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보른, 파동함수의 확률 해석 제시
슈뢰딩거의 파동함수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두고, 그 절댓값 제곱 |ψ|²을 입자가 특정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 밀도로 해석. 양자역학의 결과가 본질적으로 확률로만 예측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해석. 이 '보른 규칙'으로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음.
슈뢰딩거의 파동함수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두고, 그 절댓값 제곱 |ψ|²을 입자가 특정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 밀도로 해석. 양자역학의 결과가 본질적으로 확률로만 예측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해석. 이 '보른 규칙'으로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음.
오모테진보초(현 간다진보초) 사무소 정면에 ‘쇼가쿠칸 슈에이샤 가영업소’ 간판을 내걸고 회사를 설립함. 8월 읽을거리 잡지 《소년단》과 《소공녀》를 창간함. 쇼가쿠칸의 오락 잡지 출판 부문이 학습지 사업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경영 단위로 출범함.
김명순이 1926년 8월부터 9월까지 『동아일보』에 소설 「나는 사랑한다」를 연재.
「나는 사랑한다」는 사랑 없는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여성 인물의 선택을 다룬 소설
밀른의 글과 셰퍼드의 삽화로 이루어진 동화집 《곰돌이 푸》가 출간됨. 영국 메슈언과 미국 더턴을 통해 독자를 만났으며, 푸와 크리스토퍼 로빈 등 숲속 친구들의 열 가지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었음.
앞서 잡지와 신문에 등장했던 곰의 세계가 독립된 책으로 자리 잡은 사건이며, 후속 동화집과 여러 매체 각색의 출발점이 됐음.
신상옥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 본명은 신태서(申泰瑞).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자서전 출판사 약력이 제시하는 생년월일은 1926년 10월 18일이며, 한국영상자료원의 회고전도 1926년생으로 소개. 일부 인명 자료의 1925년 9월 12일 표기와는 차이가 있는 출생 기록.
조사 뒤 정비한 미라를 석관 안으로 돌려놓고, 이어 10월 23일부터 보물실 유물의 정리에 집중한 작업. 아누비스 사당·모형 배·상자와 장신구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보존 처리하면서 왕의 신체 중심 조사에서 장례 의례와 부장품 전체로 연구 범위를 넓힌 단계.
1926년 10월 24일 마술사 해리 후디니가 미국 디트로이트 개릭 극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진행. 당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으며 일주일 뒤인 10월 31일 복막염으로 사망함.
해리 후디니는 탈출 마술과 환상 공연으로 20세기 초 무대공연의 대표 인물이 됨. 1926년 10월 디트로이트 공연 중 건강이 악화됐으며 24일 공연은 그의 마지막 무대로 기록됨.
후디니는 그해 10월 31일 사망. 그의 말년 공연은 공연예술의 대중화와 근대 오락산업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줌.
1926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가 창립되고 같은 달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로 개칭됨. 안창호와 원세훈이 중심이 되어 이념이 다른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려 함. 이후 관내와 만주 각지로 촉성회가 확산되는 민족유일당운동의 본격적 출발점.
조선통신중학관이 발간한 『조선시인선집』에 김명순의 시를 김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록.
선집에 참여한 시인은 모두 28명으로, 김명순은 이 가운데 유일한 여성 시인
조선어연구회 인사와 한글 연구자들이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서울 식도원에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리는 첫 '가갸날' 기념식을 열고 이날을 기념일로 정함. 일제강점기 우리말·글을 지키려는 운동에서 출발해 명칭과 기념 날짜가 여러 차례 변경된 뒤 오늘날의 한글날로 발전함. '가갸날 제정'과 첫 기념식이라는 사실을 함께 설명함.
1924년 「민족적 경륜」을 둘러싼 논란으로 동아일보사를 떠났던 이광수가 1926년 11월 8일 편집국장으로 취임함. 이후 편집 책임자로 근무하는 한편 「마의태자」·「단종애사」·「이순신」·「흙」 등의 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
참고로 1923년 5월 16일 ‘촉탁기자’로 발령받아 12월 1일자로 ‘임(任) 기자’가 됐고 1926년과 29년 두 차례에 걸쳐 4년 6개월 여를 편집국장으로 재임.
최은희가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 본명은 최경순(崔慶順).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인물 자료가 제시하는 생년월일은 1926년 11월 20일이며, 한국영상자료원의 여성감독 전시도 1926년 광주 출생으로 소개.
상하이에서 1919년 8월 21일 창간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1926년 11월 26일 제198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재정난과 발행 여건의 악화 속에서 약 7년간 이어진 상하이 국한문판 발행 종료. 이후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뒤 1943년 다시 발간.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남.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던 중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피해를 입게 되는 인물. 훗날 전시 성폭력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증언자이자 인권운동가가 됨.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는 1926년 5월 1일, 김복동 공식 기념사업 사이트의 최근 약력은 1926년 4월 6일, 연합뉴스 등 당시 부고 기사들은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1926년 출생으로 기록.
앨런 록히드가 캘리포니아에서 Lockheed Aircraft Company를 설립함. 1912년 형제의 초기 항공기 사업 이후 다시 시작한 회사로, 베가 등 민간 항공기를 기반으로 성장하다 대공황기의 파산과 1932년 재건을 거쳐 미국의 주요 항공우주 기업으로 발전함.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을 원래 자리에서 해체하고 동쪽 궁성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김. 1926년 해체와 이듬해 이건으로 이어진 과정으로, 광화문은 궁궐 중심축의 정문이라는 본래 위치를 잃게 됨. 주변 전차선로와 도로의 확장은 월대와 궁장 등 남쪽 경관의 훼손에도 영향을 줌.
박지원의 「허생전」을 바탕으로 한 만화 「허생뎐」이 『동아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함. 같은 해 4월 25일까지 총 108회가 연재되며 당시 신문 연재만화 가운데 최장기 기록을 세움.
1927년 2월 15일 국내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연합해 좌우합작 단체 신간회를 창립함. 중국 지역 민족유일당운동과 같은 민족협동전선 흐름 속에서 국내판 단일 전선으로 결성.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규모의 합법적 항일운동 단체.
일제강점기 서울 정동의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로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함. 방송망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KBS의 역사와 이어지지만,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제 아래 운영된 식민지 방송이었음.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거쳐 방송망이 확대되었으며, 한국어 프로그램도 검열과 식민 통치의 제약을 받음. 해방 뒤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편되면서 방송의 운영 주체와 제도가 바뀌는 출발점이 됨.
함석헌이 1927년 2월 김교신·송두용·류석동·정상훈·양인성과 함께 무교회주의 동인지 『성서조선』 창간에 참여함. 『성서조선』은 성서 해석을 바탕으로 신앙·교육·민족 문제를 다룬 매체로,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1942년 폐간될 때까지 발행됨.