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광주일고와의 청룡기 경기 중 나온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가야지’ 등 부적절한 응원 구호를 스포츠 정신 위배 및 경기장 질서 문란 사안으로 판단하고,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출전 정지 6개월 징계를 의결함. 징계는 7월 2일 청룡기 2회전부터 즉시 적용돼 해당 경기는 배재고의 몰수패로 처리됨. 협회는 지도자와 학생 선수 개인에 대한 징계 대상 및 수위는 추가 조사 뒤 출전 제한 기간 안에 별도 심의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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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교직원 12명, 야구부 학생 선수 36명, 일부 학부모가 광주제일고를 찾아 직접 사과하겠다는 뜻을 전달함. 이는 청룡기 고교야구 경기에서 배재고 일부 학생 선수가 광주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려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를 조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뒤 나온 조치임.
광주일고는 학생들이 아직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당일 방문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고, 방문은 이뤄지지 않음. 서울시교육청은 이후 광주일고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우선해, 광주일고 측과 향후 방문 일정과 방식을 협의하겠다고 밝힘.
사과의 의사 표명과 별개로, 관련 학생들에 대한 교육·조사 절차와 피해 학생들의 의사 확인이 충분히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 행위 당사자들이 대규모로 직접 방문하는 방식은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됨. 사과의 시점과 방식,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피해 학생 측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사과가 피해자에게 즉각적인 응답이나 화해를 요구하는 추가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로 논의됨.
홍석준 전 국민의힘 의원이 KBC광주방송 시사 프로그램에서 배재고 야구부의 광주제일고 대상 응원 구호 논란을 두고, 경기 중 상대를 야유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스포츠 문화의 일부라는 취지로 발언함. 서울시교육청 등이 해당 학생 선수들을 징계할 경우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함.
홍 전 의원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5·18 민주화운동 및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탱크데이’ 논란과 연결하는 것은 정치적 선전·선동이라고도 주장함. 해당 발언은 배재고가 구호를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학생들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밝힌 뒤 나옴.
하마스 주도 무장세력이 로켓 공격과 국경 침투를 통해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자,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라고 선언함. 이스라엘 정부는 다음 날인 10월 8일 내각 결의를 통해 정식으로 전쟁 상태를 승인했고, 가자지구를 향한 대규모 군사작전이 시작됨. 이후 이스라엘군과 국내 보안기관의 조사에서는 하마스의 공격 역량과 의도를 과소평가하고 민간인 보호에 실패한 점이 확인됨. 네타냐후 정부는 안보 실패의 책임, 인질 협상과 전쟁 수행을 둘러싸고 장기간의 비판과 퇴진 요구에 직면함.
배재학당총동창회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중 발생한 배재고 학생선수들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 논란과 관련해 광주제일고 선수단·학부모·지도자·동문에게 사과하는 입장문을 게시함. 총동창회는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응원 실수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과 상대 존중에 반하는 행위라고 밝힘.
학교 당국과 학교법인에는 발생 경위와 책임 소재의 철저한 조사, 책임자 엄정 조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함. 또한 사안을 일부 학생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며 학생선수 교육·지도·감독 체계의 점검과 함께, 도의적·관리적 책임을 이유로 배재고 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함.
배재학당총동창회 입장문 전문
배재학당 동문 여러분, 그리고 광주제일고 동문 여러분!
오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배재고등학교 학생선수들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와 관련하여 배재학당총동창회는 참담한 심정으로 깊은 유감과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응원 과정의 실수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이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기본 가치로 삼아야 할 학생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 특히 이번 사안은 특정 이념이나 사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운동장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품격과 예의를 저버린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배재학당은 1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인격과 품성을 중시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섬김을 실천하는 배재정신을 교육의 근간으로 삼아 온 민족의 명문학당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상대 학교와 동문들께 큰 상처를 드렸다는 점에서 깊은 반성과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제일고 선수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모욕과 상처를 드렸으며, 경기를 지켜보신 학부모님들과 지도자 여러분께도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렸습니다.
또한 광주제일고 동문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동문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오랜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는 두 학교는 그동안 선의의 경쟁과 상호 존중 속에서 한국 야구와 교육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광주제일고의 명예를 훼손하고 동문 여러분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하여 배재인 모두를 대신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여러분께서 느끼셨을 실망과 분노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배재학당총동창회는 학교 당국과 학교법인이 이번 사안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발생 경위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또한 관련 규정에 따라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일부 학생들의 일탈행위로만 치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생선수들에 대한 평소 교육과 지도, 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였는지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이루어져야 하며,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학교 지도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배재학당총동창회는 학교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한 도의적·관리적 책임을 지고 교장은 즉각 사퇴하여야 하며, 학교법인 또한 책임에 대하여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책임 있는 지도부의 결단만이 실추된 배재학당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받은 광주제일고와 국민 여러분께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배재학당총동창회는 향후 학교 측의 조사와 후속 조치를 예의주시할 것이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와 그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확인될 경우 관계자들에 대한 더욱 엄정한 책임 추궁과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배재의 명예는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니라 모든 배재인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이번 사안을 결코 축소하거나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며, 배재 공동체와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 있는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광주제일고 선수단과 학부모님, 동문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배재인은 이번 일을 뼈아픈 반성의 계기로 삼아 상대를 존중하고 섬기는 참된 배재정신을 되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2026년 6월 29일
배재학당총동창회
제39대 회장 김동연 및 임원 일동 올림
국본이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을 전국 37~38개 시·군에서 동시에 벌임.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6월 항쟁 최대 규모의 시위로, 대도시뿐 아니라 군 단위 농촌까지 시위가 번짐. 경찰력만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함이 분명해지며 정권을 6·29 선언으로 내몬 결정적 항쟁.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 도중,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등의 구호를 외치고 “탱크데이”라는 표현도 사용.
해당 표현은 2026년 5월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연상시키며, 광주와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비하하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이 확산됨. 광주일고 측은 심판진에 항의했고, 경기는 잠시 중단.
배재고는 같은 날 사과문을 내어 광주일고 선수단과 관계자, 광주 시민에게 상처와 실망을 줬다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 교육을 약속함.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선수단 관리 책임 등을 포함해 조사와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서울시교육청도 조사에 착수함.
배재고 사과문 전문
금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와의 경기 중 우리 학교 일부 학생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인해 광주제일고등학교 선수단과 학부모님, 동문 여러분, 그리고 광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깊은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해당 학생선수를 즉시 제지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으며, 경기 후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측에도 사과의 뜻을 전달하였습니다.
해당 응원은 상대 학교와 지역사회를 존중해야 하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였으며, 역사적 의미와 지역사회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학교는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학교는 다음과 같은 후속 조치를 시행하겠습니다.
- 첫째, 해당 학생선수에 대해서는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여 학칙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둘째, 야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스포츠맨십, 인권 감수성, 공동체 의식 및 선수 윤리에 관한 특별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 셋째,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역사 인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 올바른 응원문화 정착을 위한 재발 방지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며, 학교는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학생 인성교육과 올바른 응원문화 정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6.06.29
배재고등학교
『사상계』, 함석헌 「5·16을 어떻게 볼까」 게재
『사상계』 1961년 7월호가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를 게재함. 함석헌은 민중의 동의와 참여 없이 이뤄진 군사정변은 참된 혁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독재와 권력 남용의 위험을 지적함. 글을 게재한 뒤 발행인 장준하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에게 끌려가 글을 실은 경위를 심문받음.
글이 실린 같은 시기 『사상계』 6월호 권두언은 5·16을 4·19 혁명의 과업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군사혁명으로 평가한 반면 (해당 권두언은 편집장 장준하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짐), 함석헌은 민중의 동의 없는 군사정변은 참된 혁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함.
함석헌,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건국포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가 광복절 57주년 기념식에서 함석헌에게 건국포장을 추서. 정부는 일제강점기 언론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공적을 인정해 독립유공자로 포상.
함석헌,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함석헌의 유해가 2006년 10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됨.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에 있던 묘소에서 이장된 것으로, 독립유공자 묘역 329호에 안장됨.
함석헌 사망
함석헌이 1989년 2월 4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함. 향년 87세. 사상가·교육자·종교인으로 활동하며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고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에 참여함.
함석헌이 1970년 4월 교양·평론 잡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고 발행인을 맡음. 잡지는 민주주의 발전을 표방하며 시사·사회·사상 문제를 다뤘고, 한글 전용 가로쓰기와 구어체 표현을 사용해 일반 독자가 읽기 쉽게 구성됨. 창간호와 5월호 발행 뒤 문화공보부의 등록취소처분을 받음.
함석헌이 1962년 일우사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발간함. 이 책은 1930년대 『성서조선』에 연재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바탕으로 개정·증보한 한국사 저술임.
함석헌, 미국 방문 중 퀘이커와 교류
함석헌이 1962년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함. 방문 중 퀘이커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퀘이커 학교에서 공부함.
함석헌, 월남 후 YMCA에서 성서강해 계속
함석헌이 1947년 3월 월남한 뒤 서울 YMCA에서 성서강해를 계속함.
함석헌이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함. 이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등 『성서조선』 관계자들이 검거되었고, 잡지는 강제로 폐간됨.
함석헌, 계우회사건 연루로 1년간 구류
함석헌이 1940년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에서 김혁이 운영하던 송산농사학원을 경영하던 중 계우회사건에 연루됨. 대동경찰서에서 약 1년간 구류 생활을 함. 이후 1942년 『성서조선』 필화사건으로 다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게 되는 일제 말기 탄압의 전조가 된 사건.
함석헌이 1928년 4월 귀국해 모교인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하고, 1938년 3월 사임할 때까지 역사와 수신을 가르침. 재직 중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신앙을 함께 가르치며 교육자로 활동함.
함석헌이 1927년 2월 김교신·송두용·류석동·정상훈·양인성과 함께 무교회주의 동인지 『성서조선』 창간에 참여함. 『성서조선』은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신앙·교육·민족 문제를 다룬 매체로,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1942년 폐간될 때까지 발행됨.
함석헌, 동경고등사범학교 유학 중 무교회주의 신앙 수용
함석헌이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제1부에 입학해 1928년 졸업함.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고, 김교신·송두용·정상훈 등과 교류하며 무교회주의 신앙을 받아들임. 제도 교회보다 성서 읽기와 개인의 신앙적 결단을 중시하는 관점이 이후 그의 종교사상과 사회 참여의 중요한 토대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