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배우 버트 영.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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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가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에 「창씨와 나」를 게재함. 자신의 이름을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바꾼 이유를 밝히고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을 지지함. 황민화운동과 내선일체를 선전한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
폰 미제스가 이스탄불 대학교 이학부 학술지에 논문 「Über Aufteilungs- und Besetzungswahrscheinlichkeiten」을 발표하며 생일 문제의 한 형태를 처음 활자화함. 이후 이 문제가 확률론 입문의 고전 사례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 첫 공식 출판.
초대 관장 바가 주도하고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피카소 40년의 작업을 망라함. 피카소를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시키며 이후 MoMA 회고전의 전형을 세움. 한 작가에 대한 재해석을 제도적으로 각인시킨, 국제적 주목을 받은 전시.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결성된 관변 유림 단체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로 선출됨. 전시체제 아래 유림을 황국신민으로 동원하기 위한 단체의 핵심 임원진에 합류함. 그가 친일 유림으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
경성 부민관에서 문인 약 250명이 참여한 조선문인협회 창립식이 열리고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광수가 회장에 선출됨. 이광수는 취임사에서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협회의 목적으로 제시함. 이후 전선의 일본군을 위한 위문문 모집과 문예 행사 등 문단 차원의 전쟁 협력을 이끈 친일 문인단체의 출범.
1939년 10월 16일 경학원에서 열린 전국 유림대회에서 조선유도연합회 결성이 결의됨. 미나미 지로(南次郎) 조선총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1932년 출범 뒤 유명무실해진 조선유교회를 대신해 전시체제의 유림 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됨.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 진흥과 황국신민화를 표방한 일제 말기 최대의 관변 유림 단체.
폴란드군은 전술적 우위를 보이며 독일군의 공세를 여러 차례 막아냈으나, 탄약 및 보급 부족으로 인해 결국 항복.
조선일보 기자·정치부장·편집국장·주필 등을 지냈으며, 이후 조선일보 고문으로 활동. 전 대통령 김대중과 동명이인인 보수 성향의 언론인·시사평론가.
나치 독일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통해 소련의 중립을 확보한 후 폴란드를 기습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장현. (~2021년)
미국의 정치인 스테니 호이어.
네덜란드의 작곡가 루이 안드리선. (~2021년)
미국의 건축가 로버트 A. M. 스턴. (~2025년)
두 나라의 군사 정책 통합과 상호 군사 지원 의무를 규정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추축국의 기반을 다진 핵심적인 사건. 평화 시 정치·경제적 협력 강화, 어느 한쪽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즉각적인 군사적 지원 및 전시 생산 협력한다는 내용.
일본의 저술가 도조 유코. (~2013년)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듀렐 스톤이 국제 양식으로 설계한 53번가 신축 건물을 1939년 5월 10일 개관함. 백색 대리석과 유리 외벽의 6층 건물로, 주변 타운하우스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더니즘 건축. 개관식에는 6,000여 명이 모였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로 축사를 보낸, 미술관의 현 위치 정착을 알린 사건.
공동 설립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1939년 30세에 회장으로 취임함. 화려한 추진력으로 미술관의 홍보·작품 수집·신관 확장을 주도. 1932년부터 이사로 관여했고 1946–1953년 다시 회장을 맡았으며, 훗날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