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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39년의 기록 4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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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키네마가 제작하고 안종화가 각본·감독, 이명우가 촬영을 맡은 무성영화의 개봉. 이원용·신일선·김연실 등이 출연해 농촌에서 도시로 온 청년들의 사랑과 좌절을 표현. 녹음된 대사 대신 배우의 움직임과 현장 해설로 이야기를 전달하던 한국 무성영화 말기의 작품.

전라남도 장성에서 출생함. 2014년 본인 인터뷰에 첨부된 약력에 기재된 1934년 음력 11월 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1934년 12월 8일임. 2010년 인터뷰 기사에서 실제 출생 연도 1934년과 호적상 1936년의 차이가 확인됨.

《초 한 대》·《삶과 죽음》·《내일은 없다》에 창작 날짜를 남긴 날. 현재 전하는 윤동주의 초기 시 창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일찍부터 시의 소재였음을 보여주는 작품들. 일반 독자에게 발표된 날짜가 아니라 원고에 적힌 창작일에 해당하는 기록.

구인회에 참여하며 당대 작가들과의 교류를 넓힌 시기. 구인회는 서로 다른 문학적 지향을 가진 작가들이 함께 활동한 모임으로, 이상을 홀로 떨어진 예외적 인물로만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연결망. 이 시기 박태원과의 협업 및 이후 《시와 소설》 편집으로 이어지는 활동의 배경.

이상 (작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삽화를 그리며 문학과 그림을 함께한 협업. 도시를 걷는 인물의 시선이라는 동시대 문학의 관심사가 글과 이미지의 접점에서 드러나는 사례. 이상과 박태원의 관계를 단순한 친분을 넘어 신문 지면에서 이루어진 창작 협력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작업.

이상 (작가)

프랑스에서 극우 세력이 부상하던 상황에서 마르가 예술가·작가들에게 반파시즘 행동을 촉구한 《투쟁에의 호소》(Appel à la lutte)에 서명함. 이 정치적 연대는 초현실주의 인물들과의 교류를 강화했으며, 1935년에는 브르통과 바타유가 조직한 반파시즘 집단 콩트르아타크에도 참여함. 그의 사회적 관심이 사진의 주제뿐 아니라 공개적인 정치 행동으로 나타난 사례였음.

캐러더스 연구팀이 아디프산과 헥사메틸렌디아민으로 섬유를 만들 수 있는 폴리아마이드를 합성함. 두 원료의 탄소 수가 각각 여섯 개여서 섬유 66으로 불렸으며, 연신을 통해 강도와 탄성을 높일 수 있는 물질이었음.

나일론 듀폰

경성과 평양의 대항전은 1935년 4월 경기를 치른 뒤 중단되었음. 당시의 과열된 경쟁과 판정 시비, 관중 충돌 등이 대회의 지속을 어렵게 했다고 전해짐.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제약도 함께 살펴야 하지만, 모든 중단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는 것은 피할 필요가 있음. 이후 다른 도시대항 축구가 열렸다는 사실과 경평 정기전 자체가 계속되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함.

경평축구대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