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가톨릭소년》에 동시 발표
《병아리》를 시작으로 《빗자루》 등 동시를 《가톨릭소년》에 발표한 시기. 다음 해에도 《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거짓부리》 등을 발표하며 이어간 어린이 대상 글쓰기. 후대의 엄숙한 시인상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상에 대한 관찰과 친근한 말맛을 보여주는 작품군.
《병아리》를 시작으로 《빗자루》 등 동시를 《가톨릭소년》에 발표한 시기. 다음 해에도 《오줌싸개 지도》·《무얼 먹구 사나》·《거짓부리》 등을 발표하며 이어간 어린이 대상 글쓰기. 후대의 엄숙한 시인상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상에 대한 관찰과 친근한 말맛을 보여주는 작품군.
동아일보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 보도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처분이 이어진 뒤 동아일보 취체역에서 물러남.
영국 방송공사 BBC가 1936년 11월 2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정규 고해상도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함. 당시 기준의 고해상도 방식인 베어드 기계식과 마르코니-EMI 전자식 시스템을 시범 운영했고 이후 전자식으로 통일됨. 오늘날 HD 방송과 동일한 해상도를 뜻하는 것은 아님.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명치좌가 영화관으로 문을 엶. 일제강점기 일본영화 상영관에서 출발한 건물이 해방 이후 공공 공연장과 국립극장으로 전환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적 기능을 축적하게 됨.
수정 타자 원고의 출판사 제출과 열 살 독자 레이너 언윈의 호의적인 독후 보고. 어린이 독자의 반응이 출간 결정에 영향을 준 출판 준비 과정.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를 두어 1935년 1월부터 1936년 8월까지 표준말 사정을 끝내고 한글날에 공표함. 전국에서 두루 통할 표준어의 기준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작업. 사전 편찬과 국어 교육의 바탕이 됨.
동양극장의 동극좌와 희극좌를 통합하여 호화선 출범. 시대극·희극을 나누어 운영하던 체제에서 관객 취향과 흥행을 고려해 단원을 재편하고 음악부를 보강. 초기에는 레뷰 형식을 시도했으나 점차 청춘좌와 비슷한 대중극 중심으로 전환. 청춘좌와 함께 주요 전속극단으로 자리 잡고 지방 순회공연을 통해 극장 밖 관객층까지 확대.
조선성악연구회가 1936년 9월 자체 제작한 창극 《춘향전》을 동양극장에서 공연. 앞서 청춘좌의 신창극 《춘향전》에 찬조 출연하며 창극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독자 제작 무대. 명창들이 배역을 나누고 노래와 연기를 결합한 공연으로, 이후 연구회가 제작한 창극 양식의 초기 완성 단계로 평가. 동양극장의 시설과 연기·무대 기술 지원 속에서 판소리가 집단적인 극 형식으로 발전한 사례.
이상이 《조광》 1936년 9월호에 《날개》를 발표함. 아내에게 의존하며 방 안에 머무는 일인칭 화자가 돈과 거리의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룸. 화자의 설명과 실제 정황 사이의 간극을 통해 자기 인식의 불안정함을 드러냈으며, 한국 근대 심리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음.
조선총독부가 동아일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중앙일보의 8월 13일자 보도를 확인하고 1936년 9월 1일부터 수사를 시작해 관계자 4명을 연행함. 조선중앙일보는 동아일보와 같은 정간 처분을 예상해 9월 4일자 석간을 마지막으로 5일부터 자진 휴간에 들어감. 이후 경영 내분과 재정 문제 속에서 복간하지 못하고 발행 허가 실효로 이어짐.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1936년 8월 27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을 통보함. 동아일보는 이미 인쇄한 8월 28일자를 마지막으로 29일부터 발행을 중단함. 이길용·이상범 등 직접 관련자뿐 아니라 사회부장 현진건과 잡지 편집 관계자 등 다수가 연행되어 취조받음. 총독부가 복간 조건으로 사장 송진우를 비롯한 주요 간부와 관련 사원의 퇴직, 핵심 간부 임명에 대한 사전 승인, 편집 지침 수용 등을 요구하면서 언론사 인사와 지면에 대한 통제로 확대됨.
동아일보가 1936년 8월 25일자 석간 제2판 2면에 손기정의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면서 유니폼 가슴의 일장기를 완전히 제거함. 석간 제1판에는 일장기가 그대로 보였으나 제2판에서는 삭제된 상태로 인쇄됨. 운동부장 이길용의 제안으로 화가 이상범이 원본 사진의 표식을 흐리게 했고, 장용서·신낙균·서영호 등 사회부와 사진부 관계자들이 삭제 작업에 관여함. 검열관이 이를 발견하면서 당일 지면의 발매·배포 금지와 관련자 연행으로 이어짐.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8월 13일자 지면에 손기정과 남승룡의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면서 두 선수의 유니폼에 있던 일장기를 삭제함. 체육부 기자 유해붕이 사진부원들과 협의해 표식을 지운 것으로 확인됨. 같은 날 동아일보에도 손기정의 일장기가 흐릿하게 나타난 사진이 실렸으나, 남승룡의 표식은 남아 있었고 고의적 수정 여부를 뒷받침하는 기록도 확인되지 않음.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검열 당국은 조선중앙일보의 삭제를 알아채지 못함.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 당시 넘기 어렵다고 여겨지던 2시간 30분의 벽을 깬 기록이며, 같은 경기에서 남승룡이 3위로 동메달 획득. 한국인이 올림픽에서 처음 따낸 금메달이지만 국적은 일본으로 기재되었고, 시상대에서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모습이 널리 회자.
한국 시간으로 8월 9일 밤 11시에 출발한 경기로, 한밤중임에도 신문사 앞에 군중이 모여 소식을 기다림. 초반을 앞서 가던 선두 주자를 중반 이후 따라잡고 선두로 나선 뒤 그대로 결승선 통과. 12만 명이 들어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시간 29분 19초 2를 기록.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섰으나 이름과 국적은 일본식 표기로 호명되었고, 부상으로 받은 참나무 화분을 가슴께로 들어 올려 일장기를 가린 자세로 고개를 숙임.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조선 내 신문에 실리는 과정에서 일장기를 지운 편집이 이뤄지며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짐.
청춘좌가 1936년 7월 동양극장에서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초연. 차홍녀가 홍도, 황철이 오빠 철수, 심영이 남편 광호, 한은진이 시누이를 맡아 가족 갈등과 여성의 비극을 무대화. 7월 23일부터 31일까지의 초연 이후 1938년까지 동양극장에서 공식적으로 일곱 차례 재공연될 만큼 큰 인기. 동양극장의 수익과 명성을 높였으며, 1939년 영화화로도 이어진 대표 레퍼토리.
국제연맹 총회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부과했던 경제제재의 종료를 결정. 제재는 무기와 일부 원자재·금융거래를 제한했으나 석유 금수와 수에즈운하 봉쇄는 포함하지 않은 조치.
결정 당시 이탈리아군은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고 에티오피아 병합을 선포한 상태였으며, 제재는 7월 15일 종료. 에티오피아 정부는 병합의 승인을 거부하고 국제연맹 회원국 지위를 유지.
《중앙》에 《지주회시》를 발표한 시기. 《날개》와 함께 1936년의 활발한 소설 창작을 보여 주는 작품. 도시의 일상과 인물 관계를 익숙한 사실적 서술만으로 정돈하지 않는 실험이라는 맥락에서, 시와 소설을 오가던 작가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지점.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 (1868년~)
수리남의 제6대 대통령 로날트 페네티안.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