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법은 1953년 제정 당시부터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와 군사상 기밀 누설을 처벌했으나, 적국이 아닌 외국을 위한 정보 수집과 기술 유출에는 직접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였음. 산업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 영업비밀은 부정경쟁방지법, 군사기밀은 군사기밀보호법 등 별도 법률을 중심으로 규율됨.
대법원은 1997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국가기밀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면서 누설될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를 갖춰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함. 2004년부터 여야 의원들이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외국이나 외국 단체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반복해 발의했으나 여러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됨.
2026년 신설된 형법 제98조의2는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사주나 그 밖의 의사 연락 아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함.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며 미수, 예비·음모, 선동·선전도 처벌 대상에 포함됨.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의 문제로 다룰 수 있는 형사법적 기반이 확대됨. 다만 외국 기업이 이익을 얻은 기술 유출이라고 해서 곧바로 제98조의2가 적용되는 것은 아님. 외국 등의 지령·사주·의사 연락, 유출 정보의 국가기밀성, 탐지·수집·전달 등의 구체적 행위가 각각 입증되어야 함.
산업기술보호법상 산업기술이나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는 사실도 간첩죄의 국가기밀 요건을 자동으로 충족시키지는 않음. 시행 직전 외국 기업과 국가핵심기술을 조문에 명시하고 법정형을 높이려는 후속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적용 범위와 형량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짐. 국가기밀의 범위와 정상적인 국제 업무의 경계는 향후 수사와 판례를 통해 구체화될 쟁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