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80–1989년의 기록 1,395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89 · 173건
관련 엔티티
983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69%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89 · 173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생산직 차별에 맞서 노조민주화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감. 1984년 말 노동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만든 노동자들은 기존 집행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며 교섭을 압박했고, 1985년 4월 16일 부평공장을 시작으로 집단행동에 나섬.

경찰과 회사 측의 압박 속에서도 농성을 이어가 4월 25일 기본급 등 16.4% 인상과 복지조건 개선에 합의함. 이후 관련자 8명이 구속되고 해고·징계가 뒤따랐으나, 전두환 정권의 노동운동 통제 아래 대규모 중공업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조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한 중요한 투쟁.

전두환

제41차 FIAF 뉴욕총회에서 한국필름보관소의 정회원 가입이 비준됨. 1976년 옵서버 참여에 이어 정회원으로 국제 영화유산 보존 협력에 참여하게 됨. 당시 기관명은 한국필름보관소였으며, 한국영상자료원으로의 명칭 변경은 1991년에 이루어짐.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북한 공작원 진모(김진수)에 대한 사형이 버마에서 집행됨. 반면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이어감. 두 피고인에 대한 처분이 갈라진 형사재판의 후속 결과.

정구충이 《한국 의학의 개척자》에서 의친왕에게 안상호가 고종 독살 의혹을 받게 된 경위를 물었고, 의친왕이 이를 당시 민중의 오해와 망국의 울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했다고 기록함. 사건 당시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정리된 전언으로, 안상호의 독살 가담설을 부인하는 기록이라는 성격임.

1984년 10월 종영한 《수사반장》이 약 7개월 만에 다시 방송을 시작. 장기간 익숙해진 박 반장과 동료 형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시청자의 성원 속에 되살아난 시리즈. 현실의 사건을 바탕으로 수사의 긴장감과 인간적 사정을 함께 보여 준 원작의 인기가 후속 수사극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았던 배경. 재개 이후에도 박 반장 중심의 사건 해결을 이어 가며 1989년 10월 최종 종영까지 두 번째 방송기를 형성. 첫 방송과 마지막 방송 사이 18년, 전체 880회에 이르는 장수 드라마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복귀.

조지프 파먼, 브라이언 가디너, 조너선 섕클린이 남극의 봄철 오존량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장기 관측으로 확인하여 발표한 연구. 단순한 예측을 넘어 실제로 심각한 오존층 손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극지의 낮은 기온과 염소 화학반응의 중요성을 부각한 발견. 오존층 파괴물질에 대한 국제 규제의 시급성을 크게 높인 계기.

전두환 정부가 5·18 진상규명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의 자료 수집·백서 작성·홍보 대책을 추진함. 국무총리실과 안전기획부를 중심으로 여러 기관이 참여했으며, 실무기구에 80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함.

이 기구의 구성과 운영은 2017년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국가기록원 소장 정부 문건을 발굴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함. 당시 발표는 관련 자료의 수정·왜곡에 조직적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구체적인 활동 결과와 완성된 백서의 존재까지 모두 확인한 것은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