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누조마 출생
나미비아의 제1대 대통령 샘 누조마. (~2025년)
나미비아의 제1대 대통령 샘 누조마. (~2025년)
멕시코의 축구 선수 안토니오 카르바할. (~2023년)
독일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1945년)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2026년)
롤랜드 V. 리 감독의 《수수께끼의 푸 만추 박사 (The Mysterious Dr. Fu Manchu)》 미국 개봉. 스웨덴계 배우 워너 올런드가 중국인 악당 푸 만추를 맡아 독극물·최면·비밀 조직을 이용해 영국인들에게 복수하는 인물로 연기한 작품.
색스 로머의 소설 속 푸 만추를 장편 유성영화의 대표 악당으로 정착시킨 계기. 중국인을 과학과 지식을 악용해 서구 문명을 내부에서 파괴하려는 존재로 묘사하는 황화론적 서사의 확산.
을축년 대홍수 뒤 위험해진 용산측 한강소교를 철폐하고, 기존 중간 둑 자리까지 연장한 459m 대교 재가설 공사 준공. 1927년 5월 착수한 공사로, 1929년 9월 준공 뒤 9월 18일 파교식 거행. 공사비 약 120만 원 투입, 교량 폭 18m 확장으로 교통 수요 수용 능력 증대.
1929년 10월 3일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벤 왕국의 공식 국명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변경됨.
알렉산다르 1세의 왕권 강화와 국가 통합 정책 아래 기존 국명이 ‘유고슬라비아’로 바뀌면서 국가 정체성을 단일한 유고슬라비아 개념으로 재편하려는 시도가 공식화됨. 이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기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성립의 전사에 해당함.
경성과 평양의 대표 선수들이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평축구대항전을 벌였음.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는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세 경기로 진행되었고, 평양 대표팀이 2승 1무를 기록했음.
당시의 대표팀은 1933년에 정식 창단되는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과 구분할 필요가 있음. 학교와 민간 축구단에서 모인 선수들의 대결이 도시 전체의 관심사로 커지면서, 경평전은 근대적인 관람 스포츠와 도시 라이벌 문화의 상징이 되었음.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매도 주문이 몰리며 주가가 급락. 주요 금융인들의 매수 개입으로 당일 낙폭이 일부 회복됐지만, 10월 28~29일 추가 폭락이 이어졌음. 이날의 주식시장 혼란과 이후 전개된 세계 대공황은 구분해야 함.
1929년 10월 28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8% 떨어진 이른바 ‘블랙 먼데이’ 발생. 나흘 전 검은 목요일 이후 가라앉지 않은 매도 압력이 다시 급증했고, 다음 날 검은 화요일에도 폭락이 이어짐. 미국의 증권시장 붕괴가 금융·경제 전반의 위기로 심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세계 대공황과 연결되는 역사적 전환점임. 다만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이날의 주가 하락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음.
1929년 10월 2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해 약 1,640만 주가 거래되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약 12% 하락함. 전날 블랙 먼데이에 이어 주가 폭락이 계속된 ‘검은 화요일’로, 1929년 주식시장 붕괴와 이후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금융 불안의 상징적 사건임. 1929년 가을의 주가 급락은 대공황 악화의 중요한 계기였지만 은행 위기, 통화 긴축, 국제 금본위제와 무역 위축 등 다른 원인도 함께 고려해야 함.
한글날 기념식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착수함. 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중화·최현배가 집행위원으로, 이극로·이윤재·한징 등이 편찬원으로 선정됨. 28년 뒤 『큰사전』 완간으로 결실을 맺는 대장정의 출발점.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 작가의 창작 조건과 문학적 계보를 논하면서 제인 오스틴을 중요한 선배 작가로 다룸. 후대 연구에서는 울프가 가족 전기에서 형성된 온순한 작가 이미지를 넘어 오스틴을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여성 작가이자 모더니즘의 선행자로 다시 읽은 과정으로 평가함.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조선인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적 교육과 10월 30일 나주역 충돌 사건에 대한 편파적 대응에 항의하며 대규모 가두시위를 전개함. 시위는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며 3·1운동 이후 주요 항일 학생운동으로 발전함. 나주역 사건과 광주 시위 시작, 이후 전국 확산의 단계를 구분해 기록함.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릴리 P. 블리스·메리 퀸 설리번이 발의해 1929년 뉴욕에 근대미술 전문 미술관을 설립함. A. 콩거 굿이어를 초대 회장, 알프레드 H. 바 주니어를 초대 관장으로 두고, 5번가 헥셔 빌딩의 임대 공간에서 월스트리트 대폭락 9일 뒤인 11월 7일 일반에 개관. 유럽 모더니즘을 전문으로 내건 맨해튼 최초의 미술관으로, 이후 근현대 미술 제도의 출발점이 됨.
개관과 함께 후기인상주의 거장 4인의 작품만으로 첫 전시를 구성함. 전적으로 대여 작품으로 꾸려졌고 47,293명이 관람하며 큰 호응을 얻음. 동시대 화가들이 특히 존경한 화가들을 골랐다는 초대 관장 바의 기획 의도가 드러난, 미술관의 방향을 예고한 첫 전시.
신간회가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 민중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서울 안국동에서 민중대회를 열기로 했으나, 대회 개최 약 6시간 전 일제 경찰이 신간회 본부를 포위해 준비 중이던 조병옥 등 신간회 회원과 관련 단체 인사들을 대거 검거함.
진명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행동과 동맹휴학에 참여. 배화·중앙보육·정신 등 서울 여러 학교의 학생들도 광주 학생 지원과 일제 규탄에 동참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으려는 식민 당국이 같은 날 조기 겨울방학 조치. 시위와 동맹휴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앞당겨 중단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출생. 어린 시절 부친을 잃고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며, 일제 말에는 방직공장 강제노역을 경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