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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39년의 기록 4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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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설립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1939년 30세에 회장으로 취임함. 화려한 추진력으로 미술관의 홍보·작품 수집·신관 확장을 주도. 1932년부터 이사로 관여했고 1946–1953년 다시 회장을 맡았으며, 훗날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듀렐 스톤이 국제 양식으로 설계한 53번가 신축 건물을 1939년 5월 10일 개관함. 백색 대리석과 유리 외벽의 6층 건물로, 주변 타운하우스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더니즘 건축. 개관식에는 6,000여 명이 모였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로 축사를 보낸, 미술관의 현 위치 정착을 알린 사건.

두 나라의 군사 정책 통합과 상호 군사 지원 의무를 규정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추축국의 기반을 다진 핵심적인 사건. 평화 시 정치·경제적 협력 강화, 어느 한쪽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즉각적인 군사적 지원 및 전시 생산 협력한다는 내용.

보잉 314 딕시 클리퍼가 유료 승객 22명을 태우고 뉴욕주 포트워싱턴을 떠남. 아조레스와 리스본을 거쳐 마르세유로 향한 운항으로, 우편 시험운항과 노선 준비를 거쳐 팬암의 정기 대서양 여객 서비스가 시작됨. 앞선 비행선의 대서양 여객운항까지 포함한 역사상 최초의 모든 항공여행이라는 뜻은 아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과학자 레오 실라르드 등의 제안으로 1939년 8월 2일 날짜의 편지에 서명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우라늄 연쇄반응과 대규모 에너지 방출, 강력한 신형 폭탄 개발 가능성을 경고함. 독일의 핵 연구와 우라늄 확보 움직임도 언급하며 미국의 과학 연구 지원을 요청했음. 편지는 즉시 백악관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그해 10월 전달되었으며, 훗날 맨해튼 계획에 이르는 핵 연구 정책의 초기 계기로 평가됨.

재정 악화와 경영권 변동 속에 동양극장이 1939년 8월 일시 휴관. 최독견의 경영 중단 이후 청춘좌 단원들은 독자 운영 등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분산. 황철·차홍녀 등 배우 일부가 새 극단 아랑으로 이동하면서 전속체제에도 변화 발생. 김태윤이 새 운영자로 나서고 잔류 단원과 보충 인력을 중심으로 공연 재개를 추진.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하틀랜드 스나이더가 충분히 무거운 별이 에너지원 소진 뒤 계속 붕괴하는 과정을 일반 상대성이론의 장방정식으로 계산한 논문을 발표함. 이상화된 압력 없는 별의 모형에서 함께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붕괴가 유한한 고유시간 안에 진행되는 반면, 먼 관찰자에게는 표면이 중력반지름에 점근하는 것으로 나타남을 계산함. 후대에 블랙홀 형성을 설명하는 고전적 중력붕괴 모형으로 자리잡은 연구.

로버트 오펜하이머 일반 상대성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