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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권위원 마키노 노부아키가 국제연맹 규약 위원회에 인종 평등 수정안을 정식 제출함. 연맹 회원국 국민인 외국인에게 인종이나 국적을 이유로 법률상·사실상 차별을 두지 않고 평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부여하자는 원칙을 제시한 내용. 즉각적인 제도 통일보다는 원칙을 선언하고 구체적 실행을 각국 정부에 맡기는 구상으로 설명했으나 위원회에서 채택되지 못함.

인종 평등 제안 (1919)

1919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 승전 연합국 대표들이 파리에 모여 강화 조건과 전후 국제 질서를 논의하는 회의를 개막. 미국 윌슨·프랑스 클레망소·영국 로이드 조지·이탈리아 오를란도의 '4대 거두'가 핵심 결정을 주도. 20세기 전반 국제 질서의 틀을 짠 거대한 외교 무대의 출발.

인종 평등 제안 (1919)

하라 다카시가 일본 총리에 취임해 최초의 본격적인 정당 내각을 구성함. 하라 내각은 국제연맹 참여를 지지했으나 정부와 여론 내부의 회의론에 직면한 상황. 인종 평등 제안은 연맹 참여의 국내 정치적 명분을 강화하려는 목적과 미국·영국 자치령의 일본인 이민 문제 해결 목적이 결합된 외교 의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의 이민제한법이 1901년 12월 23일 재가됨. 유럽어 50단어 받아쓰기 시험 등을 이용해 비유럽계, 특히 아시아계 이민을 선별적으로 배제한 이 법은 백호주의의 핵심 법적 토대. 중국인과 태평양 도서 노동자에 대한 식민지 시기의 배제 관행이 연방 정책으로 제도화된 사건.

유엔 총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결의 217 A(III)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함. 선언 제1조에서 모든 인간이 존엄과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천명하고, 제2조에서 인종·피부색·성별·언어·종교·출신 등에 따른 구별 없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명시함.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국제연맹 규약에 포함되지 못했던 인종적 비차별 원칙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적 국제인권 규범의 핵심 원칙으로 명문화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건.

파리 강화 회의 국제연맹 규약 위원회에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외국인을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재제출함. 출석 위원 17명 가운데 11명의 찬성을 확보했으나, 의장 우드로 윌슨이 강한 반대가 존재하는 중요 사안에는 만장일치가 필요하다고 판정하면서 채택되지 못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빌리 휴즈는 제안이 백호주의 이민정책을 위협할 것으로 보고 영국 대표단 등에 지속적으로 반대 압력을 행사함. 다수의 지지를 얻고도 국제연맹 규약에 인종 평등 원칙을 포함시키는 데 실패한 결정적 사건이 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미국과 일본이 일본인 노동자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이른바 신사협정을 마련함. 일본 정부가 미국 본토로 이주하려는 노동자에게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의 일본계 학생 분리교육 조치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타협함. 정식 조약이 아니라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양국이 교환한 일련의 외교 각서와 행정조치로 성립함. 일본인의 미국 이민을 인종적·국적별로 제한하는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기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인종 평등 조항이 빠진 국제연맹 규약 초안이 예비 강화 회의 본회의에 보고되자 마키노 노부아키가 발언에 나섬. 이날 규약 내용에 대한 토론이 예정되지 않았음을 들어 즉각 논의를 요구하지 않고, 일본 측 제안을 후속 논의 단계에서 다시 제출해 각국 대표의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힘. 제안을 철회하지 않고 추후 재상정할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4월 11일 인종 평등 수정안 재제출로 이어짐.

인종 평등 제안 (1919)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소유를 기존 조약이 허용하는 범위로 제한하고, 농지 임차를 최장 3년으로 제한하는 외국인 토지법을 승인함. 당시 미국의 귀화법상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던 일본계 이민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일본 정부의 항의를 불러온 입법.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안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date: 1919-02-14 title: 마키노, 인종 평등 제안 빠진 규약 초안에 추후 재제출 방침 표명 type: event entities:

인종 평등 조항이 빠진 국제연맹 규약 초안이 예비 강화 회의 본회의에 보고되자 마키노 노부아키가 발언에 나섬. 이날 규약 내용에 대한 토론이 예정되지 않았음을 들어 즉각 논의를 요구하지 않고, 일본 측 제안을 후속 논의 단계에서 다시 제출해 각국 대표의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힘. 제안을 철회하지 않고 추후 재상정할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4월 11일 인종 평등 수정안 재제출로 이어짐.

인종 평등 제안 (1919)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개정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발표함. 자살 사건을 가급적 보도하지 않도록 권고 수위를 높이고, 부득이 보도할 때 지켜야 할 표현·이미지 사용 원칙을 강화함. 명칭을 '권고기준'에서 '보도준칙'으로 바꿔 언론 현장의 실천을 강조함.

자살예방 보도준칙 베르테르 효과 대응 대상 현상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기존 권고기준을 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공동 발표함. 기존 9개 원칙을 5개 원칙으로 정비하고, 기사 제목에 '자살' 대신 '사망'·'숨지다' 등의 표현을 쓰며 구체적 방법·도구·장소·동기의 보도를 자제하도록 함. 유명인 자살 보도에 기준을 더 엄격히 적용하도록 하여 베르테르 효과를 억제하려는 취지.

자살예방 보도준칙 베르테르 효과 대응 대상 현상

니더크로텐탈러 연구팀이 오스트리아의 자살 관련 신문 기사 497건과 단기 자살 변화를 분석해, 위기에서 자살 대신 다른 대처 전략을 택한 사람을 다룬 기사 유형이 자살 감소와 연관됨을 보고함. 이를 언론 보도 뒤 자살 증가를 가리키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해 '파파게노 효과'로 개념화함. 연구가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게재되어 회복 중심 보도의 잠재적 보호 효과를 뒷받침하는 초기 실증 근거가 됨.

베르테르 효과 함께 검증된 대비 현상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1974년 자살 보도와 후속 자살의 상관관계를 실증 분석한 연구를 《미국사회학보》에 발표하며 모방 자살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로 명명함. 괴테 소설이 촉발한 18세기 모방 자살에서 이름을 따옴. 매체의 자살 보도 준칙 논의의 학술적 토대가 됨.

베르테르 효과

라이프치히 시의회는 신학부의 권고를 받아 1775년 1월 30일 이 소설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함. 당국은 작품이 자살을 권하는 것으로 읽혀 취약한 독자에게 해로운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베르테르식 복장도 금지 대상에 포함함. 다만 출간 뒤 대규모 모방 자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주장은 후대 연구에서도 확정되지 않음.

베르테르 효과

1774년 9월 라이프치히 가을 도서전에 맞춰 바이간트 출판사가 괴테의 서간체 소설 초판을 익명으로 펴냄. 같은 해 《괴츠 폰 베를리힝겐》으로 독일에서 이름을 알린 괴테는 이 작품의 큰 성공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음. 작품은 초기 유럽 베스트셀러이자 슈투름 운트 드랑을 대표하는 소설로 자리매김함.

베르테르 효과 모방 자살 물결을 촉발한 작품 출간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사관 서기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은 1772년 10월 29일 밤 케스트너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고 이튿날인 10월 30일 사망함. 케스트너가 괴테에게 보낸 상세한 보고는 훗날 베르테르의 최후를 구성하는 핵심 자료가 됨.

베르테르 효과 소설 속 베르테르의 모델이 된 실제 자살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개정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발표. 자살 보도 최소화, 선정적 표현 자제, 자살 방법 등 상세 내용 최소화를 비롯한 9개 원칙을 제시하고 한국기자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에 전달.

베르테르 효과

한국자살예방협회·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가 언론의 자살 보도가 모방 자살 등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국내 최초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제정. 자살 보도에서 사생활 보호, 구체적인 방법·장소 등의 상세 묘사 자제,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표현의 지양 등을 권고.

베르테르 효과

보니 타일러가 영국 웨일스 니스 인근 스큐언에서 게이너 홉킨스(Gaynor Hopkins)라는 이름으로 태어남. 광부였던 아버지를 둔 여섯 자녀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부름.

이후 지역 밴드와 클럽 무대를 중심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며 대중음악계에 진입.

보니 타일러

모더나와 머크가 개인맞춤형 mRNA 암 치료제 인티스메란 오토진(V940·mRNA-4157)과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평가한 3상 임상시험 INTerpath-001에서 긍정적인 주요 결과를 발표. 완전 절제된 IIB~IV기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키트루다 단독요법과 비교한 결과, 1차 평가변수인 무재발 생존기간(RFS)과 주요 2차 평가변수인 원격전이 없는 생존기간(DMFS)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을 확인.

개인맞춤형 신생항원 치료제이자 mRNA 기반 암 치료제가 3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록한 최초 사례. 모더나와 머크는 향후 국제 의학 학회에서 상세 데이터를 공개하고 규제 당국과 허가 신청을 협의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