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18,099

정렬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20건

모나코계 투자회사 소버린 자산운용이 SK㈜ 지분 약 15%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된 뒤, 분식회계와 배임 유죄 판결을 받은 최태원의 이사 퇴진과 이사회 개편을 요구함. SK그룹은 우호지분을 결집하며 경영권 방어에 나섰고, 양측의 대립은 2004~2005년 주주총회 표 대결로 이어짐. 행동주의가 개별 거래 개선을 넘어 재벌 총수의 경영권과 책임을 직접 겨냥한 대표적 분쟁인 동시에, 외국계 펀드의 단기 차익을 둘러싼 ‘국부 유출’ 논쟁을 확산한 사례.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가 SK텔레콤 지분 약 6.6%를 확보하고 계열사와의 거래 축소, 이사회 독립성 강화,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함. SK텔레콤이 일부 요구를 받아들이고 주가가 상승하자 타이거는 지분을 처분해 큰 차익을 실현함. 외국인 투자한도 폐지 뒤 해외 기관투자가가 재벌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 경제적 성과까지 거둔 초기 사례.

개정 상법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주의 지분 요건을 발행주식 총수의 5%에서 1%로 낮추는 등 소수주주권의 문턱을 완화함. 주주제안·회계장부 열람·이사 해임 청구 등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도 강화됨. 외환위기 과정에서 드러난 재벌의 과도한 차입과 내부거래 문제에 대응해 주주에 의한 기업 감시를 제도화한 변화.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 조치의 하나로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한도를 원칙적으로 폐지함.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의 대규모 지분을 취득하고 주주총회·이사회 구성·자본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크게 확대됨. 이후 타이거 매니지먼트·소버린·칼 아이칸·엘리엇 등 외국계 투자자의 지배구조 캠페인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참여연대가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두 회사를 대상으로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함. 삼성전자에서는 부실 계열사 지원과 경영진 책임을, SK텔레콤에서는 계열사 거래와 경영 투명성을 주요 문제로 제기함. 시민단체가 소액주주의 위임장을 모아 주주총회를 기업 감시의 장으로 활용한 초기 사례로, 이후 국내 주주권 운동의 방법론을 형성한 계기.

GE 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엔진용 정밀 주조부품 업체 Consolidated Precision Products(CPP)를 117억5천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 인수대금은 현금 70억 달러와 신규 부채로 조달하며, CPP가 생산하는 LEAP·GEnx 등 엔진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내부화하려는 거래.

2024년 독립회사 출범 이후 GE 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한 최대 규모의 인수. 항공엔진 수요 증가와 부품 공급난 속에서 핵심 생산공정을 직접 통제하려는 산업구조 변화이며, 거래 종결은 규제 승인 등을 거쳐 2027년 하반기 예정.

메타가 이메일 발송, 여행 예약, 웹 탐색, 온라인 양식 작성 등을 이용자 대신 수행하는 개인용 AI 에이전트 Muse를 미국에서 출시. iOS·안드로이드·웹과 WhatsApp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앱을 닫은 뒤에도 작업을 계속하고 이메일 발송이나 구매 등 민감한 행동 전에 이용자의 승인을 받도록 설계된 서비스.

메타의 소비자용 AI가 질문 응답과 콘텐츠 생성을 넘어 외부 서비스에서 직접 행동하는 실행형 에이전트로 확장된 전환점. 출시는 미국에 한정되며, 보안성과 개인정보 보호 수준은 실제 이용을 통해 추가 검증이 필요한 단계.

미국 워싱턴 D.C.의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가 갈라 개막 공연을 열며 공식 개관. 개막 무대에서는 재클린 케네디의 의뢰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MASS: A Theatre Piece for Singers, Players and Dancers》가 세계 초연된 문화행사.

국가 문화센터 구상에서 출발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기념시설 기능을 함께 갖춘 기관이 실제 공연장으로 문을 연 시점. 이후 미국의 대표적 공연예술기관이자 국가적 문화행사 공간으로 자리 잡는 출발점.

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파키스탄·필리핀·태국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동남아시아 집단방위조약, 이른바 마닐라 조약에 서명.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억제한다는 냉전기 집단방위 구상 아래 체결된 조약으로,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의 법적 기반이 된 협정.

조약은 1955년 2월 19일 발효되었고 이후 방콕에 본부를 둔 SEATO가 운영되기 시작. NATO와 달리 상설 통합군 체계가 약하고 회원국 구성이 지역 현실과 어긋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으며, 베트남전쟁 이후 결속력이 약화되어 1977년 기구 해체로 이어진 냉전기 아시아 안보체제의 출발점.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이탈리아와 연합국 사이의 휴전 성립을 공개 발표하고, 피에트로 바돌리오 이탈리아 총리도 이를 확인. 협정은 앞선 9월 3일 시칠리아 카시빌레에서 비밀리에 서명된 상태였으며, 9월 8일 발표로 이탈리아의 추축국 전선 이탈이 공식화된 전환점.

발표 직후 독일군은 ‘아크세 작전(Operation Achse)’을 통해 이탈리아군 무장해제와 이탈리아 본토·점령지 장악에 나섰고, 이탈리아는 독일 점령 지역과 연합군 진격 지역으로 분열. 이후 바돌리오 정부가 연합국 측 공동교전국으로 전환하면서 이탈리아 전선과 내전적 대립이 함께 전개되는 계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던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주권과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투표 참여자의 약 96%가 독립에 찬성했으며, 이후 의회의 독립 절차와 1991년 11월 새 헌법 채택으로 이어진 국가 형성의 핵심 분기점.

현재의 북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비교적 평화적으로 독립 국가로 전환하는 기반이 된 투표. 다만 알바니아계 주민 상당수가 투표를 보이콧해 독립 과정 초기부터 국가 정체성과 민족 간 대표성 문제가 함께 드러난 계기.

독일군이 V-2 탄도미사일을 이용한 런던 공격을 시작. 1944년 9월 8일 런던 치즈윅에 V-2 한 발이 떨어져 3명이 사망한 런던 최초의 V-2 공격.

V-2는 발사 뒤 음속을 넘는 속도로 탄도 비행해 당시의 방공망으로 요격하기 어려웠던 무기. 군사적으로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실전 사용과 전후 미국·소련의 로켓 기술 개발로 이어진 기술사적 전환점.

나라시노시립 제4중학교 향토사연구회가 1976년 여름 오와다신덴 등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주민 증언을 조사함. ‘보호’를 위해 나라시노 수용소에 수용된 조선인 일부가 군에 의해 주변 마을로 넘겨지고 주민들에게 살해·매장되었다는 증언을 수집함. 공문서만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나라시노 수용소 인근 학살을 지역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규명하는 출발점.

1918년 2월 일본 농상무성이 독일식 소시지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축산시험장 기사 이이다 요시후사를 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파견함. 수용 중인 카를 얀 등 독일인 기술자 5명에게 식육가공 시험을 수행하게 하고 제조법을 습득함. 나라시노시 자료는 얀이 처음에는 비법 공개를 주저했으나 수용소장 사이고 도라타로의 설득 뒤 응했다고 전함. 물리적 강제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포로와 수용 당국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진행된 만큼 자발적인 기술 교류로 단정하기 어려움. 농상무성은 확보한 제조법을 강습회를 통해 일본 각지의 식육가공업자에게 보급함.

1918년 말 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인플루엔자가 유행해 독일군 포로 25명이 사망함. 수용소장 사이고 도라타로도 1919년 1월 1일 고열에도 신년 인사를 위해 수용소를 찾은 뒤 같은 날 사망함. 사망한 포로 25명은 수용 중 다른 원인으로 숨진 5명과 함께 현재의 후나바시 시영 나라시노 영원에 안장됨.

나라시노 수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