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이민·국적법 개정안 통과
미국 상원이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찬성 76표, 반대 18표로 통과시킴. 양원의 조정 절차와 대통령 서명을 남겨 둔 단계로, 이 표결 자체를 법의 제정일이나 전면 시행일과 혼동하지 않을 필요가 있음.
미국 상원이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찬성 76표, 반대 18표로 통과시킴. 양원의 조정 절차와 대통령 서명을 남겨 둔 단계로, 이 표결 자체를 법의 제정일이나 전면 시행일과 혼동하지 않을 필요가 있음.
최은희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민며느리》가 개봉. 가난 때문에 어린 신랑의 집에 들어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는 점순을 직접 연기하며 장편영화 연출에 진출.
박남옥과 홍은원에 이어 한국영화사에서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자리한 작품. 인기 TV극을 영화로 옮기며 배우로 쌓은 경험을 연출로 넓힌 첫 작업.
신분을 숨기고 과거에 급제한 상노 출신 관리의 운명을 다룬 임권택의 사극. 백성의 어려움을 몸으로 겪은 주인공이 선정을 베풀지만 출신이 드러나 유배형을 받고, 왕의 비밀스러운 배려를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얻는 이야기. 신분질서와 개인의 능력 사이의 충돌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 신영균·김지미·김승호 출연, 곽일로 각본, 동원영화사 제작.
미국 하원이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찬성 318표, 반대 95표로 통과시킴. 오랫동안 유지된 출신국별 할당제를 끝내는 개혁이 하원의 문턱을 넘었으며, 가족결합을 중시하는 새로운 선발 방식이 입법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음.
대한민국 국회가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의 비준동의안을 의결함. 식민지 지배의 책임 처리와 청구권 협상의 적정성을 둘러싼 반대 속에서도 박정희 정부와 여당이 비준 절차를 진행한 사건임. 국회 동의는 같은 해 12월 비준서 교환과 협정 발효로 이어짐.
1965년 제작된 이만희 감독의 영화 《돌아온 여군》의 한국 극장 개봉. 한국전쟁 중 국군 간호장교 포로들을 호송하던 북한군 장교가 이들을 보호하고 귀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7인의 여포로》가 검열과 재편집을 거쳐 개봉한 제목.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1965년 사회보장법 개정안에 서명하며 저소득층 의료부조 제도 메디케이드(Title XIX)를 노인 대상 메디케어(Title XVIII)와 함께 창설. 메디케이드는 연방과 주가 공동 재정을 부담하고 주정부가 연방 기준에 따라 운영하는 의료부조 프로그램으로 출범. '위대한 사회' 구상의 핵심 성과이자 미국 공적 의료보장 체계의 주요 전환점.
70세로 사망함. 탐정소설과 소년 모험물, 평론뿐 아니라 문학상·잡지·작가단체 운영을 통해 남긴 기반이 후대 추리문학으로 이어짐.
존드 3호가 달을 지나가며 더 선명한 뒷면 영상을 촬영함. 루나 3호가 처음 보여 준 지형을 보완하고 당시 사진에 담기지 않았던 영역의 자료를 추가함. 촬영 영상은 7월 29일 지구로 전송됨.
루나 3호의 재가동이 아니라 다른 탐사선이 첫 촬영의 성과를 이어 간 사건임. 필름을 기내에서 처리한 뒤 읽어 보내는 방식은 이어졌지만 영상장치는 새로 개발되었음.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90세로 사망했음. 7월 27일 국내에서 가족장이 치러졌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1965년 7월 19일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90세로 사망했음. 그는 1960년 4월혁명 이후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같은 해 5월 29일 하와이로 떠나 체류하고 있었음.
장례는 1965년 7월 27일 고국에서 가족장으로 거행되었고,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됨. 국가기록원은 사망과 장례행렬에 관한 사진 및 장례 관련 문서를 보존하고 있음.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가 자신이 집필한 고교 일본사 교과서의 검정 처분을 문제 삼아 일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 검정이 표현·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국가가 역사교육의 내용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를 법정의 쟁점으로 만듦.
이후 제2차·제3차 소송으로 이어졌으나 각 사건의 청구 내용과 결론은 같지 않았음. 1997년의 일부 승소를 첫 소송의 최종 결과와 혼동해서는 안 됨.
1965년 6월 조선일보 수습 8기로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함. 수습 기간 편집부와 외신부 등을 거쳤고, 외신부장 리영희 아래에서 외신 기사 작성과 국제정세 보도를 익힘. 이후 외신부·사회부를 거쳐 1967년 정치부 기자로 옮기며 정치 취재 경력을 본격화함.
대한민국과 일본이 도쿄에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경제협력, 어업,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조인한 사건. 비준 절차를 거쳐 같은 해 12월 18일 발효되어 양국 외교관계가 정상화됨.
청구권협정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언급된 문제를 포함해 양국과 국민의 재산·권리·이익 및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규정한 문서.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의 경제협력 약정이 함께 마련됐으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전쟁배상 합의와 동일시하기는 어려움.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자금과 대외협력 확대의 계기로 삼았으나, 협상 과정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책임과 청구권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대규모 반대운동이 제기됨. 경제협력의 확대와 과거사 청산의 미해결 쟁점을 함께 남겼으며, 이후 개인의 손해배상청구에 적용되는 범위를 둘러싼 해석 차이가 지속됨.
대한민국의 배우 전해룡.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흥원.
영국의 배우, 모델 엘리자베스 헐리.
대한민국의 정당, 대학교수 김은경.
일본의 가수, 성우 오가타 메구미.
덴마크의 배우 코니 닐센.
육군 방첩대 소속 중령으로 근무하던 이상열과 원충연 대령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녹취가 원충연 등의 반정부음모 혐의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주요 자료로 사용됨. 원충연 등 관련자들이 1965년 5월 체포되면서 사건이 공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