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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길 펨버턴이 덴비의 상징적 미드센추리 식기 셰브런(Chevron)과 아라베스크(Arabesque)를 디자인함. 셰브런은 치즈 항아리를 장식하던 룰렛 무늬에서, 아라베스크는 러시아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붉은빛 손그림 장식에서 비롯됨. 두 라인 모두 1960~70년대 덴비의 황금기를 대표하며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됨.

덴비 포터리 컴퍼니

덴비가 장식용 화병·볼·담배 항아리 등에 '다네스비 웨어(Danesby Ware)' 상표를 붙여 선보임. 같은 시기 전통 솔트글레이즈 생산을 접고 다양한 색 유약 컬렉션으로 무게를 옮겨, 일렉트릭 블루 등 수집가들이 아끼는 라인을 내놓음. 실용 스톤웨어에서 색채를 입힌 아트·주방 도자기로 정체성을 넓힌 전환. 다네스비 웨어 명칭은 1924년경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쓰임.

관세청(Customs & Excise) 기록에 덴비가 영국에서 병과 항아리를 가장 많이 만드는 생산지로 등재됨. 유리가 흔치 않던 시절 스톤웨어 용기는 식품·약품 저장의 필수품이었고, 덴비는 그 수요의 정점에 선 제조사였음. 설립 20여 년 만에 전국 최대 규모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기록.

윌리엄 본이 점토층 자리에 도자기 공방을 세우고, 운영은 20대 초반의 막내아들 조셉에게 맡김. 회사는 조셉의 이름을 따 '조셉 본(Joseph Bourne)'으로 불렸고, 솔트글레이즈 스톤웨어 병·항아리를 만들며 빠르게 자리 잡음. 217년을 이어갈 덴비 포터리가 시작된 해.

덴비 포터리 컴퍼니

벨퍼 포터리의 도공이던 윌리엄 본이 알프레턴–더비 간 유료도로 공사 중 드러난 대규모 점토층을 감정하도록 불려감. 더비셔는 점토와 석탄이 풍부해 당시 영국 도자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본은 이 점토의 높은 품질을 단번에 알아봄. 이 발견이 이듬해 덴비 포터리 설립으로 이어진 출발점.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집회가 번지자, 이에 맞서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이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열며 '태극기 집회'로 불림.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에도 이어짐. 국민 통합의 상징이던 태극기가 특정 정치 진영을 대표하는 표상으로도 쓰이게 된 현상으로, 국기의 상징성을 둘러싼 논쟁을 낳음.

2009년 5월 서울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던 중 불단과 벽체 사이에서 1919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와 독립신문류 등이 발견됨.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덧그린 형태로,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됨. 9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태극기는 2010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2021년 보물로 승격됨.

2007년 1월 26일 법률 제8272호로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공포되고 6개월 뒤인 7월 27일부터 시행됨. 그동안 대통령령 수준의 규정으로 다뤄지던 국기의 제작·게양·관리·선양을 법률로 끌어올려 규정함. 태극기의 지위와 사용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한 현행 국기 제도의 토대.

1984년 2월 21일 대통령령 제11361호로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을 제정함. 그동안 '국기제작법'과 '국기게양방법에 관한 건'으로 나뉘어 있던 규정을 하나로 통합해 국기의 제작·게양·관리 기준을 체계적으로 정함. 2007년 국기법 시행 전까지 태극기 사용의 기본 규범으로 기능함.

정부가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를 꾸려 제각각이던 태극기 규격을 통일하는 작업에 착수, 여러 안을 검토한 끝에 '우리국기보양회' 안을 채택함.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태극과 4괘의 위치·비율 등 현행과 같은 작도법을 확정함. 오늘날 태극기 표준 도안의 직접적인 토대.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태극기를 새 나라의 국기로 공식 제정함. 다만 이때까지도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라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함께 쓰임. 대한민국 정부의 국기로서 태극기의 법적 지위가 확립된 시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1년 3월 16일 태극기에 조국 독립을 향한 결의를 붓글씨로 적고 서명해, 중국에서 활동하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샤를 메우스)에게 건넴.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를 거쳐 도산 안창호 가족에게 전해졌고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됨. 임시정부 지도자의 친필이 담긴 항일 유산으로,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2021년 보물로 승격됨.

태극기

1919년 3월 1일 시작된 3·1운동에서 전국의 시위 군중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침. 일제가 금지한 태극기를 거리에 내건 행위 자체가 독립 의지의 표현이었고, 이를 계기로 태극기는 광복 이전까지 한국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굳어짐. 같은 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태극기를 국기로 계승함.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자, 일제가 태극기의 공식 사용을 금지하고 일장기를 강요함. 공적 영역에서 사라진 태극기는 도리어 빼앗긴 국권과 민족을 상징하는 표상이 되어, 이후 독립운동의 깃발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됨.

조선의 외교고문 오언 N. 데니가 1890년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이 그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태극기. 가로 2.6m가 넘는 큰 기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자 초기 태극기의 형태를 보여주는 자료. 1981년 데니의 후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2021년 보물로 지정됨.

태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