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2013년 경찰이 확보한 별장 성접대 의혹 영상에 대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고 밝힘. 경찰은 화질이 선명한 영상에 대해서는 별도 감정 없이 김 전 차관과 동일인이라고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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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과거 부실 수사가 의심되는 사건으로 12건 선정,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재조사에 착수.
1차 사전조사 대상사건 (12건)
- 김근태 고문사건(1985년)
-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
- 삼례 나라 슈퍼 사건(1999년)
- 약촌오거리 사건(2000년)
- PD수첩 사건(2008년)
-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사건(2010년)
-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부당노동행위 사건(2011년)
-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사건(2012년)
- 김학의 차관 사건(2013년)
- 남산 3억 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년, 2010년, 2015년)
성접대 의혹이 확산되자 김학의는 2013년 3월 22일 취임 6일 만에 사퇴해 의원면직. 경찰은 단순 성접대가 아닌 특수강간 의혹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 사상 최단기 차관 사퇴 사례 중 하나로 기록.
김학의, 박근혜 정부 법무부 차관 임명
2013년 3월 14일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 출신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에 임명. 그러나 임명 직후 건설업자 윤중천의 강원도 원주 별장 등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파문이 시작. 사건의 출발점.
이극로 사망
이극로가 1978년 85세로 평양에서 세상을 떠남. 식민지 시기 한글을 지키고 분단 이후 북녘의 언어 정책을 이끈 생을 마감함. 남과 북 모두의 우리말 역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국어학자의 영면.
1948년 4월 19일부터 열리는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향함. 회의 뒤 김구, 김규식 등이 5월 초 서울로 돌아온 것과 달리 이극로는 남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북에 잔류함. 이로써 평생을 바친 한글운동의 무대를 남에서 북으로 옮긴 전환점.
이극로, 북한 문화어운동 주도
이극로가 1966년 이후 본격화한 북한의 언어규범화 운동인 '문화어운동'을 주관함. 평양말을 기준으로 한 표준어 정비와 한자어·외래어 순화 등 북녘 언어 정책의 방향을 세움. 남과 북의 언어가 갈라지는 흐름 속에서 북측 언어 규범을 다진 활동.
조선어학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발표
외국 인명·지명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1940년 6월 7일 최종 확정하고 발표(공표), 1941년 1월 간행함.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착수할 때부터 준비해 온 작업으로, 맞춤법·표준어와 함께 어문 3대 규범을 완성함. 『큰사전』의 외래어 표기 기준으로 쓰임.
1929년 1월 귀국한 이극로가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우리말 연구와 보급의 한복판에 섬. 조선어사전 편찬과 한글 규범화 작업을 이끌며 흩어진 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일에 매진. 식민지 한글운동을 조직적으로 이끈 지도자로 자리 잡음.
이극로, 독일 베를린대학 졸업
중국 상하이 동제대학을 거쳐 독일로 건너간 이극로가 1927년 베를린대학(현 훔볼트대학)에서 학위를 받음. 유학 중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열어 우리말을 알리는 데도 힘씀. 서구 학문을 익히고 돌아와 한글운동에 투신하는 밑바탕이 된 시기.
이극로 출생
1893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남. 뒷날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 호는 고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플이 인텔과 미국 내 칩 설계·생산 협력에 합의했다고 언급한 뒤, 인텔 주가가 장중 약 11% 급등함. 애플과 인텔은 당시 계약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으나, 시장은 이를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가 대형 외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
구글 AI 칩 생산 가능성, 엔비디아 등 잠재 고객 유치 기대와 함께 인텔의 파운드리 전환 전략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됨. 다만 실제 양산 계약과 물량은 공개되지 않아, 기대가 선반영된 주가 움직임이라는 한계도 남음.
2025년 8월 미국 정부가 CHIPS법 등에서 약속된 보조금 89억 달러를 인텔 지분으로 전환, 약 4억 3,330만 주(약 9.9%)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의 하나로 등장. 단, 의결권이 없는 비의결 주식. 경영난과 공정 경쟁력 약화 속에 이뤄진 이례적 정부 개입. 한때 세계 반도체를 호령하던 기업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
2021년 인텔이 전직 임원이자 VM웨어 CEO였던 팻 겔싱어를 새 CEO로 영입, 자체 제조와 외부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병행하는 'IDM 2.0' 전략 발표. 공정 미세화 지연과 AMD·TSMC의 약진으로 흔들린 기술 주도권 회복이 목표. 그러나 성과 부진 속에 겔싱어는 2024년 물러남.
애플, 맥의 인텔 프로세서 전환 발표
WWDC 2005에서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향후 매킨토시에 인텔 CPU를 탑재하겠다고 발표, 모토로라·IBM 파워PC를 쓰던 애플의 전환으로 업계에 충격. 이로써 고성능 서버·메인프레임을 제외한 거의 모든 PC가 인텔 계열 칩을 사용하는 구도 완성. 인텔의 CPU 시장 지배가 정점에 이른 상징적 사건.
1994년 펜티엄의 부동소수점 나눗셈(FDIV)에서 드물게 계산 오류가 나는 결함이 공론화되며 대규모 리콜·교체 사태로 비화. 초기 대응 미숙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결함 칩 전면 교체를 단행하며 막대한 비용 감수. 기술 신뢰와 기업 위기 대응의 교훈을 남긴 사건.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 출시
1993년 인텔이 펜티엄(Pentium) 프로세서를 출시하며 80x86식 숫자 명명에서 상표 이름으로 전환. PC용 인텔 칩 최초로 슈퍼스칼라(병렬) 처리를 도입해 속도를 크게 끌어올리고, 310만 개 트랜지스터 탑재. 윈도와 결합해 멀티미디어 PC 대중화를 견인한 제품.
인텔, '인텔 인사이드' 브랜드 캠페인 시작
1991년 인텔이 부품 제조사로는 이례적으로 최종 소비자를 겨냥한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브랜드 캠페인 시작. PC 제조사 광고에 인텔 로고와 효과음을 넣는 공동 마케팅으로, 보이지 않던 칩을 소비자 브랜드로 각인. 반도체 부품의 브랜딩을 개척한 마케팅사(史)의 이정표.
1980년대 들어 일본 업체의 부상으로 D램 시장 점유율이 1974년 82.9%에서 1984년 1.3%까지 붕괴하자, 인텔이 1985년 메모리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는 전략 전환 단행. 앤디 그로브가 주도한 이 결정은 위기 속 사업 재정의의 대표 사례로 회자. 이후 인텔이 CPU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확립한 분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