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메부스 출생
독일의 축구 선수 파울 메부스. (~1993년)
독일의 축구 선수 파울 메부스. (~1993년)
미국의 목회자 루스 그레이엄. (~2007년)
독일의 사회경제학자 막스 베버. (1864년~)
일제와 중국 군경의 합동 탄압을 피해 신흥무관학교가 안도현 밀림 지대로 이동. 지청천·김동삼 등은 소속 인력과 함께 제2의 군사기지 구축과 독립전쟁 준비를 추진.
그러나 피난지에서도 학교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워 약 한 달 뒤인 1920년 8월경 해산. 폐교 뒤 생도와 교관 인력은 독립군 부대로 편입. ```
대흉작에 따른 재정난, 교내 갈등과 사고, 마적의 습격, 일제의 가중되는 탄압이 겹치며 신흥무관학교 폐교. 1911년 신흥강습소로 출발한 독립군 양성기관의 약 9년 운영 종료.
폐교 뒤 지청천은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와 연합.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력은 이후 여러 독립군 부대와 군정 조직에서 활동하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 형성.
뉴욕 월스트리트의 J. P. 모건 건물 맞은편에 세워진 마차가 폭발해 30명 이상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약 300명이 부상. 미국 수사당국은 아나키스트 계열의 범행 가능성을 수사했으나 범인은 끝내 확정되지 않았으며, 초기 연방 수사기관이 다룬 대표적 테러 사건으로 기록됨.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여러 프로 미식축구 구단 대표가 모여 American Professional Football Association(APFA)을 창설하고 짐 소프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 조직은 1922년 National Football League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날 NFL로 이어진 출발점.
3·1 운동 이후 고향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던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함. 모진 고문과 열악한 수감 환경 속에서도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며, 사망 당시 나이는 17세였음.
유관순의 순국은 3·1 운동의 희생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됨. 이후 유관순은 학생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삼일절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설명할 때 함께 언급되는 핵심 인물이 됨.
안창호가 미주 단원들을 상하이로 불러 1920년 9월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를 설치함. 미주에 한정되던 활동을 중국 지역으로 확장한 전환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한 상하이를 거점으로 국외 민족운동의 폭을 넓힌 계기.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과 교전. 일제와 중국 군경의 탄압으로 신흥무관학교가 운영을 중단했지만, 지청천 등은 사관생도와 졸업생을 중심으로 교성대를 편성해 독립군 부대에 합류.
북로군정서의 연성대장 이범석 등 신흥무관학교와 인연을 가진 교관·졸업생들이 지휘관과 전투원으로 참여. 청산리 전투는 북로군정서 정예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군의 대일 항전이며, 신흥무관학교가 양성한 군사 인력이 만주 무장 독립운동의 전장으로 이어진 사례.
무사시야를 이어받은 미야모토 고이치로가 유카타·벽축면 등 일본 기모노용 직물을 활용해 와풍 문양의 맞춤 셔츠를 제작함. 무사시야는 1920년대부터 호놀룰루에서 일본계 이민 사회와 관광객을 상대로 셔츠를 판매하며, 일본 직물과 하와이식 개방 칼라 셔츠가 결합하는 초기 흐름에 참여함.
1930년대 초에는 일본산 프린트 직물로 만든 맞춤 셔츠도 제작한 것으로 전해짐. 다만 알로하 셔츠의 ‘최초’ 제작자나 단일한 기원으로 단정하기보다, 무사시야를 일본계 이민 재단사들이 알로하 셔츠의 형성에 기여한 대표적 사례로 보는 편이 정확함.
신흥무관학교 폐교 뒤 지청천이 사관생도 약 300명을 이끌고 백두산 일대 안도현 삼림지대로 이동해 홍범도 부대에 합류. 이들은 이후 김좌진 부대를 따라 밀산으로 이동한 독립군 통합 과정에 참여.
밀산에 집결한 여러 독립군 세력이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면서,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생도 인력도 통합 독립군 조직의 기반에 편입. 학교의 군사교육 인력이 독립전쟁과 독립군 통합으로 이어짐.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내세우며 조선인의 한글 신문 발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함.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간 조선어 신문이 창간되면서 1910년대 내내 유지되던 매일신보의 조선어 신문 독점 구도 종료. 이후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남되, 민간 조선어 신문들과 병존하는 언론 구도 속에 위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에서 활동하던 이광수가 1921년 3월 상하이에서 국내로 귀국함. 귀국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됐으나 곧 불기소 처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연형. (~2009년)
대한민국의 군인 김용배. (~1951년)
미국의 야구 선수 워런 스판. (~2003년)
대한민국의 작가 장용학.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