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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39년의 기록 4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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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체류 중 사상 혐의를 받아 경찰에 검거된 사건.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생애 말기의 상황. 식민지 시기 조선인 작가가 겪은 경찰 권력과 질병의 문제를 함께 보여 주지만, 구체적인 혐의 내용이나 구금과 죽음 사이의 의학적 인과를 확인 없이 단정하지 않는 접근의 필요.

1936년 말부터 1937년 초에 걸쳐 스페인 공화국 측이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대형 작품을 피카소에게 의뢰. 내전 중인 공화국의 현실을 국제 관람객에게 알리는 전시 공간을 위한 작업.

처음부터 게르니카 폭격을 주제로 발주된 그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출발점. 피카소가 초기 구상을 검토하던 중 공습 소식을 접하면서 의뢰 작품의 방향이 바뀌게 된 배경.

게르니카 (피카소)

물리학 연구에 필요한 긴 수치 계산을 자동화하려던 하워드 에이컨의 계산기 구상. 사람이 기계의 계산 결과를 옮기고 다음 연산을 지시하던 과정을 정해진 순서대로 이어 주는 장치를 제안하며 하버드 마크 1 개발의 출발점 마련.

하버드 마크 1

조선총독부가 1938년 1월부터 각 신문과 잡지에 황국신민서사를 게재하게 함. 황국신민서사는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편입하려는 황민화 정책의 상징적 맹세문. 매일신보를 비롯한 조선어 지면은 이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선전의 통로로 기능.

매일신보 황국신민서사 게재

수양동우회 사건 수감 중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소한 안창호가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서 별세함. 독립기념관 자료는 1937년 12월 24일 입원 뒤 사망했다고 기록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인을 간경화증으로 설명함.

안창호

일제강점기인 1938년 4월 제정된 국가총동원법은 중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로 징발·통제한 악법. 가마솥까지 수탈하는 금속류 공출과 조선인 150만 명 이상을 강제 징용하여, 식민지 조선을 전쟁 물자 공급지로 전락시킴. 패전 후인 1946년 4월 1일에 정식으로 폐지. 1945년 12월 20일 공포된 '국가총동원법 및 전시긴급조치법 폐지법률'에 따라 최종적으로 효력을 상실

로이 플렁킷과 동료들이 냉매 관련 기체를 연구하던 중 저장 용기 안의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 흰 고체로 중합된 것을 발견함. 이 물질이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으로 확인됨.

PTFE는 화학물질에 잘 반응하지 않고 마찰이 작은 특성을 지닌 고분자. 듀폰이 후속 개발을 진행했으며, 테플론이라는 상표는 1945년 등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