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30–1939년의 기록 430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36 · 63건
관련 엔티티
223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68%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36 · 63건

1930년대 후반 아르카뇨 이 수스 마라비야스 악단에서 활동하던 오레스테스 로페스가 단손 「Mambo」를 작곡하고, 동생 이스라엘 로페스 ‘카차오’ 등과 함께 단손의 마지막 구간에 새로운 리듬·즉흥 연주를 도입함. 곡의 정확한 작곡 연도와 장르의 단일 창시자에 대해서는 음악사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1938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도로 기록함. 이 시기의 단손-맘보와 나중에 페레스 프라도가 대중화한 빅밴드 맘보는 구별할 필요가 있음.

맘보

채플린이 히틀러를 풍자하는 영화의 첫 각본 초안을 비밀리에 집필하고, 유럽에서 뮌헨 협정이 체결되던 가을 무렵 초안의 마무리 작업 진행.

무성영화의 세계적 스타가 대사를 중심으로 한 장편을 준비하며 독재와 반유대주의를 직접적인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출발점.

위대한 독재자

석조전 옆에 미술관 전용 서관이 새로 건립되고 창덕궁에 있던 조선 미술품이 옮겨짐. 기존 석조전 동관은 주로 일본 미술품을, 새 서관은 조선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이왕가미술관을 이룸.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이때 지은 서관으로, 1910년 완공한 석조전 본관과 구분되는 건물.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송몽규·강처중 등과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시기. 북간도에서 서울로 삶의 무대를 옮기고 문학과 사상, 언어를 공부한 과정. 주요 시편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원고를 지켜 줄 벗들을 만난 학창 시절의 시작.

윤동주

《게르니카》가 마티스·피카소·브라크·로랑스를 함께 소개한 전시의 스칸디나비아 순회에 참여. 오슬로·코펜하겐·스톡홀름 등으로 이어지며 파리 박람회 밖의 관람객과 만난 과정.

전쟁에 대한 호소와 현대미술의 형식 실험이라는 두 맥락이 겹친 이동. 한 국가관의 의뢰 작품이 국제 전시 체계 속에서 해석되고 확산되기 시작한 단계.

독일의 파울 슐라크가 카프로락탐을 바탕으로 나일론 6을 개발함. 듀폰의 나일론 66과 비슷한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원료와 고분자 제조 경로가 다른 폴리아마이드였음.

이 소재는 페를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나일론이 하나의 분자나 한 회사의 제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를 포함하는 소재군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

나일론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게르니카》 전시 개최. 관람과 모금, 장화 기부 등의 활동을 통해 스페인 내전 피해자와 공화국 측을 지원하려는 움직임과 연결된 전시.

그림을 보는 행위가 전쟁 소식을 듣고 구호에 참여하는 행위와 만난 사례. 미술관을 찾는 전통적인 관객층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도 작품이 전달된 수용사의 중요한 장면.

게르니카 (피카소)

오펜하이머와 조지 볼코프가 일반 상대성이론과 축퇴 중성자 물질의 상태방정식을 이용해 중성자 핵의 중력평형을 계산한 「On Massive Neutron Cores」를 발표함. 일정 질량을 넘는 경우 정적인 평형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이며 이후 중성자별 최대질량과 중력붕괴 연구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됨.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와 단편을 바탕으로 한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궁가 딘 (Gunga Din)》 미국 개봉. 영국령 인도를 배경으로 세 명의 영국군 병사가 사악한 종교 집단을 진압하고 식민지인 물 운반꾼 궁가 딘이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

영국군을 질서와 용기의 주체로, 인도인을 충성스러운 하인이나 광신적 폭도로 양분한 제국 모험영화의 전형. 식민 지배를 정치적 폭력이 아니라 우정과 모험의 배경으로 자연화한 사례.

하버드대학교와 IBM이 자동 계산기 제작에 합의. 에이컨의 요구를 IBM 엔지니어들이 실제 장치로 구현하는 산학 협력으로, 뉴욕주 엔디컷의 개발·제작 작업을 거쳐 거대한 전기기계식 계산기로 완성된 공동 사업.

하버드 마크 1

전쟁에서 심각한 장애를 입고 돌아온 군인의 삶을 다룬 《애벌레(芋虫)》가 삭제 명령을 받음. 전시 검열이 작가의 작품 유통을 제약한 사례이며, 작품의 반전적 수용과 작가 자신의 창작 의도는 구별할 필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