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
일제가 수양동우회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면서 이광수도 1937년 6월 7일 체포·수감됨. 검거는 이후 서울 본부와 평양·선천·안악 등 각지의 회원으로 확대돼 모두 181명이 붙잡힘. 수양동우회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이광수의 장기적인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사건.
일제가 수양동우회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하면서 이광수도 1937년 6월 7일 체포·수감됨. 검거는 이후 서울 본부와 평양·선천·안악 등 각지의 회원으로 확대돼 모두 181명이 붙잡힘. 수양동우회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이광수의 장기적인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사건.
대한민국의 정치인 문희갑.
소련의 군인 미하일 투하쳅스키. (1893년~)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8월 15일 예심 종결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음.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소한 뒤 같은 해 12월 24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 입원함.
동아일보가 장기 정간 끝에 1937년 6월 발행을 재개함. 복간 과정에서 사장 송진우와 주요 간부·사원이 물러나고 백관수가 새 사장으로 선임됨. 조선총독부가 요구한 핵심 간부 임명 사전 승인과 편집·검열 지침을 수용한 결과로, 일장기 말소사건이 개별 기사 제재를 넘어 한글 신문의 인사와 편집 방향을 통제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줌. 정간 해제와 복간의 정확한 날짜가 자료별로 6월 1일부터 3일까지 다르게 제시되어 월 단위로 기록함.
펄 S. 벅의 소설을 각색한 MGM 영화 《대지 (The Good Earth)》 미국 개봉. 중국 농민 왕룽과 오란의 삶을 다룬 대규모 제작물이지만, 주인공을 폴 무니와 루이제 라이너 등 백인 배우들이 분장해 연기한 작품.
중국계 미국인 배우 애나 메이 웡이 오란 역을 희망했으나 배제되고 부정적인 성격의 배역을 제안받은 캐스팅 과정도 논쟁의 대상. 중국인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려는 제작 의도와 할리우드의 옐로페이스 관행이 동시에 드러난 사례.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9월 자진 휴간 이후 발행을 재개하지 못한 채 1937년 11월 5일 발행 허가의 효력을 상실함. 일장기 말소 보도에 대한 총독부 수사와 정간 압박에 더해 휴간 중의 경영 내분과 취약한 재정 기반이 겹치면서 사실상 폐간으로 귀결됨.
엘러리 천의 회사가 1936년 "알로하 스포츠웨어(Aloha Sportswear)" 상표를 등록한 데 이어, 1937년 "알로하 셔츠(Aloha Shirt)" 상표를 등록함. 천은 이후 약 20년간 이 명칭에 대한 권리를 보유. 알로하 셔츠라는 명칭이 법적으로 상표화 됨.
노량진 본동측 한강교를 1934년 3개년 계획에 따라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으로 개축, 1937년 준공. 공사비 251만 8,000원 투입. 이 공사에 한국인 교량 기술자 1명이 감독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언. 현재 한강대교 노량진측 아치 구간의 원형 형성.
조선총독부가 1938년 1월부터 각 신문과 잡지에 황국신민서사를 게재하게 함. 황국신민서사는 조선인을 일본 천황의 신민으로 편입하려는 황민화 정책의 상징적 맹세문. 매일신보를 비롯한 조선어 지면은 이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선전의 통로로 기능.
수양동우회 사건 수감 중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소한 안창호가 1938년 3월 10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에서 별세함. 독립기념관 자료는 1937년 12월 24일 입원 뒤 사망했다고 기록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인을 간경화증으로 설명함.
일제강점기인 1938년 4월 제정된 국가총동원법은 중일전쟁을 위해 일본이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로 징발·통제한 악법. 가마솥까지 수탈하는 금속류 공출과 조선인 150만 명 이상을 강제 징용하여, 식민지 조선을 전쟁 물자 공급지로 전락시킴. 패전 후인 1946년 4월 1일에 정식으로 폐지. 1945년 12월 20일 공포된 '국가총동원법 및 전시긴급조치법 폐지법률'에 따라 최종적으로 효력을 상실
가나의 외교관, 제7대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2018년)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2025년)
미국의 야구인 리치 롤린스.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