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군도 데 초몬 출생
스페인 아라곤의 테루엘에서 세군도 데 초몬 출생. 이후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를 오가며 초기 영화의 채색·촬영·특수효과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인물.
스페인 아라곤의 테루엘에서 세군도 데 초몬 출생. 이후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를 오가며 초기 영화의 채색·촬영·특수효과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인물.
《미들마치: 지방 생활의 연구》를 1871년 12월부터 1872년 12월까지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출간. 별도의 분책을 순차적으로 발행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선보인 장편소설.
지방 도시의 여러 인물이 품은 이상과 실제 삶, 서로 얽힌 관계를 넓은 시야로 그린 작품. 도러시아의 이야기와 다른 인물들의 서사를 결합하며 한 공동체의 변화와 개인의 선택을 함께 조명한 구성.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 신부 루이지 바를라시나. (~1947년)
일본의 작가 히구치 이치요. (~1896년)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갑순. (~1961년)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1918년)
음력 9월 14일, 일본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을 일방적으로 류큐 번(琉球藩)으로 전환하고 국왕 쇼 타이를 '번왕'으로 격하. 이 조치로 류큐는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편입. 이후 10월까지 행정 절차 진행. 제1차 류큐 처분.
《자본론》 제1권의 러시아어 번역본이 봄에 출간됨. 마르크스는 이듬해 독일어 제2판 후기에서 3,000부를 찍은 러시아어판이 거의 소진되었다고 소개함.
독일어권 밖으로 독자층이 넓어진 초기 번역 사례이자, 러시아의 경제학 논쟁 속에서 책이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계기. 독일어권에서 시작된 논의가 다른 언어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읽히기 시작한 단계.
마르크스가 초판을 수정한 독일어 제2판을 간행함. 상품과 가치형태, 상품의 물신성 등을 다룬 앞부분의 설명과 장 구성을 다듬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과 가치의 관계를 더 분명히 제시함.
1873년에 쓴 후기에서 수정 내용과 연구 방법을 설명함. 단순한 재쇄가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논증을 다시 손본 판본으로, 초판과 후대 판본의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
조제프 루아가 옮기고 마르크스가 직접 검토한 프랑스어판이 1872~1875년 나누어 출판됨. 마르크스는 분책 방식이 노동자 독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하며 출판인 모리스 라샤트르의 계획을 지지함.
번역을 검토하면서 원문의 논증과 통계·역사 자료도 보완한 작업. 1875년 후기에서는 프랑스어판이 원문과 별도로 검토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하여, 단순 번역을 넘어 판본의 발전에 참여한 저작으로 자리매김함.
1866년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참여한 보존 검토를 거쳐 《다비드》를 아카데미아로 옮기기로 결정함. 에밀리오 데 파브리스가 작품을 위한 전용 전시 공간을 설계하는 계획도 함께 추진됨.
광장에 남겨 두어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는 것보다 원작의 장기적인 보호를 우선한 선택이었음. 실내 이전과 관람 환경 조성이 함께 추진되면서, 작품은 도시의 야외 상징물인 동시에 미술관에서 보존하고 감상할 핵심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됨.
클리블랜드의 경쟁 정유업체 대부분을 사들이며 정유 부문 지배력을 크게 확대한 스탠더드 오일. 철도 운송량을 한데 모아 유리한 운임을 확보한 규모의 경제와 함께, 철도 리베이트와 경쟁 사업자에 대한 차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진 산업 집중의 전환점.
철도회사와 일부 정유업자의 우대 운임 협약인 사우스 임프루브먼트 계획이 펜실베이니아 독립 석유업자들에게 불러온 충격. 타벨은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비롯한 지역 사업자들의 불안과 분노를 지켜보며, 경쟁의 규칙이 일부 기업에 유리하게 바뀔 수 있음을 체감. 계획에 맞선 지역의 저항과 혼란은 석유산업의 성장을 단순한 성공담으로 볼 수 없게 만든 경험. 다만 훗날의 탐사보도는 어린 시절의 원한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임 계약과 조사 기록을 대조해 기업의 실제 행위를 입증하려 한 작업.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4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는 바지 주머니 모서리에 금속 리벳을 덧대어 튼튼하게 만든 작업복에 대해 미국 특허(번호 139121)를 획득. 금을 캐던 광부들이 주머니에 무거운 물건을 넣으면 쉽게 찢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튼튼한 데님 천에 구리 리벳을 박아 이음매를 고정.
목재와 철재로 만든 운반 장치로 이동한 《다비드》를 아카데미아의 받침대에 내려놓음.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8월 4일 건물 안으로 들어온 뒤 8월 8일 받침대 안착을 마침.
수 톤에 이르는 원작을 충격을 줄이면서 이동해야 하는 공학적 과제를 해결한 과정이었음. 이 날짜는 물리적인 이전이 마무리된 날이며 새 전시실의 완공일은 아님. 전용 전시 공간을 공개하기까지는 추가 시간이 필요했음.
건축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함. 학업과 건축 실무 협업을 병행하며 도면과 구조 계산, 재료에 대한 경험을 쌓음.
고종 10년 경복궁 안에 건청궁을 지음.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별도의 거처로, 기존 궁궐 북쪽에 새로운 생활 공간을 마련한 변화임.
빈 국제기상총회에서 국경을 넘는 기상정보 교환을 위한 국제조직의 규칙과 정관 마련을 상설기상위원회에 위임하고, C. H. D. Buys Ballot를 위원장으로 선출한 전환점. WMO가 국제기상기구(IMO)의 기원으로 기념하는 해로, 정관 작업과 1879년 로마회의를 거친 조직 정비와는 구별되는 단계.
조각과 건축 복제품을 전시하도록 설계한 대형 전시실이 문을 엶. 해외에 직접 갈 수 없는 관람객과 학생들이 여러 지역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게 했으며, 트라야누스 기둥과 《다비드》 등의 복제품이 교육용 소장품의 의미를 보여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