마에 유즈루와 군의 도즈카 세이사이에게 약 두 달간 우두 접종법을 배움. 두묘와 종두침 두 개를 얻어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충주의 처가에 들러 약 40명에게 우두를 접종함. 조선인에 의한 공개적 우두 접종의 초기 사례이자 이후 국내 종두 보급의 출발점.
세르비아의 물리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 (~1958년)
쇼타이 왕은 도쿄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받음. 병을 핑계로 끝까지 이주를 늦추며 저항하려 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나하 항을 통해 도쿄로 강제 이주.
독일의 정치인 한스 라머스. (~1962년)
리투아니아의 경제학자, 정치인 유르기스 샤울리스. (~1948년)
영국의 물리학자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 (~1959년)
인도네시아의 민족운동가 카르티니. (~1904년)
중화민국의 언론가 위유런. (~1964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류큐 번을 폐지하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한다고 공식 선언. 제2차 류큐 처분.
핀란드의 정치인 아이모 카얀데르. (~1943년)
쇼타이 왕, 일본 경찰과 군대가 지켜보는 와중 슈리성을 떠나 나하의 중성어전으로 거처를 옮김. 중성어전은 류큐 왕국의 왕세자가 거주하던 저택. 주권 찬탈의 상징적 사건.
3월 25일 일본의 관료 마쓰다 미치유키가 600여 명의 군경을 거느리고 나하 항에 도착. 3월 27일 슈리성에 들어가 류큐 왕부의 나카진 왕자에게 폐번치현 통보하고 3월 31일까지 성을 비울 것을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