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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29년의 기록 2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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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초 김승학이 『독립신문』 2대 사장에 취임. 초대 사장 겸 주필 이광수와 영업부장 이영렬의 이탈 뒤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신문사와 인쇄소가 봉쇄된 상황에서, 안창호와 신문사 해제 방안을 논의하고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함. 그 결과 음력 5월 말 신문사와 인쇄소가 다시 개방되었고, 사장 김승학·주필 박은식·편집국장 차리석 체제로 운영 기반 재정비.

일본 영사관의 항의와 프랑스 영사관의 조치로 봉쇄되어 제109호(1921년 5월 31일) 뒤 발행이 중단된 『독립신문』이, 1921년 8월 15일 제110호부터 속간. 김승학 사장 취임 뒤 신문사와 인쇄소의 재개방을 거쳐 발행을 재개했고, 김승학 운영기에는 제110호부터 제177호까지 모두 68호 발행.

조지 멜퍼드 감독의 《족장 (The Sheik)》 미국 개봉. 루돌프 발렌티노가 사막의 족장 아메드 벤 하산을 연기하고, 유럽 여성을 납치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욕망을 로맨스로 구성한 작품.

사막·천막·부족·납치·성적 지배를 결합한 ‘셰이크 로맨스’의 대중적 확산. 아랍 남성을 야만적이고 관능적인 위협으로 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유럽계 혈통이라는 설정을 통해 로맨스의 인종적 금기를 해소한 구조.

휴면 상태에 빠졌던 학회(한글모)를 임경재·최두선·이승규 등이 모여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으킴. 주시경 사후 끊어질 뻔한 국어 연구의 맥을 제자들이 이은 것으로, 한글 철자법 연구와 동인지 발간을 중심으로 활동함. 오늘날 조선어학회·한글학회로 이어지는 조직의 직접적 재출발점.

함석헌이 1921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3학년에 편입함. 재학 중 안창호·이승훈·조만식에게서 민족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영모를 만나 신앙과 사상 형성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파악.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유학으로 나아감.

함석헌

김규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조선대표단 집행위원장으로 참가. 대회에서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연설하고 레닌·트로츠키 등과 만나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 서구 열강 중심의 외교 활동에서 벗어나 소련과 피압박민족의 연대를 모색.

은 원자 빔을 비균질 자기장에 통과시키자 빔이 연속적으로 퍼지지 않고 위아래 두 갈래로 갈라짐. 원자의 각운동량(자기 모멘트) 방향이 불연속적인 값만 갖는다는 '공간 양자화(Spatial Quantization)'를 처음으로 직접 보여 준 실험. 훗날 전자 스핀 개념의 실험적 토대가 됨.

양자역학

안창호로부터 흥사단의 국내 조직을 결성할 사명을 받고 귀국한 이광수가 김종덕·박현환·김윤경·강창기 등과 함께 서울에서 수양동맹회를 결성함. 청년 남녀의 인격 수양과 민족의 실력 배양을 표방한 국내 흥사단 계열 조직으로, 1926년 평양의 동우구락부와 합동해 수양동우회로 발전.

이광수 (춘원) 창립 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