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트 벤틀린 출생
서독의 육상 선수 쿠르트 벤틀린.(~2024년)
서독의 육상 선수 쿠르트 벤틀린.(~2024년)
대한민국의 배우 이신재. (~2020년)
프랑스의 희극인, 배우 스테판 콜라로.
스웨덴의 배우 토마스 폰 브룀센.
미국의 정치인, 시애틀의 첫 흑인 시장 노먼 라이스.
대한민국의 소설가 현진건. (1900년~)
미국의 노벨문학상 시인 루이즈 글릭. (~2023년)
일본의 기업인 야노 히로타케. (~2024년)
일본의 군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1884년~)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 기토 히로시.
대한민국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김명식. (1890년~)
스위스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
레슬리 그로브스와 제임스 코넌트가 오펜하이머에게 서한을 보내 뉴멕시코 특별연구소의 Scientific Director로서 권한과 책임을 공식 확인함. 오펜하이머에게 연구소의 과학 업무 수행, 연구방향 결정, 민간 인력 관리와 보안 등의 책임을 부여함. 기존 이벤트에 적힌 1943년 4월 20일은 미 육군 공병대와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로스앨러모스 운영 계약일이므로 오펜하이머 개인의 ‘공식 인사 발령일’로 보지 않음.
조선민족혁명당, 제7차 전당대표대회에서 김규식을 중앙집행위원회 주석으로 선출하고 김원봉을 총서기에 재선임. 임시정부에 참여한 조선민족혁명당을 김규식이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김원봉이 당의 실무와 조직을 이끄는 지도체제를 구성.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고 연합국의 승전에 대비한다는 노선을 확립함.
김규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에 임명되어 대외 선전과 외교 활동을 담당. 중국과 연합국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과 한국 독립 보장을 요구하며, 임시정부 내 좌우합작 지도부의 주요 인물로 활동.
오펜하이머가 버클리에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로버트 서버 등 이론물리학자들을 모아 핵분열 무기의 가능성과 설계, 임계질량, 폭발 메커니즘 등을 검토하는 연구를 조직함. 연구 결과는 원자폭탄 개발에 필요한 이론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정리했고, 오펜하이머가 이후 중앙 무기연구소를 이끌 후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됨.
코넬 울리치가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Dime Detective》 1942년 2월호에 게재함. 이 작품은 1944년 단편집 《After-Dinner Story》에 「Rear Window」라는 제목으로 수록됨. 해당 텍스트가 1954년 영화 《이창》의 각색 원작으로 활용됨.
함석헌이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함. 이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등 『성서조선』 관계자들이 검거되었고, 잡지는 강제로 폐간됨.
1942년 일제의 조선 징병제 시행을 찬양하는 한시와 글을 발표하고 각지를 돌며 강연 활동을 벌임. 조선 청년의 전쟁 동원을 유교적 명분으로 정당화한 적극적 친일 행각.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 포함의 핵심 근거가 된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