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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파기환송심에서 정하룡·정규명에게 사형, 조영수에게 무기징역, 윤이상에게 징역 10년 등을 선고함. 간첩죄 적용은 배제되거나 축소됐지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에 따른 중형이 유지됨.

동백림 사건

서울고등법원이 정하룡·정규명·임석훈에게 사형, 조영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윤이상 등 11명에게 징역 15년에서 3년까지의 실형을 선고함. 일부 피고인의 형량이 1심보다 높아지면서 서독 정부와 국제사회의 반발이 다시 커진 계기.

동백림 사건

대법원이 정하룡·조영수·김중환·천병희·윤이상 등 12명에 대한 원심의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냄. 수사기관이 구성한 대규모 간첩단 혐의가 상급심에서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전환점.

서울형사지방법원이 정규명·조영수에게 사형을, 윤이상·정하룡·강빈구·어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피고인 34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함.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징역형·집행유예·형 면제·선고유예가 선고됨. 중앙정보부의 대규모 공안수사가 사법 절차에서 중형 선고로 이어진 첫 판결.

서울지검 공안부가 중앙정보부에서 송치한 관련자 66명 가운데 31명을 구속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기소함. 국가보안법·반공법 등이 적용되었으며,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관련자 194명과 실제 형사재판에 넘겨진 인원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기소 단계.

중앙정보부가 1967년 6월 5일부터 국내 관련자를 체포하고, 6월 20일부터 29일까지 서독·프랑스·미국·영국·오스트리아의 해외 체류자들을 연행함. 일부 해외 연행은 현지 정부의 승인이나 적법한 사법절차 없이 강제송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이후 외교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됨. 중앙정보부의 공식 발표에 앞서 국내외 수사가 진행된 사건의 출발점.

중앙정보부가 1967년 7월 8일부터 17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을 거점으로 한 대남 공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함.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노와 학계 인사, 유학생·교민 등 194명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고 서울대학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도 연계된 반국가단체로 발표함. 이후 검찰 송치와 재판 과정에서는 발표된 관련자 규모와 간첩 혐의가 크게 축소됨.

서독 외무부가 1967년 7월 초 한국대사관에 해명을 요구하고 외교 각서를 전달하며 관련 공관원의 소환과 재발 방지를 요구함. 프랑스 정부도 자국에서 이루어진 연행에 항의하고 관련 대사관 직원의 소환을 요구함. 적법한 현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연행이 영토주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국내 공안사건을 국제 외교 문제로 확대한 사건.

방송 50주년을 맞은 KBS 해피FM 《밤을 잊은 그대에게》 특집 첫날 특별 DJ를 맡아 1981년 하차 이후 33년 만에 다시 진행석에 앉음. 황인용은 이 프로그램을 자신의 방송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프로그램으로 회고하며 과거 청취자들과 당시 방송을 돌아봄.

황인용

EBS 《다큐프라임-자본주의》 내레이션으로 제40회 한국방송대상 성우·내레이션상을 수상함. 해당 프로그램은 같은 시상식에서 대상을 포함해 여러 부문을 수상했으며, 황인용의 방송 경력이 진행자뿐 아니라 내레이터 영역에서도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기록.

2004년 9월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카메라타》의 새 공간을 개관함. 높은 노출콘크리트 공간에 1930년대 웨스턴 일렉트릭·클랑필름 계열의 빈티지 스피커와 다수의 LP를 갖추고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운영함.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시작한 음악 공간을 고향 파주의 독립 공간으로 옮겨 확장한 사건. 이후 황인용의 후반기 활동을 대표하는 장소가 됐으며, 직접 선곡하고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도 이어감.

황인용

1997년 5월 17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 고전음악감상실 《카메라타》를 개관함. 1920~40년대 웨스턴 일렉트릭·클랑필름 등 빈티지 극장용 음향장비와 LP를 활용해 방문객이 아날로그 음향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함.

개관 당일 플루트·바이올린·피아노 연주자들이 참여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으며, 황인용은 음악 애호가들이 대화를 나누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함.

황인용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이 서울 본사와 부산지국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종료하고 한국방송공사에 흡수 통합됨. 개국 17년 만의 폐국으로, 당일 TV와 라디오에서 고별방송이 진행됨.

라디오에서는 황인용이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마지막 TBC 방송을 진행함. 그는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울먹였고 마지막 호출부호를 알린 뒤 방송을 마쳐, 언론통폐합과 TBC 폐국을 상징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로 회고됨.

1980년 동양방송 전속을 떠나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전향함. 황인용은 훗날 1980년 11월 30일 TBC 고별방송 당시 프리랜서가 된 지 약 8개월이었다고 회고함.

방송사 전속이 일반적이던 시기에 독립해 여러 방송사의 라디오·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맡으며 활동 범위를 넓힘. 기존의 1982년 표기보다 본인 회고와 경력 자료를 근거로 1980년으로 정리함.

1975년 동양방송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음. 청취자 사연과 음악을 중심으로 한 심야 프로그램에서 낮고 차분한 진행으로 대표 DJ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음.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사라진 뒤에도 프로그램은 KBS에서 이어졌고, 황인용은 1981년까지 진행함. 2014년 KBS 50주년 특집 자료는 그를 1975~1981년 장기 진행자로 소개함.

황인용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방송 활동을 시작함.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오가며 진행 경험을 쌓고, 이후 《장수만세》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으로 이름을 알림.

일부 후대 자료에는 1967년으로 적힌 경우가 있으나, 황인용 본인의 회고와 SBS 제공 프로필은 1966년 입사로 기록함.

황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