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매일신보사에 사원자치위원회가 조직되어 신문 발행을 이어가다가,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이 매일신보사를 접수함. 미군정은 주주 대표와 사원자치위원회와의 조정을 거쳐 오세창을 사장으로 하는 새 간부진을 구성. 새 간부진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고 지령을 이어 속간함.
광복 후 조선체육회 재건
광복 이후 조선체육회가 다시 조직됨. 강제 해산으로 끊겼던 체육단체의 활동을 재개함.
29개국의 서명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설립협정이 발효하며 IMF 정식 출범. 같은 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설립협정도 발효해 브레턴우즈 회의의 구상이 국제기구의 법적·제도적 틀로 구체화된 이정표. IMF의 금융업무 개시일인 1947년 3월 1일과 구분되는 공식 설립일.
전쟁 전 국민차로 설계된 폭스바겐 승용차의 전후 양산 재개.
원료와 전력 부족 속에서 영국 군정의 지시로 생산을 시작해 연말까지 55대를 조립. 훗날 ‘폭스바겐 비틀’로 알려진 이 차량이 회사의 전후 재건과 수출 성장을 견인.
버나드 러벨, 조드럴 뱅크에서 레이더 관측 연구 시작
맨체스터대학교의 버나드 러벨이 도시 전차의 전파 간섭을 피해 체셔의 대학 식물학 실험 부지에 레이더를 설치함. 전쟁 중 익힌 기술로 우주선을 연구하려던 시도에서 유성의 반사 신호를 관측했고, 이것이 전파천문 연구소의 출발점이 되었음.
광복 뒤 종현성당, 명동성당으로 이름 바뀜
일제강점기에 이 일대는 명치정(明治町)으로 불렸고 성당도 종현성당·종현본당으로 불림. 1945년 광복 후 동 이름이 명동(明洞)으로 바뀌면서 성당 이름도 오늘날의 명동성당(명동본당)으로 자리잡음. 지명 변화가 성당의 통칭으로 굳어진 계기.
오드리 헵번, 암스테르담에서 소니아 가스켈에게 발레 수학
전쟁이 끝난 뒤 어머니와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발레리나 소니아 가스켈에게 발레를 배움. 이후 런던에서 무용가를 목표로 활동했으나 전쟁기 영양실조의 영향과 신체 조건 등으로 전문 발레리나 진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받으며 연기 쪽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됨.
전후 농업·가정용 DDT 사용 확산
전쟁 이후 DDT가 군사 방역을 넘어 농작물·가축·가정의 해충 방제에 널리 보급. 오랫동안 효력이 남는 성질과 저렴한 비용을 장점으로 내세운 확산이지만, 나중에는 같은 잔류성이 환경 문제의 핵심으로 전환.
증권분석가의 전문자격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함. 투자자가 전문가를 식별할 수 있는 기준과 직업적 책임을 강조하며, 분석 업무를 전문직으로 정립하려는 논의에 참여함.
에드거상 주관 단체 미국추리작가협회 설립
미스터리 작가의 공동체를 만들고 장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미국추리작가협회가 설립됨. 이듬해 시작된 에드거상은 이 작가 단체가 작품을 평가하고 동료의 성취를 알리는 통로가 되었음.
해외 귀환 전재민과 월남민, 국내 빈곤층에 식량·의료·주거를 제공하는 응급구제의 전개. 해방 직후의 보건행정 공백과 인구 이동에 대응한 사업으로, 귀환민만을 위한 단일 사업과는 구별되는 구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