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다 스가코 출생
일본의 각본가 하시다 스가코. (~2021년)
일본의 각본가 하시다 스가코. (~2021년)
탄자니아의 정치인 알리 하산 므위니. (~2024년)
러시아의 작곡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1973년)
헝가리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부잔스키 예뇌. (~2015년)
영국의 정치인 토니 벤. (~2014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탄핵 심판서를 가결하여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직에서 면직했음.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직에서 면직한다는 탄핵 심판서를 통과시켰음. 장기간 미국에 머문 대통령과 상하이 임시정부 사이의 권한·재정 갈등, 독립운동 방략에 관한 대립이 누적된 결과였음.
탄핵안은 미주 교민의 인구세 처리와 정부 재정 수입 방해, 미주 지역 정무를 임시정부에서 분리하려 한 행동, 임시헌법과 임시의정원의 권한을 부정한 점 등을 사유로 제시했음. 심판위원회는 상하이를 떠나 직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은 점과 정부의 행정·재정을 방해한 점도 지적했음. 위임통치 청원을 둘러싼 논란이 갈등의 배경이었다면, 최종 탄핵 심판은 정부 운영과 헌법·의정원 권한을 둘러싼 구체적인 행위들을 문제 삼았음.
탄핵은 대통령의 임기가 명시되지 않았던 임시정부 체제에서 지도부를 교체하기 위한 절차이기도 했음. 이 결정으로 이승만의 임시대통령 재임은 끝남. 이후에도 그는 하와이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임시정부와의 관계는 새로운 외교 직책을 맡는 과정을 거쳐 다시 조정됨.
한 원자 안에서 두 전자가 네 양자수(상태)를 모두 똑같이 가질 수 없다는 배타 원리 제시. 전자들이 같은 상태에 몰리지 못하고 차례로 채워지는 이유 설명. 주기율표의 구조와 물질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기본 원리가 됨.
이집트 당국의 허가에 따라 무덤·작업실·보관소가 카터 측에 공식 인계되어 중단되었던 조사가 재개된 사건. 새 발굴 허가와 방문 규칙을 정비하고 유물 보존을 다시 시작한 과정. 유물에 대한 개인적 권리 주장과 언론 독점 문제를 조정하면서 이집트의 감독 아래 발굴을 계속하는 체제로의 전환.
베니토 무솔리니가 1925년 1월 3일 이탈리아 하원에서 잔혹한 정치 폭력과 사회당 정치인 자코모 마테오티 살해 사건에 대한 정치·도덕적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함. 이 연설은 파시스트 정권이 의회 견제를 무력화하고 공개적 독재를 확립하는 주요 전환점으로 평가됨. 독재 제도는 단 하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후 수년에 걸친 법률·행정 조치로 강화됨.
디트로이트의 J. L. 허드슨 백화점에 원심식 냉동기 세 대가 설치됨. 상품 생산을 위한 환경 제어에서 쇼핑객의 쾌적함을 위한 냉방으로 용도가 확대되는 사례가 됨.
길버트 워커가 전 세계 기압과 강수 관측자료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열대 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의 대규모 기압 변동인 남방진동을 설명함. 당시에는 페루 연안의 해수 온난화 현상인 엘니뇨와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음.
반일운동 배척과 내선융화를 표방한 동민회 회원으로 참여하고, 1925년부터 1927년까지 평의원을 역임함. 민족문제연구소가 안상호의 주요 친일·부일 협력 행적으로 제시함.
함석헌이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제1부에 입학해 1928년 졸업함.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고, 김교신·송두용·정상훈 등과 교류하며 무교회주의 신앙을 받아들임. 제도 교회보다 성서 읽기와 개인의 신앙적 결단을 중시하는 관점이 이후 그의 종교사상과 사회 참여의 중요한 토대가 됨.
덴비가 장식용 화병·볼·담배 항아리 등에 '다네스비 웨어(Danesby Ware)' 상표를 붙여 선보임. 같은 시기 전통 솔트글레이즈 생산을 접고 다양한 색 유약 컬렉션으로 무게를 옮겨, 일렉트릭 블루 등 수집가들이 아끼는 라인을 내놓음. 실용 스톤웨어에서 색채를 입힌 아트·주방 도자기로 정체성을 넓힌 전환. 다네스비 웨어 명칭은 1924년경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쓰임.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듯, 전자 같은 물질 입자도 파장 λ=h/p의 파동성을 가진다는 물질파 개념을 박사 논문에서 제안. 파동-입자 이중성을 물질 전체로 확장한 발상. 이 가설은 1927년 전자 회절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파동역학의 씨앗이 됨.
1924년 9월 통의부와 참의부의 갈등 속에서 참의장 채찬이 통의부원들에게 피살된 뒤, 『독립신문』은 10월 4일 제177호에 통의부 비판 사설 「남만사변을 듣고」와 참의부의 통의부 성토문을 게재함. 통의부 측은 11월 7개 단체와 연합해 반임정 선언과 『독립신문』 구독 금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함. 김승학은 이러한 반발 속에서 1924년 11월 15일 사장직을 사임하고 상하이를 떠남.
헬렌 켈러는 44년간 미국 시각장애인 재단(AFB, American Foundation for the Blind)의 상징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미국 내 시각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을 이끔.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학순이 중국 만주 지린에서 출생함. 훗날 1991년 국내 거주 피해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나섬.
1924년 9월 28일 미 육군 항공대의 더글러스 월드 크루저 비행대가 시애틀로 귀환하며 최초의 항공기 세계일주 비행을 완주함. 175일 동안 약 4만 4천 km를 비행한 장거리 항공의 이정표로, 이후 국제 항공 교통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