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도성 개천 준설 공사 완료
태종이 도성의 개천을 준설하는 공사를 음력 2월 15일 마무리함. 앞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지방의 인력을 동원하여 흙과 모래를 걷어내고 물길과 다리를 정비한 사업으로, 홍수를 막고 한양의 배수체계를 갖추려는 목적이었음.
공사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실록에는 공사 중 사망한 64명의 집에 구휼하도록 명한 기록도 남아 있음. 도성 정비의 성과와 함께 국가의 치수사업을 떠받친 노동 부담을 보여 주는 사건임.
태종이 도성의 개천을 준설하는 공사를 음력 2월 15일 마무리함. 앞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지방의 인력을 동원하여 흙과 모래를 걷어내고 물길과 다리를 정비한 사업으로, 홍수를 막고 한양의 배수체계를 갖추려는 목적이었음.
공사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실록에는 공사 중 사망한 64명의 집에 구휼하도록 명한 기록도 남아 있음. 도성 정비의 성과와 함께 국가의 치수사업을 떠받친 노동 부담을 보여 주는 사건임.
1415년 10월 25일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이끄는 군대가 프랑스 아쟁쿠르 인근에서 프랑스군에 승리. 진흙탕 지형과 잉글랜드 장궁병의 운용 등이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영불 전쟁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됨.
음력 3월 12일. 조선 제5대 국왕 문종의 정비 현덕왕후. (~1441년)
조선 제5대 국왕 문종의 정비 현덕왕후. (~1441년)
1418년 6월 왕세자로 책봉된 뒤 같은 해 음력 8월 10일 태종의 양위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 제4대 국왕으로 즉위함. 즉위 초기에는 상왕 태종이 군사권을 계속 행사했으며 1422년 태종 사망 뒤 친정을 본격화함.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가 상왕으로 지내던 중 한성 인덕궁에서 승하함. 향년 63세.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는 상왕으로 예우받으며 지냈고, 사후 정종의 묘호가 올려짐.
정종은 제1차 왕자의 난 뒤 왕위에 올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사병 혁파와 군정 정비 등을 추진한 군주. 재위는 길지 않았지만,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넘기면서 조선 초기 권력 질서가 태종 체제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된 인물.
세종이 집현전을 경연·서연과 학술 연구, 제도 조사, 서적 편찬을 담당하는 궁중 학술 기관으로 정비함. 젊은 문신을 장기간 근무하게 하고 사가독서 등의 지원을 제공해 세종 대 학술·문화 사업의 인적 기반을 마련함.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 (1364년~)
상왕 태종이 연화동 이궁에서 사망함. 태종이 세종 즉위 뒤에도 보유하던 군사권이 세종에게 완전히 귀속되면서 세종의 친정이 본격화된 계기.
세종이 박연을 악학별좌에 임명하고 율관과 편경·편종 등 악기, 조회·회례·제례에 사용할 아악을 장기간 정비함. 조선의 국가 의례와 음악 체계를 확립하고 정간보와 향악 창작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마련함.
세종이 집현전 수찬에게 경복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여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문, 셋째 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함. 근정문 앞 석교에도 영제라는 이름을 부여함.
세종의 명을 받은 정초·변효문 등이 각 지역 노농의 경험을 조사해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함. 중국 농서의 내용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농업 경험을 수집해 반영한 관찬 농서임.
세종이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개선할 새 전세제도 공법 도입을 두고 문무백관부터 지방의 농민에 이르기까지 약 17만 명의 의견을 수렴함. 찬반과 지역별 사정을 확인한 뒤 시험 시행과 제도 보완을 이어간 장기 조세 개혁의 출발점.
황희 등이 1398년부터 1432년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를 종합해 계속 적용할 법규는 『신찬경제속육전』 6권에, 일시적으로 적용할 규정은 『육전등록』 6권에 나누어 편찬·간행함. 법전과 등록을 구분해 누적된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종 대 법제 정비 사업.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장영실 등이 물의 흐름을 이용해 정해진 시각마다 종·북·징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함.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돼 조선의 표준 시보 장치로 사용됨.
조선 조정이 이천의 감독 아래 약 20만 자의 금속활자 갑인자를 주조함. 이전 활자보다 자체와 조판 방식이 정교해져 인쇄 능률과 서적 편찬 역량을 높인 성과임.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