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벤트 8,016

정렬

1977 9건
49년 전

미국의 성우, 성우 감독.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담당. 《교향시편 유레카 세븐》의 에우레카 역, 《케이온!》의 유이 역, 《세일러 문》의 우사기 역,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아사히나 미쿠루 역.

앨런 케이와 아델 골드버그가 1977년 3월 IEEE Computer에 《Personal Dynamic Media》를 발표함. 논문은 다이나북을 읽기·쓰기·그리기·음악·프로그래밍·시뮬레이션을 하나의 개인용 컴퓨터에서 수행하는 새로운 매체로 제시함.

두 사람은 컴퓨터를 기존 매체를 단순히 디지털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가 지식을 표현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며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동적 매체’로 규정함. 다이나북 구상과 스몰토크 환경의 교육·창작 철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 논문으로 평가됨.

제록스 PARC 앨런 케이
1976 11건
50년 전

나라시노시립 제4중학교 향토사연구회가 1976년 여름 오와다신덴 등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주민 증언을 조사함. ‘보호’를 위해 나라시노 수용소에 수용된 조선인 일부가 군에 의해 주변 마을로 넘겨지고 주민들에게 살해·매장되었다는 증언을 수집함. 공문서만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나라시노 수용소 인근 학살을 지역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규명하는 출발점.

보니 타일러가 성대 결절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받음. 수술 이후 목소리가 이전보다 거칠고 허스키하게 변화했고, 이 음색은 이후 타일러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특징이 됨.

강한 고음과 갈라지는 듯한 음색은 로드 스튜어트나 재니스 조플린과 비교되며 타일러가 다른 여성 팝 가수들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자리잡음.

웨일스 클럽 무대에서 활동하던 보니 타일러가 음반 관계자에게 발탁돼 RCA 레코드에서 본격적인 음반 활동을 시작함. 본명 게이너 홉킨스 대신 '보니 타일러'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프로 가수로 활동. 이 시기 작곡가 겸 매니저 로니 스콧과 스티브 울프가 초기 음악 활동을 이끌며 컨트리와 팝, 록을 결합한 음악적 기반을 형성함.

보니 타일러

찰리 멍거가 블루칩 스탬프스 이사회 의장에 취임.

블루칩 스탬프스는 시즈 캔디와 웨스코 파이낸셜 등을 보유하며 멍거와 워런 버핏의 기업 인수와 자본 배분에 중요한 역할을 한 회사.

블루칩 스탬프스는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의 완전 자회사가 됨.

찰리 멍거 투자자

존 보이드가 손자병법에서 전격전과 현대전에 이르는 전쟁사의 패턴을 종합한 브리핑 「패턴 오브 컨플릭트(Patterns of Conflict)」를 처음 발표함. 상대의 관찰·방향 설정·결정·행동 주기를 교란하고, 더 빠른 판단과 행동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제시함. OODA 루프가 공중전 전술을 넘어 전쟁 이론과 조직 전략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계기.

OODA 루프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드러난 자민당의 금권부패를 비판하며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자유클럽을 결성해 대표에 취임함. 정치 개혁과 청신함을 내세운 보수 신당으로 주목받음. 기성 보수 정치에 대한 반발을 상징한 사건.

고노 요헤이

댄 잉걸스가 실행 의미 일부를 고정하고, 클래스 상속과 바이트코드 실행 방식을 정리한 스몰토크-76 가상머신을 설계함. 초기 스몰토크의 유연한 해석 방식을 더 효율적인 실행 모델로 다듬어, 실제 개인용 컴퓨터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성능 기반을 마련한 작업.

스몰토크-76은 클래스 라이브러리 브라우저와 코드 편집기 등 오늘날의 통합 개발 환경에 가까운 도구를 갖춤. 이 설계는 이후 스몰토크-80의 언어·가상머신·개발 환경으로 이어지며, 현대 객체지향 언어와 라이브 프로그래밍 환경의 중요한 기반이 됨.

스몰토크

대만 ITRI가 미국 RCA로부터 7마이크로미터급 집적회로 제조 공정 기술과 특허를 이전받음. 자체 기술이 전무했던 대만이 반도체 양산 기반을 처음으로 확보한 사건. 이때 RCA로 파견돼 기술을 익힌 엔지니어들이 이후 대만 반도체 산업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

유도 4단이자 1급 심판보 서경애 (부산시 서구 암남동)가 문화체육관에서 열리는 회장기 쟁탈 전국 단체 유도 대회에 여성 유도 심판으로 첫 출장. 일반부의 경북 OB, 전남 OB 등 3경기에서 심판을 담당. 당시 한국 1급 심판은 72명이고, 서경애는 1976년 8월에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1급 심판 자격 획득. 부산 충무국민학교 6학년 때 유도 시작, 여성 최고 유단자. 164cm, 7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