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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7일 독일 카셀 희망교회 공동체가 새형제들교회 부지에 임시 설치돼 있던 평화의 소녀상의 영구 존치를 승인함. 소녀상은 2022년 카셀대학교에 설치됐다가 2023년 철거된 뒤, 2025년 3월 교회 부지로 옮겨져 임시 설치 상태에 있었음.

대학 캠퍼스 철거 이후 시민사회와 종교 공동체의 연대를 통해 안정적인 존치 장소를 확보한 사건. 해외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압력 속에서도 다른 사회적 기반을 통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자리매김함.

2025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2023년 카셀대학교에서 철거된 평화의 소녀상이 카셀 새형제들교회(노이에브뤼더키르헤) 부지에 다시 설치됨. 카셀대 철거 이후 약 2년 만에 이뤄진 재설치로, 교회 공동체와 재독 시민사회의 연대가 설치를 뒷받침함.

소녀상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철거를 거쳐 종교·시민사회 공간으로 옮겨가며 존치 기반을 확보함. 해외 소녀상 운동이 행정·대학 당국의 철거에 대응해 새로운 공공적 기억 공간을 찾아가는 사례가 됨.

2023년 3월 9일 독일 카셀대학교가 학생회관 앞에 설치돼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사전 통보 없이 철거함. 카셀대 총학생회는 같은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른 아침 대학 측이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은 채 소녀상을 옮겼다고 밝힘.

대학 측은 한시적 설치 허가가 연장 뒤 만료됐다고 설명했으나, 학생회와 시민사회는 영구 설치 결의가 있었고 일본 정부의 지속적 철거 압력이 작용했다고 비판함. 2022년 7월 독일 대학 캠퍼스에 처음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약 8개월 만에 철거되면서, 해외 소녀상 운동이 대학 자치와 표현의 자유, 외교적 압력의 충돌로 번진 사례가 됨.

2019년 10월 8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우익 세력의 협박과 항의로 중단했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를 재개함. 전시장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도 약 두 달 만에 다시 공개됨.

다만 안전 문제를 이유로 하루 관람객 수를 제한하고 사전 추첨제로 입장시키는 방식이 적용됨. 10월 14일 예술제 폐막까지 이어진 제한 재개는 소녀상을 둘러싼 논쟁이 역사 인식 문제를 넘어 일본 내 표현의 자유와 검열 논쟁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 사건.

평화의 소녀상

2025년 6월 28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한시 전시됐던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가 독일 본 여성박물관 안뜰에 영구 설치됨. 소녀상은 여성주의 기억 문화의 일부로 전시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식민 폭력, 군사적 성착취 문제를 알리는 기념물로 자리 잡음.

쾰른의 단기 전시가 상설 기억 공간으로 이어진 사례로, 해외 소녀상 운동이 철거·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제도적·문화적 기반을 확보한 사건으로 볼 수 있음.

평화의 소녀상

2025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독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NS-DOK) 앞에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Đồng Mai)’를 제막함. 소녀상은 박물관의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제3세계’ 전시와 연계해 6월 1일까지 한시적으로 공개됨.

쾰른시장의 설치 반대와 일본 측의 문제 제기에도 시민사회와 지방의회의 지지가 이어지며 전시가 성사됨. 한시적 전시였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전시 성폭력 문제를 독일의 나치 범죄 기억 공간과 연결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큼.

평화의 소녀상

2026년 5월 6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 바리케이드가 약 6년 만에 전면 철거됨. 바리케이드는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단체의 집회와 훼손 우려가 커진 뒤 2020년 6월 설치돼 있었음.

바리케이드 철거로 시민들이 다시 소녀상과 빈 의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됨. 소녀상 주변 공간이 통제와 충돌의 장소에서, 피해자 기억과 수요시위의 공공적 장소로 회복되는 상징적 사건.

평화의 소녀상

2026년 1월 22일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2025년 10월 강제 철거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아리’를 베를린 모아비트 ZK/U 예술·도시학센터 부지에 다시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었음. 새 설치 장소는 기존 유니온광장 인근으로, 향후 1년간 임시 설치가 허가됨.

공공부지 철거 이후에도 시민사회와 예술기관의 연대로 소녀상이 다시 시민 공간으로 돌아온 사건. 일본 정부의 철거 요구와 지방 행정당국의 규제에도 기억과 전시 성폭력 반대 운동이 계속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후속 분기점.

2022년 7월 8일 독일 카셀대학교 학생회와 학생의회가 캠퍼스 내 평화의 소녀상 영구 설치를 추진해 본관 앞에서 제막식을 열었음. 독일 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첫 평화의 소녀상으로, 학생들이 전시 성폭력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역사 교육과 인권의 과제로 기억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사례.

설치 이후 일본 측의 철거 요구와 압박이 이어졌으나, 학생사회와 시민사회가 소녀상을 전쟁범죄와 성폭력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지지하면서 독일 내 기억 운동의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됨.

평화의 소녀상

2019년 8월 3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협박 전화와 항의 확산을 이유로 개막 사흘 만에 전시를 중단함. 전시장에는 김운성·김서경의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돼 있었음.

나고야 시장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비판, 보조금 지급을 둘러싼 압박이 이어지면서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내 표현의 자유와 역사 인식 갈등의 상징으로 부상함. 전시는 이후 제한된 방식으로 재개됐으나, 소녀상을 둘러싼 검열 논쟁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킨 사건.

2017년 3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평화비 철거를 요구한 소송의 상고심 심리를 거부함. 일본계 원고들은 기림비 설치가 미국 연방정부의 외교 권한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으나, 하급심 판단이 그대로 확정됨.

글렌데일 평화비는 지방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기억하는 기념물을 공공부지에 설치할 수 있음을 확인한 대표적 판례가 됨. 이후 해외 평화의 소녀상·기림비 설치를 둘러싼 법적 대응과 기억정치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함.

2025년 10월 17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 행정당국이 모아비트 유니온광장 공공부지에 설치돼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대집행으로 철거함.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고등행정법원이 전날 코리아협의회의 항고를 기각하며 추가 존치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한 뒤 이뤄진 조치임.

미테구는 기존 위치에서 약 100m 떨어진 공개 접근 가능 부지로의 이전안을 제시했으나, 코리아협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 철거 과정에는 경찰이 배치됐고 조각상은 안전한 장소에 보관됨.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철거 요구와 맞물려,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기억·표현의 자유·외교적 압력이 다시 충돌한 사건으로 남음.

2020년 9월 28일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독일 베를린 미테구 모아비트 유니온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었음. 김운성·김서경이 제작한 소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전시 성폭력 문제를 기억하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요구하는 공공 기림비로 건립됨.

독일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평화의 소녀상으로, 코리아협의회가 추진한 전시 성폭력 반대·역사 교육 활동의 거점이 됨. 설치 직후 일본 정부가 독일 외교 당국과 베를린 행정기관에 철거를 요구하면서, 소녀상의 존치를 둘러싼 국제적 기억정치와 외교 갈등의 상징적 사례로 부상함.

평화의 소녀상

2018년 10월 2일 일본 오사카시가 샌프란시스코시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수용에 반발해 약 60년간 이어진 자매도시 관계를 단절한다고 발표함. 오사카시는 기림비가 일본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양 도시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주장함.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둘러싼 갈등이 국가 간 외교를 넘어 지방정부 간 도시 외교와 국제 기억정치의 충돌로 확장된 사례.

2017년 9월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메리스 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림비 ‘여성들의 기둥(Women’s Column of Strength)’을 제막함. 조각가 스티븐 와이트가 제작한 청동상으로, 한국·중국·필리핀 출신 소녀 세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원을 이루며 서 있는 형상과 이를 바라보는 고령의 피해 여성상을 함께 구성함.

기림비는 위안부정의연대(Comfort Women Justice Coalition)가 모금과 추진을 주도해 건립함.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를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여성들이 겪은 전시 성폭력의 역사로 기억하려는 기념물로 자리 잡음.

2017년 1월 6일 일본 정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재설치에 항의하며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주재 총영사의 일시 귀국을 결정함. 동시에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과 고위급 경제협의 개최를 중단·연기하는 조치를 발표함. 일본 정부는 이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어긋나는 사안으로 규정했으며, 소녀상 문제가 양국의 외교·경제 협력에도 영향을 미친 대표 사례가 됨.

평화의 소녀상

2016년 12월 30일 부산 동구청이 철거했던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허용하면서, 시민단체가 주부산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다시 세움. 현장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림비도 함께 설치됨. 일본 정부는 즉시 한국 정부에 유감을 표하고 철거를 요구했으며, 부산 소녀상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외교 갈등의 직접적 쟁점으로 떠오름.

평화의 소녀상

2016년 12월 28일 부산 시민단체가 주부산일본총영사관 앞 인도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으나, 부산 동구청이 이를 도로법상 불법 시설물로 판단해 약 4시간 만에 철거함. 설치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경찰이 대치하고 일부 참가자가 연행되면서 논란이 커짐. 철거 조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기억을 공공장소에 남기려는 시민사회 활동과 행정당국의 충돌을 드러낸 사건.

평화의 소녀상

2015년 12월 28일 한국 정부(박근혜 대통령)와 일본 정부(아베 신조 총리)가 서울에서 열린 윤병세·기시다 후미오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함. 일본 정부는 군의 관여와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반성 표명, 일본 정부 예산 약 10억 엔을 통한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방침을 제시함. 양국은 해당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함.

합의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관해 한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됨. 피해자와 시민사회는 협상 과정에 피해자 중심 접근과 민주적 절차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며, 이후 합의의 정당성과 효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짐.

평화의 소녀상 박근혜

2013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중앙공원에서 한국계 시민단체가 건립한 글렌데일 평화비를 제막함.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본뜬 청동 기림비로, 소녀와 빈 의자가 나란히 놓인 형상으로 제작됨. 글렌데일 시의회가 설치를 의결하고, 캘리포니아 한국계 미국인 포럼이 모금과 건립을 주도함. 미국 서부의 공공부지에 세워진 첫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가운데 하나로, 평화의 소녀상이 국외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기억 운동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됨.

평화의 소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