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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도성의 개천을 준설하는 공사를 음력 2월 15일 마무리함. 앞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지방의 인력을 동원하여 흙과 모래를 걷어내고 물길과 다리를 정비한 사업으로, 홍수를 막고 한양의 배수체계를 갖추려는 목적이었음.

공사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실록에는 공사 중 사망한 64명의 집에 구휼하도록 명한 기록도 남아 있음. 도성 정비의 성과와 함께 국가의 치수사업을 떠받친 노동 부담을 보여 주는 사건임.

청계천

1415년 10월 25일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이끄는 군대가 프랑스 아쟁쿠르 인근에서 프랑스군에 승리. 진흙탕 지형과 잉글랜드 장궁병의 운용 등이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영불 전쟁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됨.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세종 (조선)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가 상왕으로 지내던 중 한성 인덕궁에서 승하함. 향년 63세.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는 상왕으로 예우받으며 지냈고, 사후 정종의 묘호가 올려짐.

정종은 제1차 왕자의 난 뒤 왕위에 올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사병 혁파와 군정 정비 등을 추진한 군주. 재위는 길지 않았지만,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넘기면서 조선 초기 권력 질서가 태종 체제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된 인물.

황희 등이 1398년부터 1432년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를 종합해 계속 적용할 법규는 『신찬경제속육전』 6권에, 일시적으로 적용할 규정은 『육전등록』 6권에 나누어 편찬·간행함. 법전과 등록을 구분해 누적된 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종 대 법제 정비 사업.

세종의 명을 받은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고려의 『향약제생집성방』을 증보하고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와 치료법을 체계화한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찬함. 향약의 명칭·산지·채취법과 처방을 정리해 중국산 약재 의존을 줄이고 국내 약재 활용을 확대하려 한 국가 의학 사업.

세종이 최윤덕·김종서 등을 보내 압록강·두만강 방면에 군현과 방어 거점을 설치하는 4군 6진 개척을 추진함. 북방 방어선을 강화했으나 여진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장기간의 성곽 축조와 사민입거가 병행됐으며 강제 이주에 대한 저항과 도망 등 부작용도 발생함.

세종 (조선)

세종의 명으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 등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함. 반구형 눈금판에서 시각과 절기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이며 정확한 제작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이순지가 관련 의상 제작의 책임자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