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랭군(현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참배를 앞두고 발생한 폭탄 테러. 전두환을 암살하려던 북한 공작원들이 미리 설치한 폭탄이 대통령 도착 전에 터지면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한국인 수행원과 취재진 1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버마 현지인들도 희생됨.

버마 정부는 현장 수사와 체포된 공작원들의 진술, 재판 등을 통해 북한의 책임을 공식 확인하고 1983년 11월 4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함. 피고인 두 명은 1983년 12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실제 처분은 서로 달라졌음. 이 사건은 냉전기 한반도 긴장과 남북한의 국제 외교 경쟁에 큰 파장을 남김.

1983년 10월 13일 희생자 합동국민장이 열렸으며, 2014년에는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 추모비가 건립됨. 2023년 40주기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국가보훈부 주관 추모식이 열려 희생을 다시 기억함.

17 타임라인
23 관련 링크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추가 정보

해외 순방의 공식 행사에서 벌어진 폭발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시아·대양주 지역을 순방하면서 첫 방문국인 버마를 찾았음. 10월 9일에는 버마의 독립운동 지도자 아웅산을 기리는 묘소에 참배할 예정. 한국 측 각료와 수행원, 경호원, 취재진은 대통령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음. 그때 묘소 지붕에 미리 설치돼 있던 폭탄이 폭발함.

전두환은 당시 현장에 도착하지 않아 살아남았지만 한국 측에서는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 모두 17명이 사망. 버마 현지인들도 희생됐음. 당시 국제 언론에는 전체 사망자가 21명으로 보도됐으나, 일부 한국 자료에는 미얀마 측 사망자가 3명으로 기록돼 있어 현지인 피해 집계에는 자료 차이가 남아 있음.

준비 과정과 용의자 검거

버마 수사와 재판 기록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 세 명은 1983년 9월 버마에 잠입해 행사 장소를 살펴보고 폭탄을 설치함. 사건 발생 직후 현지 경찰과 군이 수사에 나서 공작원 한 명을 사살하고 두 명을 체포. 도주자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현지 경비 인력의 희생도 발생했음.

버마 정부는 공작원들의 진술과 압수 증거물을 토대로 북한이 범행에 관여했다고 발표. 1983년 11월 4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끊고 북한 외교관들에게 출국을 통보함. 중립 외교를 유지하던 버마의 이러한 조치는 북한의 외교적 입지에 타격을 주었음.

형사재판과 뒤이은 처분

1983년 11월 버마 법원에서 체포된 북한 공작원 두 명의 재판이 시작됐으며, 같은 해 12월 9일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됨. 이후 상급심에서도 사형 판결이 유지됐음. 진모(김진수)에게는 1985년 사형이 집행된 반면, 범행을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에게는 형이 집행되지 않아 장기간의 수감 생활이 이어짐. 강민철은 2008년 5월 미얀마의 교도소에서 사망함.

이러한 수사와 재판 기록은 폭발 당시의 사실관계뿐 아니라 사건을 국가 간 테러 문제로 공식 규정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됨.

한국 사회와 남북관계에 남긴 영향

한국 정부는 사건 직후 남은 순방을 취소하고 비상 대응에 나섰으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북한을 향한 규탄, 보복론 등이 나타남.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국제적 신뢰와 제3세계 외교에 상당한 파장이 미쳤음. 사건을 이해할 때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냉전기 남북한의 대결 구도, 국제사회의 외교적 대응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음.

장례, 추모비, 40주기

1983년 10월 13일 희생된 한국인 17명에 대한 합동국민장이 열렸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됨. 2012년에는 미얀마 현지에 추모비를 세우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으며, 2014년 6월 6일 아웅산 묘역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열림. 추모비에는 희생자 17명의 이름과 직책이 새겨짐.

2023년 10월 9일에는 사건 40주기를 맞아 국가보훈부 주관 추모식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됨. 장관과 외교관뿐 아니라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경호원·수행원·언론인의 이름까지 함께 기억하는 행사.

타임라인 17건 · 1983–2023

수록 이벤트 분포 점을 선택하면 해당 이벤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1985년부터 2008년까지 수록 이벤트가 없는 구간 접힘
1983년 2023년

수록 이벤트가 없는 긴 구간은 빗금 두 개로 접어 표시합니다.

1983
43년 전 · 11건

북한에서 파견된 공작원 세 명이 선박을 이용해 버마로 들어와 랭군(현 양곤)에 잠입. 1991년 공개된 버마 법원 판결문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지 북한 외교공관 관계자의 거처 등을 이용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아웅산 묘소 참배를 겨냥한 폭탄 테러를 준비했음. 사건이 우발적 폭발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공격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

공작원들이 예정된 참배 행사 이틀 전 아웅산 묘소 지붕에 원격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폭탄을 설치. 버마 수사와 재판에서 이러한 설치 경위가 다뤄졌으며, 사건 이후 현장에 남은 폭발물과 부품은 범행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됨. 고위 방문단의 이동 동선과 행사 장소를 미리 파악해 실행한 계획적인 공격.

1983년 10월 9일 버마 랭군(현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참배를 앞두고 폭탄이 폭발. 한국 측 수행원과 취재진 17명, 현지인 4명 등 총 21명이 사망. 전두환은 폭발 당시 묘소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피해를 피함. 사건 뒤 버마 당국의 수사로 북한 공작원의 범행이 확인됨.

전두환 암살 표적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전두환 대통령이 예정돼 있던 나머지 해외 순방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옴. 귀국 후 정부는 비상국무회의를 열고 경계 태세를 강화했으며, 북한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짐. 해외에서 발생한 테러가 국내의 안보·정치적 대응으로 번진 전환점.

버마 경찰과 군 당국이 폭발 직후 달아난 북한인 용의자들을 추적해 일부를 체포하고 한 명을 사살. 도주 과정에서 현지 경비 인력의 희생도 발생함. 체포된 용의자와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는 이후 범행 경위 조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가 됨. 검거가 며칠에 걸쳐 진행된 만큼 이 날짜는 수사 초기의 주요 시점을 나타냄.

버마 당국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 연루된 두 번째 한국인 용의자를 붙잡았다고 발표. 10월 13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버마 측이 12일 이 사실을 공개했으며, 전날 밤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보도. 주민 신고와 경찰의 추격이 용의자 검거에 중요한 역할을 함. 당시에는 용의자들의 국적과 범행 배경을 놓고 현지에서 여러 추측이 제기됐으나 이후 공식 수사를 통해 북한 공작원들의 범행이 확인됨.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서 숨진 한국인 17명의 합동국민장이 거행되고, 희생자들이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 안장됨. 희생자 중에는 장관과 외교관, 경호원, 수행원, 언론인이 포함돼 있었음. 장례는 국가적 추모가 시작된 계기였으며, 훗날 40주기 추모식도 이 묘역에서 열림.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대양주 순방 첫 방문지인 버마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아웅산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정이 준비됨. 국가원수의 공식 방문에 따른 의전 행사였으며, 묘소에는 한국 측 각료와 수행원, 취재진이 대통령보다 먼저 도착할 예정이었음. 이후 북한 공작원들의 공격 대상이 된 일정.

버마 법원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와 관련해 체포된 북한군 장교 두 명의 재판을 시작. 두 사람은 살인과 무기 소지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섰으며, 국제 언론과 외교관들이 재판을 지켜봄. 버마 정부가 북한 공작원들의 범행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형사책임을 법정에서 따지기 시작한 시점.

버마 랭군 지역 법원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실행한 혐의로 기소된 북한군 장교 진모와 강민철에게 모두 사형을 선고. 재판부는 증인들의 진술과 압수한 증거물, 강민철의 자백 등을 토대로 계획적인 살인이 이뤄졌다고 판단했음. 두 피고인은 이후 상급심 절차를 거쳤으며, 실제 형 집행과 감형 여부는 서로 달라짐.

1984
42년 전 · 1건

1983년 1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북한 공작원 두 명의 재판이 상급심까지 이어졌으며, 1984년 버마 최고법원에서 유죄 및 사형 판결이 유지됨. 폭발물과 관련 물품, 법정 증언 및 피고인의 진술 등이 판단의 근거로 제시됨. 이후 한 명에 대해서는 사형이 집행됐고,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형이 집행되지 않아 장기간 복역함. 상고심의 정확한 월일은 자료 간 기록 차이가 있어 연도만 사용.

1985
41년 전 · 1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북한 공작원 진모(김진수)에 대한 사형이 버마에서 집행됨. 반면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이어감. 두 피고인에 대한 처분이 갈라진 형사재판의 후속 결과.

2008
18년 전 · 1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북한 공작원 강민철이 미얀마의 교도소에서 사망. 수십 년간 복역해 온 그는 체포된 공작원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생존한 인물로 알려졌음. AP통신을 인용한 현지 보도는 간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전함. 사건 실행범에 대한 장기 수감의 마지막 기록.

2012
14년 전 · 1건

한국과 미얀마의 관계 변화 속에 1983년 아웅산 묘소 테러 희생자들을 현장에서 추모하기 위한 시설 건립이 추진됨. 2012년 5월 미얀마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추모비 건립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후 양국 간 협의가 진행됨. 2014년 현지 추모비 제막으로 이어지는 시작점.

2014
12년 전 · 1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숨진 한국인 17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묘역에 건립돼 제막식을 가짐. 현충일에 열린 행사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유족, 생존자, 미얀마 측 인사들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 사건 발생 약 31년 만에 폭발 현장 인근에 마련된 공식적인 추모 공간.

2023
3년 전 · 1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40주기를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추모식이 열림. 희생된 외교관과 수행원은 물론 사건 현장에서 순직한 경호원들의 희생도 함께 기렸으며, 1983년 합동국민장 이후 오랫동안 이어진 국가적 추모의 흐름을 보여줌.

갱신 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