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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29년의 기록 2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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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압력을 받은 장쭤린 휘하 동북3성 군벌 측 중국 당국이 신흥무관학교를 수색하고 폐쇄 명령. 당시 교장 이세영과 교사 이범석은 삼원보 방면으로 피신.

이 사건은 한족회 해산 명령과 함께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에 가해진 중국 관헌의 탄압 일부. 학교는 즉시 완전히 해산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일제·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과 피신을 거쳐 1920년 여름 운영 종료로 이어짐.

베르사유조약 발효를 앞두고 1919년 12월부터 나라시노 수용소의 포로 석방과 귀국이 시작됨. 시설 정리를 위해 남았던 20명도 1920년 1월 석방되었고, 칭다오 총독 알프레트 마이어발데크가 부하들의 석방을 확인한 뒤 1월 26일 마지막으로 수용소를 떠남. 제1차 세계대전기 포로수용 기능의 종료.

나라시노 수용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3·1독립선언 1주년을 맞아 첫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함. 임시정부 주최 기념식과 교민단 주최 축하식, 시가행진·기념공연 등이 열렸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날을 '국경일'로 부르며 경축함. 임시정부 시기 3·1절의 정식 명칭은 '독립선언일'이었으며, 이날이 해마다 기념되는 민족 명절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됨.

1920년 3월 19일 미국 상원이 베르사유 조약 비준안을 7표 차로 부결해 미국의 조약 가입과 국제연맹 참여가 무산됨. 앞서 1919년 11월 19일 표결에서도 윌슨 대통령이 로지 상원의원의 유보 조항을 거부하면서 비준이 좌절. 조약의 집단 안보를 규정한 제10조에 대한 반대가 핵심 쟁점이었으며, 결국 미국은 1921년 독일과 별도 강화 조약을 맺어 베르사유 체제 밖에 머무름.

일제와 장쭤린 군벌 측 중국 관헌이 합동수색대를 편성해 신흥무관학교와 한족회 등 서간도 독립운동 기지를 습격하고 독립운동가를 체포·살해.

1920년 1월의 한족회 해산·학교 폐쇄 명령 뒤 탄압이 무력 작전으로 확대된 시점. 신흥무관학교의 안도현 이동과 운영 종료로 이어진 직접적 배경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