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8,099

정렬

1986 20건
40년 전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이 노동 현장에 위장취업한 혐의로 연행된 권인숙에게 6월 6일과 7일 성고문을 가함. 권인숙이 피해를 공개하고 고소하자 변호인과 여성·종교·민주화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당시 검찰은 가해자를 기소유예하고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왜곡했음. 6월항쟁 뒤 재수사가 진행되어 문귀동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으로,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과 수사기관의 은폐를 규탄하는 연대를 확대한 계기였음.

전두환

1983년 미아찾기운동에 이어 1986년 5월 정부 위탁으로 어린이찾아주기 종합센터 운영을 시작한 조치. 실종아동과 가족의 재회를 돕는 업무를 전담하면서 경제적 지원 이외의 보호 문제로 넓어진 사업. 방송과 생활 속 광고 매체를 활용해 실종아동 정보를 알리고 제보를 받는 방식으로 전개된 찾기 활동. 2001년에는 유전정보를 활용한 가족찾기사업을 제안하고, 2005년 관련 법 제정 뒤에는 보건복지부 위탁 실종아동전문기관을 운영하며 이어진 활동. 2017년 12월 위탁 종료까지 실종아동찾기와 실종·유괴 예방교육을 함께 수행한 사업의 출발점.

옛 병원 건물의 일부를 임시 전시 공간으로 전환한 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가 일반에 문을 엶. 5월 26일의 공식 개막 행사와 구분되는 대중 개방일임. 처음부터 현재의 상설 컬렉션을 갖춘 미술관이었던 것은 아니며, 전시센터의 활동을 거쳐 국립미술관으로 발전함.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며 조성한 올림픽공원의 준공식이 열림. 방이동 일대에 경기장과 녹지를 배치하되 백제 유적인 몽촌토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여, 스포츠시설과 역사·문화 공간을 함께 갖추도록 했음.

대회를 앞두고 사이클·역도·펜싱·체조 등의 경기시설이 마련되었으며, 이후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시설과 조경을 추가로 확충함. 경기 종료 뒤에도 시민이 이용하는 공원으로 남도록 한다는 점이 계획의 중요한 원칙이었음.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가 패미컴용으로 출시.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성장시키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역할수행게임을 친숙한 대사와 단계적인 성장 구조로 풀어낸 작품. 반사신경을 겨루는 액션뿐 아니라 탐험·대화·육성을 즐기는 가정용 게임 경험의 확장.

1986년 미스 오하이오 USA 대표인 할리 베리가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스 USA 대회에서 준우승(1st runner-up). 우승자인 텍사스 대표 크리스티 피히트너에 이어 이름을 올리며 연기 활동 이전 전국 방송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경력.

바이어컴이 MTV 네트웍스의 잔여 지분 인수를 완료해 회사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함. 1985년 단계적 지분 매입과 12월 합병 계약에 이은 거래 완료로, 이후 MTV·니켈로디언 등 케이블 채널을 바이어컴의 핵심 사업으로 확장하는 기반이 됨.

MTV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후 발표한 두 번째 장편 『졸업』 간행. 대학 졸업을 앞둔 가가 교이치로가 친구의 죽음과 다도 모임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훗날 형사가 되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출발점. 대학생에서 경찰청 수사관을 거쳐 일본바시 경찰서 형사로 변화하는 주인공을 장기간에 걸쳐 그려 나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장수 시리즈 시작.

히가시노 게이고

신상옥과 최은희가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 기자회견에서 홍콩 납치, 북한의 영화 제작, 빈 탈출 과정을 설명. 신상옥은 북한에서의 자진 입북 발표가 강압 아래 이루어졌다고 증언.

당시 미국 국무부는 두 사람이 미국에 계속 머물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두 사람도 미국 체류 의사를 표명.

앙리 카강과 동료 연구자들이 촉매의 왼손형·오른손형 비율과 생성물의 비율이 반드시 똑같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고. 예를 들어 촉매가 조금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도 반응 결과물은 그보다 훨씬 더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음. 이런 '비선형 효과'는 원하는 형태의 분자를 얻는 원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됨.

서울대학교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과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장 이재호가 신림사거리 부근 서광빌딩 옥상에서 전방입소 의무군사교육에 반대하며 분신한 사건. 교문이 폐쇄되자 학생들은 신림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으며, 두 사람은 인근 건물에서 군사교육 거부와 반전·반핵을 주장함.

두 사람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김세진은 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 사망함. 사건은 전방입소 거부운동과 반미운동이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